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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오애순들은 어디로 갔을까

by 가을나무

얼마 전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지나갔다는, 특히 4~50대를 웃기고 울렸다는 '폭삭 삭었수다'라는 드라마를 나도 보았다.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추리물이나 스릴러를 즐기는 나는 주위 사람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띄엄띄엄 드라마를 보았다.


주인공인 오애순은 학창 시절 문학소녀였다.

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으면 재능을 살려 대학도 갔고 어쩌면 나의 동료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중간중간 예전의 문학소녀 오애순이 강조된다. 물론 매우 희화적인 장면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주인공이 이래 봬도 나 예전에 문학소녀였다고 소리칠 때 나도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나도 예전에 문학소녀였다-


우리의 문학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를 밟고 가라고 소리치며 드러눕는 오애순을 보고 이모들은 말한다

-예전의 문학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사춘기 딸은 엄마가 새침한 문학소녀였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엄마는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였을 거라고 믿고 싶어 한다.

밥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동네 아줌마들과 주접을 떨고, 온 세상 고상을 다 떠는 지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살아온 사람 취급을 한다.


남편은 내가 문학소녀였다는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집안일 잘하고, 딸아이 잘 키우고, 이제 늙어 무탈한 노년의 여자가 되기를 원한다.

혹시라도 그 옛날 문학소녀 운운하며 생산성 떨어지는 나약한 인간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친정 엄마는 내가 문학소녀였다는 사실을 잊기를 바란다.

이제 현실성을 가지고 현실에 두 발을 꼭 붙이고 살기를 바란다.


친구들은 내가 문학소녀였다는 사실을 좀 고까워한다.

그 옛날 책 좀 좋아했다고, 백일장 몇 번 나갔다고 늙어서도 고상한 체하며 지들보다 잘난 체할까 봐 애써 책 따윈 이제 버리라고, 노안도 왔는데 무슨 문학 타령이냐고, 세상모르는 아이 달래듯 하며 세상을 가르쳐 주고 그 세상 속에서 손 잡고 가자고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문학소녀는 문학소녀일 뿐이라고

누구나 말고 순수하던 아이 시절 한 때의 낭만일 뿐이라고..


나도 날마다 생각한다.

인생을 책에서 배운 것은 실패한 것이라고...



그런데... 그런데...

내 낡은 앨범 속에 촌스런 단발머리에 흰 칼라를 댄 검은 교복을 입고 두꺼운 안경을 쓴 열몇 살의 나는 문학소녀였다. 그리고 굳이 그 촌스런 사진 속의 나를 내 마음속에서 밀어내지 못하는 나는, 어쩌면 마음에 작은방 하나를 그 문학소녀에게 내어주었음이 틀림없다.


그 수많던 문학소녀들은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숨어 있던 문학소녀들을 어쩌지 못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학소녀를 숨겨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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