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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Aug 19. 2021

외롭지만 불행하진 않아

엄마의 행방불명


 어렸을 적 저는 아빠덕분에 꽤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살았어요. 제 기준에서 부유함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먹고싶은 것이나 가지고 싶은 것들을 원하면 다 가지고 먹을 수 있는 것이었죠. 과자나 생선 등 모든 것이 대량으로 집에 있었거든요. 말 그대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살았어요. 아빠가 경찰 일을 할 당시에 회사에서 개인차를 몰고 다니면서 돈을 잘 벌었는데, 어떻게 차를 가지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찌됐든 아빠가 한 번씩 장거리 출장을 다녀오면 항상 과자나 장난감 등 집에 필요한 것들을 대량으로 사오셨어요. 그래서 저와 동생은 아빠가 출장가면 날짜를 세어가며 아빠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어요.



 그러나 아빠의 직업이 좋다는 이유로 친가, 외가 쪽의 형제 자매들의 도와달라는 부탁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제가 누렸던 부유한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어요. 당신이 당장 먹을 것이 없어도 남들을 도와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마는 친척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도와주었거든요. 친척들의 부탁이 지속되면서 우리 집안 형편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결국 아빠가 받는 급여와 *배급으로는 말 그대로 감당이 안 됐어요. 문제는 경찰의 아내는 일하면 안 된다는 법적 제한이 있어 엄마가 일할 수가 없었거든요. 아빠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엄마와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수 있을지에 대하여 의논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저녁 아빠는 밥을 먹으며 엄마에게

말했어요.


“배 타면 어떨까?”

 “배?”


엄마는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다시 물었어요.


“그러니까 당신말은 바다에 나가서 오징어 잡겠다는거야?”

 “그렇지, 요즘 오징어가 잘 잡히는데 마른오징어가 비싸니까 오징어 잡아서 직접 말려서 팔면 돈 많이 벌 수 있어!”


 “근데배같이탈사람도있어야하고,허가도받아야하잖아.”


 “그거는 배 가지고 있는 선장만 찾으면 돼! 중요한건 배를 타려면 오징어를 잡는데 필요한 그물이나 장비를 살 돈이 필요한거지. 10만원만 있으면 될것 같은데 돈빌릴 곳이 없을까?”



 아빠는 엄마가 돈을 빌려다 주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배를 탈수 있기라도 한듯, 확신에찬 목소리로 말했어요.엄마는 아빠의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했어요.


“만약 돈 10만 원 빌려다 주면 경찰은 그만두려고?”

“그렇지, 그만둬야지! 쥐뿔만한 월급에 적은 배급으로 어 떻게 살아.”


 아빠는 얘기하면서 감정이 격해졌는지 화가 섞인 말투로 투박하게 말했어요.


“알겠어. 일단 될지는 모르겠지만 돈 한번 빌려볼게.”



 당시에 10만 원이라는 금액은 꽤 큰돈이었어요. 엄마는 돈을 빌려보겠다고 했지만, 걱정됐는지 설거지하는 내내 표정에 근심이 가득했어요.다음날 아침 엄마는 동생과 저에게 밥을 차려주면서 돈빌리러 다녀올테니 학교 꼭 다녀오라고 못 박아놓고 갔어요. 혹시라도 엄마가 늦으면 기다리지말고 아빠랑 저녁을 챙겨먹으라고요.평소와 다를게 없는 엄마의 말에 저는 가볍게 대답했어요.



 그날 저녁 동생과 전 엄마대신 저녁을 차려놓고 아빠, 엄마를 기다렸어요.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어디갔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저는 돈 빌리러 갔다고 했어요. 아빠, 동생과 제가 저녁을 다 먹을 때까지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렇게 다음날, 다음 달, 다음 해가 되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빠는 엄마의 행방을 찾기 위해 지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아빠는 당시 아빠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경찰 아저씨 아내와 엄마가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나서 그 집에 찾아갔어요. 저는 그 아줌마를 이모라고 불렀어요. 아빠는 그 집에 다녀와서 저와 동생을 앉혀 놓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동생과 저는 영문도 모른 채 무릎을 꿇고 앉았어요. 저와 동생에게 아빠는 무서운 존재였거든요. 그래서 아빠 앞에 앉을 때는 항상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요. 아빠는 저와 동생을 한번씩 번갈아 보며 말했어요.사실 아빠는 엄마가 없어졌을 당시 이미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었지만, 엄마가 곧올거라는 거짓말로 저와 동생을 안심시켰어요. 어찌됐든 1년간 모르고 살았던 엄마의 행방에 대해서 들을 기회였어요.


“이모가 그러는데 엄마가 돈 빌리러 간다며 충심이 엄마랑 중국에 다녀온다고 했대.”



 충심이 엄마라는 사람은 당시 중국에 자주 왕래하기로 유명했어요. 엄마랑은 기존에 친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사람과 엄마가 함께 없어졌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아빠의 말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어요. 생각해보니 엄마가 떠나던 날 아침에 제게 학교 잘 다니고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라고 했던말은 엄마가 없는 동안에도 학교잘다니고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였어요. 설마 엄마가 어린 동생과 저를 두고 어딘가 떠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그렇게 엄마와 이별하고 동생과 저는 매일 매일을 대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엄마를 기다렸어요. 야속하게도 엄마는 돌아오 지않았어요.



 엄마의 생사마저 확인할 수 없다는것이 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당시 중국에 팔려가는 여자들이 많다는 소문이 한창 유행하면서 동네에는 이미 엄마가 중국 으로 팔려갔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난무했어요. 결국, 아빠는 엄마의 행방불명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어요.그후 기다림의 시간은 끝없이 흘렀고 끝내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배급은 매월 정해진 양의 쌀이나 옥수수를 주는 것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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