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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Aug 18. 2021

외롭지만 불행하진 않아

아빠의 마지막 부탁


아빠는 늘 엄하고 두려운 존재였어요. 동생은 아빠를 닮아  부엉이같이 큰 눈에 오뚝한 코와 눈썹은 마치 문신이라도  한 듯 짙어 이목구비가 굉장히 또렷하고 예뻤어요. 동네 친 구들은 동생에게 부엉이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곤 했죠. 아 빠는 당신을 닮은 동생을 무척이나 예뻐했어요. 어린 마음에 아빠가 동생만 예뻐하는 것 같아 질투가 났었는지 아빠와 말도 잘 안 하고 친해지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저도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없어지고 난 후 새엄마가 오기전까지는 꽤 어렵게 생활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술을 마시며 저와 동생을 밥상 앞에  불러 앉혔어요. 동생과 저는 아빠가 술 마시는 모습을 보며  조금 긴장하고 있었어요. 엄마가 없어지기 전까지 아빠는  술만 마시면 당신도 모르는 폭력성이 나와 엄마는 물론 집 안의 모든 가구류, 집기류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때려 부쉈거든요. 문제는 다음 날이면 당신이 한 짓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아침에 일어나서 집이 왜 이렇게 됐냐며 되묻는 것이 일상이었죠. 아빠의 안 좋은 술버릇 때문에 아빠가 술  마신 날이면 엄마, 동생과 저는 집을 나와 남의 집에서 자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아빠의 그런 술버릇 탓에 아빠가 술을 마시는 날이면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아빠는  술을 한잔 들이켜더니 갑자기 흐느끼면서 울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미안하다……. 밥 한 끼 제대로 못 해 먹이고 맨날  국수만 먹게 해서.”


서럽게 흐느끼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갑자기 눈물이 터져 버렸어요. 동생도 옆에서 같이 울고 있었어요. 한참을 흐느끼다 울음을 멈추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뭐라고 하셨어요. 술에 취한 상태로 얘기하 셔서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없었지만  이름을 부르며  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을 봐서는 저를 혼내고 있는   같았어요. 아빠는 술에 취해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면서 저를 가리키며 집에서 나가라고 했어요. 아빠의 술버릇이   나온 것이었죠. 하지만 엄마도 없는 그때 상황에서 아빠의  그런 행동은 어린 저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어요. 자존심은 세서 아빠의 나가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섰어요. 동생은 울면서 가지 말라며 저를 말렸지만 그런 동생의 말도 뿌리치고 집을 나왔어요. 동생은 저와 달리 속이 깊은 아이였어요. 제가 없으니 본인이라도 아빠의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저를 따라나 서지는 않았어요. 동생도  취한 아빠와 있는 것이 무서웠을텐데 그런 동생을 남겨두고 혼자 나온 것이 지금도 후회로 남아요.


외할머니 집까지 가려면 걸어서  1시간 반정도 가야했어요. 조금  빨리 가기 위해 일반도로가 아닌 지름길로 갔어요.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지름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이 무서웠지만 가야만 했어요. 외할머니  앞에 도착해서는 할머니를 부르며 바로 뛰어들어갔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미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어요.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제가  시간이나 상황을 보고  짐작했죠. 저는 그날  집을 나온 이후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후로 동생이 와서  번이고 아빠가 언니를   싶어 한다며 집에 가자고 저를 설득했지만 가지 않았어요. 그렇게 며칠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소원아, 소원아 휴 힘들어……. ”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봤더니 동네 친구들이 저를  데리러 온 것이었어요.


“너희 아빠가 너 꼭 데려다 달래! 부탁이랬어, 가자 응?”

“안 가! 절대 안 간다고 전해. 무슨 일 있어도 안 가!”

“야, 그래도 아빠가 부르는데 가야지. 부탁한다고 우리까지  보냈는데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친구들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어요. 어찌 됐든 저는 가지  않았고 친구들은 어쩔  없이 돌아갔어요. 그로부터 며칠   동생에게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바다에 오징어 잡으러 나갔다가 아파트만  파도가  면서 배가 전복됐다고 했어요. 저에겐 너무 밉고 원망스러운 존재였지만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죽을  있나 싶었어요. 아빠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어요.   슬픈 사실은 시신조차  찾았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믿고  싶지 않았어요. 엄마도 없는데 아빠까지 없으면 동생과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원망과 슬픔의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엄마가 없어지고    1 만에 아빠마저  상을 떠나버렸어요. 동생과 저는 한순간에 고아가 되어버렸 어요.


아빠가 찾을   이기는   , 아빠와    라도 먹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진 않을  텐데, 그때의 부탁이 아빠의 마지막이   알았더라면…. 이미 늦은 후회가  마음을 가득 채웠어요. 생전에 아빠의  모습은  먹고 가끔 폭력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말없이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세상에 하나뿐인 아빠. 이제는 그저 미안하고 보고싶은 존재가 되었네요.


그때 아빠의 부탁이 마지막인  알았더라면 이유가 어찌 됐든 갔을 거예요. 하지만 슬픈 현실은   렇듯 예고 없이 찾아오죠. 지금까지도 한으로 남은 것은 아빠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제사   제대로  해주었다는  것이에요. 또한, 가장 아쉬운 것은 아빠와 어머니의 사진   장이 없어, 세월이 지날수록  분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점점 흐릿해져 가는 것이에요. 제가   있는 것이 없다는   죄송스럽고 한스러워요.  후회는 항상 한발 늦게 찾아오는 것인지.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어떠한 고통도 없이 편안히   있기를 기도해요. 후회해도 이미 되돌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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