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즉생 필생즉사
나는 남의 눈치를 잘 보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눈치는 잘 까지만 개의치 않으려 한다. 회사에서도 아무에게나 쉽게 농담을 건네고 윗사람 앞에서도 대놓고 까기도 한다. 같이 있는 직원들은 눈치보며 웃으면서도 놀라워한다. 그런데 정작 그 어르신들은 오히려 웃으며 좋아한다. 그런 직원도 없는데다 선을 넘지 않기에 가능하다. 나의 그런 여유와 배짱이 부럽다는 직원도 있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사주를 봐주기도 하고, 회사 행사가 있을 때 마다 관행적으로 옆돌기도 했다. 기분이 좋으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돈다. 자주 하는건데도 직원들은 그 때마다 깔깔댔다. 그러다가 이석증이 도지기도 하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특이한 인간이지만 일 할 때는 설렁설렁 넘어가지 않았다. 상무든 사장 앞에서든 모순적인 것은 다 들춰서 짚어냈고 말 같잖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들이받았다. 가뜩이나 사투리에 공격적인 말투인데 정색을 하며 따지거나 끝장을 보니 나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잘 안다. 윗사람들은 부하직원이 아무리 일을 잘 하고 합리적이더라도 그저 자신들의 말에 순종적이길 원한다는 것을. 어느 조직이나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들은 나를 분명 많이 불편해했다.
나는 업무상 경영진들과 매일같이 회의를 했다. 상무들은 하나같이 사장 눈치만 보고 굽신대고 자기 의견을 내 놓다가도 사장 표정만 보고 뒤바꾸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뒤에서는 늘 사장 욕을 해댔다. 나는 왜 앞에선 말 못하냐고 핀잔도 줘봤다. 보고있자니 구역질이 났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다. 각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회사에 출근해서 전 식구들을 먹어살려야 하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회사는 언제든지 치아뿌면 되고 나 자신을 제대로 알려면 퇴사는 반드시 해야한다' 나는 지금까지 늘 이런 생각을 하며 직장을 다녔다. 꼭 여기여야만 한다, 어떻게 들어온 회산데, 여기만한 곳은 없다 등등 이런 생각에 사로 잡히면 비굴해진다. 물론 나는 그 상무들처럼 딸린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같은 상황임에도 눈치보고 전전긍긍하며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이 너무 많다.
내가 그렇게 자주 싸우면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회사를 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 실수할 때는 어떤 변명않고 넙죽 엎드리고 사과하고 바로 해결한 것, 혹시 모를 음해나 잘못될 것을 우려해 메일이든 채팅이든 증거가 남는 일처리를 한 것, 퇴근을 하면 회사 밖의 임무와 취미에 더 충실한 것, 사사로운 이익을 떠나서 누가 봐도 공적으로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짤릴만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고 인사를 담당해서 노동법 전문가라 분쟁을 원칙적으로 대처할 준비가 됐으며 설사 짤린대도 실업급여 받을 조건이 되니 땡큐라는 생각으로 지냈다. 그러다보니 신뢰를 받게 되었고 내 삶도 챙길 수 있었고 아무리 나를 깎아 내리려 시도해도 역공 당하거나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떠난 직원도 볼 수 있었다.
나는 한 직장을 12년 넘게 다니고 작년에 퇴사를 했다. 마흔이 되고 새출발을 위한 자발적인 퇴사였다. 그 좋은 조건들에 미련도 없이, 조직 생활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를 한 점도 남기지 않고 홀가분하게 떠났다. 어떤 것이든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면 부담감이 커진다. 그게 쌓이면 압박이 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런 생활을 하다보면 몸이든 마음이든 아님 둘 다든 반드시 병이 나기 마련이다.
인생에는 길이 많다. 계획하지 않았던 길이 더 잘 될 수도 있다. 인생은 알 수 없기에 더 흥미진진한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사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게 진정한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환경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추진력이 생긴다. 나는 앞으로의 내 삶이 무궁무진하게 기대된다. 오늘도 나는 어떤 또라이 짓을 하며 살아갈까 궁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