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 파스칼 브뤼크네르
내 마음은 아직 10대인데 어느덧 40년을 넘게 살았다. 어린 친구들은 내가 어릴 때 40대를 보던 눈으로 나를 볼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보다 나이값을 해야하는 것이 슬프다는 말처럼 나는 여전히 스냅백을 쓰고 재기발랄하게 뛰어다니고 싶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어울리지도 않고 어색해보인다. 하지만 포기하거나 잃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만큼 아직 오지 않은 날에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일도 많을 것이리라. 인생의 구간별 주어진 역할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앞에서 해야할 일은 미련없이 다 해봤으니 앞으로 해야 할 일에만 신경써도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이런 책이 겁나 좋다.
<좋은 문구 발췌>
나이가 들었다고 꼭 그 나이인 건 아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남은 생의 첫날입니다.
사실 자기를 실현하는 삶이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휴식이 아니라 강하게 만드는 단련에 있다.
노화를 늦출 방법은 욕망의 역동성 안에 머무는 것뿐이다.
커다란 변화에 대한 환상은 주로 자기 삶의 조건을 견디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 환상이 오히려 현 상태를 강화한다. 불평할수록 그 상태에서 잘 버틴다.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해서 불평하는 것이다.
규칙은 사람을 안심시키고 방향을 잡아준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와서
누구인지 모를 자로서 살며
언제인지 모를 때 죽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는데도
나 이토록 즐거우니 놀랍지 않은가
-마르티누스 폰 비버라흐(16세기 독일 성직자)
몽테뉴는 플라톤을 따라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면에서 아이들의 무지는 복되다. 쓸데없는 지식만 꾸역꾸역 머리에 처넣은 어른들의 애매한 앎보다는 철저하게 직관으로 가득한 그 무지가 나아보인다.
아무도 다시 젊어지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탐구와 관찰의 정신을 유지함으로써 의식을 풍요롭게 채울 수는 있다.
몸은 늙되 마음은 늙지 말라.
행복하게 나이를 먹는 비결은 자기에게 부여된 나이에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신체의 쇠락이 천재성과 공존할 수 있다. 질병이 남다른 통찰과 공존할 수 있다. 정신의 시력은 신체의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예리해진다고 플라톤은 말하지 않았던가.
볼테르에 앞서 관용을 사유했던 프랑스의 사상가 피에르 베일은 의식이 방황할 권리를 주장했다. 어떤 진리, 어떤 신앙을 강요당하기 보다는 스스로 실수도 해보고 자기 판단을 돌아볼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나쁜 본보기를 보이든가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든가 둘 중 하나이다.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가 한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욕심의 순서와 위계를 정할 줄 안다는 의미이다.
노년의 나쁜 버릇 중 하나는 부끄러움과 검열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안주하지 않고 우리에게 힘과 희망을 일깨우는 남다른 이들을 우러르는 것이다.
통찰력이 없는 자는 연약함과 권태 밖에 보지 못하는 노년.
사랑한다는 말은 너는 죽지 않아라는 뜻이죠.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참 잘 말해주었다. 사랑은 타자의 존재를 기뻐하고 나 또한 살아 있음으로써 상대에게 매일 그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소소하게 마음을 써주는 자세가 벼락같은 고백보다 더 단단히 커플을 묶어준다.
태어나고 정해진 삶을 발견하고 그냥 그 삶을 걸치기만 하면 된다.
성공한 삶보다는 자기를 실현한 삶이 중요하다. 예측하지 못한 곤란 앞에 마음을 열고 손익 계산에 얽매이지 않으며 비록 거의 끝에 다다랐어도 미래의 힘을 믿는 삶 말이다. 성공이라는 개념은 탐색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 같아 불편한 면이 있다.
그러나 그대는 여행을 속히 마치지 마시오
여행은 오래 지속될수록 좋고
그대는 늙은 뒤에
비로소 그대의 섬에 도착하는 것이 낫소
길 위에서 그대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너에게 닥치는 일이
네 뜻대로 닥치기를 바라지 말라
만사가 일어나야 하는대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자는 행복할 것이다
- 에픽테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