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팔자다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천성을 바꾸기란 그만큼 어렵다. 타고난 여덟 개의 글자를 보면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팔자는 곧 성격이라 할 수 있으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을 싫어하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이유도 그런 팔자를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자를 고치려면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수 밖에 없다.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으로 평생동안 자신을 증오하며 사시는 어르신이 있다. 겉으로는 나름 성공한 노인임에도 자신의 성격때문에 아직 너무 괴로워 하신다. 책을 읽고 종교생활을 하고 노력이란 노력은 다 해봤지만 안되는 걸 보니 팔자는 죽어야 바뀐다는 말이 맞는거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분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는 점, 일의 잘못됨은 늘 남탓으로 돌리는 점,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만 보고 평생 그걸 불만스러워하는 데만 열중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성공은 했지만 행복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아모르파티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팔자는 죽어야 없어지지만 다시 태어난들 원하는 팔자를 가진다는 보장도 없다. 자칫하다가 더 못한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팔자가 그렇다고 반드시 그 모양대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팔자는 뼈대이니 그것을 변형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어떤 살을 붙일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야위고 앳되보였던 작은 청년이 근육을 키워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이렇듯 같은 팔자라도 충분히 다른 모양으로 살 수 있다.
팔자는 바꿀 수 없지만 인생을 바꾸는 확실한 방법은 지금까지 안하던 짓을 하는 것이다. 말수가 적은 사람은 계속 떠들어보고 산만한 사람은 작정하고 명상시간을 정해보기도 하며 소심한 사람은 떨려도 군중 앞에 서보기도 해야한다. 도자기 고양이 칭화처럼 자신을 제대로 깨부수어야 진정한 자아로 재탄생 된다. 팔자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어렵고도 먼 길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이다.
살던대로 살아서는 그 어떤 변화도 없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미래를 꿈꾸는 정신병 초기 증세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시도나 노력이 싫다면 팔자타령 하지 말고 군소리없이 살던대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