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목적2

by Norah

상습 절도범인 A는 훔친 물건을 되판 돈으로 호화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경찰에게 잡히면 그 돈으로 변호사를 사고 지은 죄값보다 훨씬 적은 형을 살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내 지인 B씨는 A가 저지른 범행의 피해자였고 경찰 조사에서 법대로 처벌해달라고 진술했다.

얼마 후 B씨는 A가 교도소에서 B씨의 집으로 보낸 편지를 받게 되었다. 협박이 아닌 선처를 부탁하는 내용이었지만 B씨는 A가 자신의 집주소와 전화번호 등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다. (그 정보를 편지에 적었다고 한다.) B씨는 이것 저것 알아보다가 A가 가진 정보가 A의 변호사를 통해 건네 받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B씨는 보복이 두려웠고 경찰에 신고한 것을 후회했다.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음에도 왜 침묵을 하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B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A가 보복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호의 섞인 답장을 써야 했다. 그 편지는 형을 줄일 수 있는 자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웃긴 점은 그 절도범의 변호사 홈페이지에는 강간한 사람도 집행유예 선고받게 만들었다며 자랑처럼 홍보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항상 피해자나 약자의 의뢰만 받을 수는 없다.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두려워할 수 있다는 점과 변호사는 피해자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을 악용해서 범죄자에게 편지를 쓰게 하고, 그 편지로 피해자를 떨게 만든 그 방법은 정말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유치한 짓이다. 그 덕에 범죄자는 앞으로도 그런 수법을 남용할지도 모른다. 죄없는 피해자만 더 피해보게 되는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는, 소위 배웠다는 사람부터 이러니 전 국민이 착하게 살면 손해라는 위험한 인식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지독하게 예의없는 품행으로 소문이 난 직원이 생각난다. 그는 자기 유리한 쪽으로 특화된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부하 직원들을 못 살게 굴었으며 남의 사정을 설명을 해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고 계속 자기 말만 되풀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출신에 머리가 비상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은 그를 내치려고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의 지식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직원은 아는 것이 무기이다라는 말을 제대로 실천한 셈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머리에 든 지식은 누가 훔쳐갈 수도 없다 등 우리는 어릴 때부터 무조건 배워야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다. 예전에 한 선생님은 학생은 공부만 잘 하면 뭐든지 용서가 된다고 하셨는데 학생뿐 아니라 다 큰 어른들도 좋은 학력만 받쳐주면 쉽게 용서가 되는 사회가 된 듯하다.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 아직까지는 성품이나 언행보다는 학벌이 우위에 있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능력있는 사람은 흠이 있어도 또 다시 불러주는 우리네 정치처럼 그들의 도덕적 결함은 그 위대한(?) 능력을 덮을 수준도 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배운 사람중에도 품격 높은 사람들은 실로 많다. 그러나 교양과 지혜가 항상 지식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을 욕하면서도 정작 지식인 앞에서는 지레 쫄아서 숙이곤 한다. 정말 무식하게 덤비지 않는 이상 그들의 화려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을 이겨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를 버리는 법조인, 환자를 농락하는 의사, 부패된 정치인, 학생들을 가지고 노는 선생 등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려지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들이 받고 있는 존경만큼이나 책임과 의무를 다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좋은 머리를 타고 난 것은 분명 좋은 복이다. 그런데 세상이 자신의 인생에 던져준 그 큰 복을 정의구현을 위해 사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는 되지 말아야 하지는 않을까.


배움은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써 먹여야 한다. 남에게 해를 주는 지식은 말라빠진 개똥보다 나을 게 없다. 배우지 못한 자는 괜히 기 죽을 필요없고 배운 자는 굳이 목에 힘주고 살 필요도 없다. 배움은 언제나 성찰과 올바른 행동을 앞세우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천하고 귀함은 그 행위에 의해 평가되는 것 - 숫타니파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