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스파우즈

by Norah

회사에서 볼 때마다 같이 있고 웃으면서 노닥거리는 남녀(기혼-기혼, 기혼-미혼)들이 몇몇 있는데 그 모습은 굳이 오버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영락없는 연애장면이다.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들리는 이야기도 아주 사적인 것이다.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안되니까 적당한 때에 자리로 돌아와서는 메신저나 카톡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사람들 눈치는 보고 있지만 남들이 자기들에 대해 어떤 말까지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새다.


알쏭달쏭한 애교와 스킨십을 무기로 회사생활을 편하게 하는 젊은 여직원이 있다. 그녀는 털털한 척하며 유부남인 상사의 입에 안주를 대령하기도 하고 한번씩 오묘한 문자를 날리기도 한다. 당연히 인사고과 결과도 좋게 받는다. 나는 남의 사생활에 관심없는 사람이지만 그런 장면을 마주하게 되면 그들의 배우자들에게 먼저 측은함이 생긴다. 물론 그 배우자들도 그러고 살 수 있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배우자보다 말이 더 잘 통하는 친구같은 동료도 생길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회사에 있는 시간이 가장 많다보니 친한 이성 동료와 이야기하는 일이 빡빡한 직장생활에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집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너무 다르다며 서로 지지않으려 애를 쓰면서도 직장에서는 동성보다 이성이 더 말이 통한다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변수라는 것이 존재하니깐 말이다. 그런데 그런 변수에서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있어야 할 경계가 허물어지거나 그 경계를 사람마다 다르게 인지하면서 논쟁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실 불륜은 윤리가 아니라는 뜻인데 우리는 남녀관계에서만 쓰이는 단어로 해석하고 있다. 모든 도덕적인 개념들이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듯이 불륜 역시 정확한 정의가 없다. 몸은 줘도 마음이 떠나면 껍데기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육체적인 배신이 더 큰 문제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둘 다 불륜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나는 오피스 스파우즈를 불륜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배우자를 배려하여 '그 적당한 경계'를 잘 지키려 노력하는지 참 궁금하다. 그 경계를 아는 가장 단순하고 쉬운 방법은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배우자가 똑같이 가지거나 했을 때 아무렇지 않으면 허용이 될만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잣대를 논할 때는 내로남불이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나는 되는 이유가 있고 너는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의 지능은 보나마나 밑바닥 수준이다.


세상에는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자유분방한 사람도 있다. 무엇이 옳다, 어느 것이 더 낫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나친 것은 항상 문제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적당함을 아는 것이다. 그 적당함이 곧 지혜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문제가 없으니 항상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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