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수상록
- 몽테뉴
인생이란, 늙음과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이 순간을 즐기며, 나답게 그리고 성찰하며 배우는 과정이다. 우리는 단순히 숨만 쉬는 생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사람답게 제대로 살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살아 있음을 삶이라고 쉽게 단정짓기는 어려운 일이다.
<좋은 문구 발췌>
매일이 그대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그 시간이 더 바랄 것 없이 유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동물이, 수많은 생물이 모두 당신이 죽는 그 순간 죽는다.
삶의 끝이자 극단에 죽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 삶이 삶 자체의 목적이자 목표여야 하며 스스로 결정하고 처신하도록 용인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삶은 삶을 이해하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염려에 무게를 실어주지만 않는다면 이는 가벼운 삶의 요소일 수 있다.
젊을 때는 즐거움을 좇아도 된다고 하면서 노년에 이를 금하는 것은 부당하다. 젊었을 때 나는 생기발랄한 열정을 신중함 뒤로 감추었으나 나이가 들어서는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방탕을 즐긴다.
이름만 들어도 겁나는 육신의 질병이 무수히 많지만 나는 내가 실제로 겪는 수천 개의 걱정과 정신의 동요가 더 두렵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는 자연적 쇠퇴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인생이 참나무의 수명만큼 길고 강하지 않다고 해서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잊고자 하는 열망은 기억을 선명하게 한다.
나는 최대 1년 이내의 계획만 세운다.
어리석은 자의 인생은 즐거움 없이 완전히 미래만을 향해 있어 불안하다.
나는 인생을 남들의 두배로 즐겼다.
어릴 때는 배워야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숙달해야하며 나이가 들었을 때는 어떤 의무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고독 한복판에서 스스로 군중이 되어라.
우연히 나에게 귀 기울인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의 의견에라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영향을 줄 권리보다는 쉴 권리가 더 좋기 때문에 이대로 만족한다. 나를 내버려두는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세우고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다. 다른 사람의 일에 휘말리거나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아도 된다면 나로서는 기쁜 일이다.
그대의 영혼이 참된 선은 깨달은 만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대는 생명을 연장하거나 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도 만족할 수 있다.
우리는 운명에 합당한 즐거움을 취하되 위대한 이의 즐거움을 탐하지 않는다. 조촐할지언정 우리의 것이 더 자연스럽고 견고하며 확실하다.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자신만의 야망을 품어 그 외의 야망을 거절하자. 모든 사람에게 구걸하게 하는 명성과 명예를 향한 비천하고 비루한 갈증을 경멸하자. 비열한 방법으로 “헐값에 시장바닥에서 사들일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영광이겠는가!" 그렇게 취한 영예는 오히려 불명예다.
나를 잘 알기에 거짓 찬사를 즐기지 않는다.
내가 누리는 자유는 꾸밈없고 초연하다.
감성을 선동하는 사람은 이성을 선동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근본적으로 악을 경멸하도록 철저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 실체가 얼마나 추악한지, 어떤 가면을 쓸지라도 악은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가르처 그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새어나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말을 하더라도 아무것도 단언하지 않을 것이다. 수시로 의심하고 나 자신을 경계하면서 탐구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 키케로
산다는 것은 곧 생각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상이란 신들이 하는 일이며 우리가 명상을 통해 지복을 누리듯 신들은 명상으로 천복을 누린다."'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소심하고 비겁한 짓이라고 말했다.
누가 더 많이 아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잘 아는지를 따져야 한다.
세상은 나를 알기 위해 들여다 봐야 하는 거울이다.
눈에 익으면 정신에도 익숙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보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놀라지도 않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진리를 말할 때는 단순하고 기교없이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