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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필 스터츠의 내면 강화

by Norah

필 스터츠의 내면 강화

- 필 스터츠





<좋은 문구 발췌>


믿음이란 인생에 외부 사건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고 차원적 의미가 있다는 굳건한 확신입니다.


인간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들은 증명할 수 없다 는 딜레마에 놓여 있습니다. 믿음에는 이미 매우 큰 힘이 있어서 증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 결정하면 구원받을테고, 잘못 결정하면 인생이 대번에 망할 거라 느낍니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좋든 나쁘든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우선 결정이 초래한 결과가 아니라 결정을 내리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세요.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 적절했다면, 설령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우리는 아래의 영역에서 더 강해질 것입니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를 두려워하면 본능과 연결이 희미해집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비이성적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습관입니다.


이것이 중독의 본질입니다. 무한한 구멍을 유한한 경험으로 채우려고 애쓰는 것.


물고기가 날 수 있다고 해서 자유로운 게 아닙니다. 그것은 물고기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물고기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헤엄쳐 갈 수 있을 때 자유롭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선택지를 줄여야 해요.


진정한 자유란 완벽한 상황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하며 부질없는 기다림을 멈추고 지금 자기 곁에 있는 상대에게 헌신하는 능력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집착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하는 능력이지요.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자기 본능을 명확히 아는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실행에 옮기는 겁니다.


자기애는 자신의 가장 열등한 부분을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자기애는 그냥 포기하고 그래도 괜찮다며 자신을 다독이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부정입니다. 애초에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실패를 받아들이는 데서 아무런 의미도 얻지 못해요. 게을러서 자기 삶에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없습니다. 자기애는 자기도취와도 다릅니다. 자기에게 도취한 나르시시스트는 절대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지요. 오히려 자신에게는 결점이 없다고 믿고 싶어서 끝없이 외부의 관심을 갈구합니다. 자기 약점을 인정할 용기도, 약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절제력도 없습니다. 나르시시즘은 일종의 영적 게으름입니다. 모든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데는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하지요.


삶의 방향을 바꾸는 열쇠는 우리가 믿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단순한 진실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그 진실이란 인생이 사건들로 구성된다는 거예요.


운명이 사건의 연속으로 지어지는 것이라면 건강한 정신이란 곧 자기 운명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일 겁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니까 자신이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평가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비롯합니다.


지혜는 옳고 그른 것과는 전혀 무관합니 다. 지혜는 우리 자신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지성에 도움을 받아 미래를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상태입니다. 평가는 우리가 그 상태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는 행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므로 목표는 단지 그 과정을 자극하는 기능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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