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애정하는 책은 여러 번 읽는다. 그 중 한 권이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올해가 시작되고 나는 또 그 책을 읽었다. 크레타섬의 활주로, 파란 하늘과 바다가 생각났고 다시 가고 싶어졌다. 어떤 것을 좋아함에는 이유가 없지만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근거를 굳이 찾자면 조르바는 자유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무책임하고 즉흥적이고 편협한 가치관까지 옹호해줄 수는 없지만, 그 야성적임과 여유, 특히 죽는 그 순간까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자기 존재로 우뚝 서 있으려는 정신력은 매력을 넘어 닮고 싶은 부분이다. 이 책은 아마 평생을 옆에 끼며 경전처럼 들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성인이 되고부터 자타공인 장자님이었다. 장자의 생각이 내 생각과 완벽히 일치했기에 나도 나를 그렇게 부르고 남들도 나를 그렇게 불렀다. 억눌린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오히려 너무 자유롭게 컸는데 나는 왜 평생 자유를 강조하며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러다 찾은 답이 자유가 곧 진리이기 때문이었다.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공동체가 만들어 놓은 틀, 문화, 규범, 편견 속에 묶여 스스로를 구속하고 옭아맨다. 남보다 잘나 보이려는 마음, 편하게 살려는 마음, 욕먹기 싫은 마음이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는 줄 모르고 바라는 것만 많다.
내가 뭔가를 간절히 바라던 때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갈망 없이 산지가 꽤 오래되었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삶, 흘러가는대로 일이 일어나는대로 살아가는 삶, 갈망은 없지만 매순간 열정적인 삶, 그게 가장 나다운 삶이고 나는 지금 가장 나답게 살고 있다. 나다운 삶에는 고요함과 즐거움만 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라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처럼 나는 바라는 게 없어서 두렵지도 않고 두려움이 없으니 자유롭게 산다. 내 삶에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