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은 무상이다

by Norah

인생무상. 이 탁월한 단어가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면은 실제 가치의 반도 안 되는 것 같다. 무상의 정확한 뜻을 모르고 그저 의미 없고 허무한 것으로만 해석되어 열정과 의지를 꺾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도 마찬가지다. 한자로 빌공을 쓰기 때문에 비어있거나 없다로만 해석해서 혼란을 준다. 사불진언 언불진의, 개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말은 글로 다 드러낼 수 없음의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무상은 한자로 없을 무에 항상 상자를 쓴다. 항상 제자리에 있는 건 없다, 영원한 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공은 고정된 실체란 없으며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상태이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중첩 상태처럼 이것과 저것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상황과 조건에 따라 한 가지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크지도 작지도 않고, 많지도 적지도 않고...” 경전에 이런 문구들이 자주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익히 들어 본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도 이런 의미이다. 그래서 영원하지 않다는 무상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공은 같은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공은 불교의 핵심 사상이다. 하지만 오래된 불자라도 공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절을 하고, 시주를 하고, 기도를 해도 삶이 크게 진전되지 않는 이유는 이 공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의 개념을 습득하면, 진리 속에서 자유롭고 완벽하게 살 수 있으며 절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주어진 현재 삶에 집중할 수 있으며 항상 행복할 수 있다. 애를 쓰며 힘들게 살아갈 필요가 없어지고 즐기면서도 결과적으로 다 이룬 삶을 살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이미 가진 것을 계속 지키려는 욕망과 지금 없는 것을 가지려는 욕망. 이런 욕망들로 인해 때때로 스트레스를 받고 욕심이라 여기고 그걸 나쁘게 보기도 한다. 욕망이 갈등의 원인이라는 생각에, 바라는 것을 없애야겠다고 결심하거나 억지로 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욕망 자체가 아니라 욕망에서 오는 집착이다. 흔히들 욕망이 생기면 집착은 당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하지만 집착없이 순수하게 욕망을 품는 방법이 있다. 그걸 알면 인생살이가 수월해진다. 그 지름길이 공을 터득하는 것이다.


모든 고통의 시작은 집착이다. 인생은 무상한 것이어서 머무름이 없고 반드시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것도 없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서 내 뜻대로만 고집하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과 같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모두 괴로움을 수반한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그 착을 못 놓고 움켜쥐는 사람은 평생 행복할 수 없다. 반면에,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사람에겐 고통이 없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욕망과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고, 저렇게 된 데 또한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원하지만 꼭 있어야 하는 게 아닌 마음과, 과정에 최선을 다 하지만 결과는 신에 맡기는 마음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나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다들 좋다고 하는 사람이 나와는 원수로 지낼 수도 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일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느냐에 따라 모두 행동이 달라진다. 그래서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고착화시켜서 정의내리는 일은 의미가 없다. 어느 날은 내향적이었다가 어느 날은 반대가 되고, 논리적인 사람도 상황에 따라 감정적으로 바뀌기도 하며, 불친절한 사람이 친절을 베풀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사람 역시 에너지 덩어리이다. 에너지는 끝없이 진동하며 그 진동수는 내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달라진다. 그러다가 같은 주파수를 만나면 감응을 하게 되고 인연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실수로 내가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그건 내가 일으킨 것이 된다. 공명할만한 나의 주파수가 없었다면 그 일은 일어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아는 사람은 늘 자신에게 포커스를 두고, 모르는 사람은 남 탓만 한다.


살다보면 상처받고 인내해야 할 일들이 많다. 수행을 열심히 했다는 사람도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과 무상함을 완벽히 이해한다면 그 괴로움을 지속적으로 곱씹으며 품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함과 분노와 슬픔도 인생의 일부로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제행이 무상한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니 변화에 대해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지고 무얼하든 적극적일 수가 있다.


무상은 허망함이 아니다. 오히려 무상해서 항상 새로울 수 있고, 희망이 있고, 발전할 수 있으며, 무상함을 알기에 집착이 없어지고, 착이 없으니 순간에 몰입할 수 있고, 그 현존이 결국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무상함은 귀한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흑백사진이라면 현재는 다양한 컬러로 재생되는 영상과도 같다.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시간은 오직 이 순간뿐이며, 이 삶을 더 생생하게 느끼려면 정성을 다해 현재를 경험하려는 각오가 필요하다.


좋은 인생이란 무상함과 공을 생각하며 지금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으로 현재를 사용하는 것이다. 내일이 올지 안 올지, 오더라도 어떻게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을 단지 내일의 준비 과정으로만 써서는 안된다.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거리낌없이 살다보면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은 완벽히 사라지고 매순간 즐겁고 자유로운 상태에 존재할 수 있다. 나는 날마다 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