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내 자유라며 남 말에 반대로만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오직 반대의 생각에만 묶여있다. 자유를 원하면서 집착을 한다. 자유의 반대말은 남이 만든 억압이나 구속이 아니라 내가 만든 집착이다. 자유는 그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다. 자유는 내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환경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지금, 바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자유는 없다.
<좋은 문구 발췌>
자신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명확성은 그만큼 더 많아진다. 자아에 관한 지식은 끝이 없어서 성취는 있을지언정 종결에는 다다를수가 없다.
사상이란 항상 원한과 혼란과 갈등을 유발시키게 마련이다. 만일 좌익이거나 우익이거나 경전이거나 간에 책에 의존한다면 그러면 그대는 부처이거나 그리스도이거나 자본주의거나 공산주의거나 또는 그대가 원하는 무엇이거나 간에 단순히 견해에 의존할 따름이다. 그런 견해는 개념이지 진리가 아니다. 사실이란 절대로 부정하지 못한다. 사실에 관한 견해는 부정할 수도 있다. 만일 사물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들은 견해로부터 독립된 행동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한 얘기는 버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사회는 정적이기 때문에 이런 내적인 혁명이 없이 이루어진 어떤 행동 어떤 개혁도 마찬가지로 정체하게 마련이고 따라서 끊임없는 내면의 혁명이 없이는 희망도 없으니 그 까닭은 내적인 혁명이 없다면 외적인 행동은 반복과 습성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모든 정신적 심리적 구성이 권위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창조적이 되려면 권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곰곰이 따져 보면 그대는 믿음을 받아들이려는 욕망의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평화를 구가하는 사람 인간 존재의 전체 과정을 정말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믿음에 속박될 수가 없다.
안정을 찾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이성이 해방될 수가 있을까 무엇을 믿고 얼마나 믿느냐가 아니라 바로 그것이 문제이다 이런 현상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으려는 세상의 모든 것이 너무나 불안정할 때 무엇에 대해서인가 확신을 가지려는 내적인 갈망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의식하는 이성이 조용히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고 관찰하는 반면에 무의식의 이성은 훨씬 더 활동적이고 훨씬 더 기민하고 훨씬 더 감수성이 강하고 따라서 해답을 찾아낼 수가 있으리라.
믿음은 사람들을 단결시키지 않는다.
우리들에게는 그 내적인 불안정과 혼자 존재한다는 그 내향적인 인식과 맞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들 대부분이 진실을 터득하지 못한다는 어려움이 등장한다. 우리들은 국가이거나 계급 제도이거나 민족주의거나 지도자나 구세주나 어떤 다른 것이거나 간에 의지할 무엇을 원한다.
실재하는 바를 이해하고 그 실재하는 바에 올바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곧 진실로 만족한 사람이다
노력은 실재하는 바로부터의 이탈이다. 실재를 받아들이는 순간에 투쟁은 없어진다.
그대가 내적인 부족함을 깨닫고 그것을 모두 받아들이며 도피함이 없이 그 결합과 더불어 살아가는 경우에만 그대는 놀라운 고요함을 서로 짜맞추거나 만들어낸 고요함이 아니라 실존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서 오는 고요함을 발견하게 되리라. 그 고요한 상태에서만 창조적인 존재가 있게 된다.
자아 즉 나는 따라서 침묵의 경험 속에서 지반을 마련한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망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왜 이성이 어떤 신념에 집착을 하게 되는지 믿음의 모든 과정을 인간이 이해하게 되면 놀라운 자유가 존재하게 된다.
민감하지 못하고 기민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하는 이성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거나 어떤 창조적인 행위를 하는 능력도 갖추지 못한다.
단순한 사람은 복합적인 사람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보다 직접적인 경험을 한다.
종교인이란 사실은 사제복이나 사타구니만 가리는 옷을 걸치거나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살거나 이러이러한 인간이 되고 저러저러한 인간은 되지 않겠다고 무수히 선서를 한 사람이 아니라 내적으로 단순하고 아무것도 안되려는 사람이다. 그런 이성은 장애물이 없고 두려움이 없고 무엇을 향한 전진이 없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의 수용력을 지니고 따라서 그것은 은총과 하나님과 진리와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능력을 지닌다.
선택은 갈등을 야기하기 때문에 선택이 없이 의식한다는 것이 분명히 중요한 일이다.
삶은 관계의 문제이고 정체하지 않은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의식 공격적인 능동성이 아니라 기민하게 수동적인 의식이 있어야만 한다.
관계란 확실히 그대가 그대 자신을 발견하는 거울이다.
국가간이나 경제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사회적인 경계선이 존재하는 한 세계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정하고 착한 사람은 권력에 대한 감각이 없고 따라서 그런 사람은 어떤 국가나 어떤 민족에도 속박되지 않는다. 그에게는 국가가 없다.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혁명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만 가능하고 재생이란 내일이 아니라 오늘 이루어진다.
그대를 해방시키는 것은 해방이 되고자 하는 그대의 노력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