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미래는 바로 지금

by Norah

미래는 바로 지금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금 중에서 가장 귀한 금은 현금도, 소금도 아닌 지금이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지금 이 순간. 지금을 모르는 자에게 행복이란 없다.



<좋은 문구 발췌>

지식은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지식은 항상 제한되어 있고 그 제한된 지식으로부터 시작한 토론은 제한된 상태로 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에 바탕을 둔 것은 발명이지 창조가 아닙니다.

깨우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기억 회상 원인 따위가 존재하지 않을 때 당신은 통찰력을 얻습니다. 완전한 통찰력을 얻습니다.

시간은 과거이고 시간은 현재입니다. 현재는 과거에 의해 통제되고 과거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리고 미래는 현재의 변형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씀드리지요 미래는 곧 지금입니다.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사물은 더욱 잘 보이고 그에 따라 우리의 행동도 더 나아집니다.

문제와 사랑도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존재한다면 문제는 저절로 사라져 버립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문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생각을 가지고 신을 만든 것이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지칠줄 모르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이런 인간을 신이 창조했다면 그 신은 반드시 형편없는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미래는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은 결국 지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건 삶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두려움은 생리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우리를 망가뜨립니다. 시간이 바로 두려움과 생각을 만드는 인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변하지 않으면 절대로 변할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는 지연의 연속만 있을 뿐이니까요.

내가 항상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와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괴로움을 겪습니다 당신만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고통을 나누어 짊어지고 있습니다하고 말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자기만의 슬픔을 사랑하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며 그리하여 이 세상과 동떨어져서 슬픔 속에 홀로 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현재에 대한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죽음을 맞이하자는 것이지요.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십시오. 내일은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이 항상 함께 있도록 왜 지금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습니까. 그 아름다운 만남을 여러분이 과연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건 바로 무한한 자유의 느낌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은 항상 함께 있으며 거기에는 두려워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침묵은 여유를 낳습니다. 시간 속에서는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명상과 공간과 시간의 문제 그리고 시간에 과연 끝이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저는 명상이 모든 비교와 헤아림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상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명상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연주처럼 연습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연습이란 보통 완전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명상에는 어떠한 완전한 경지도 없고 성취해야 할 목표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명상은 의식적으로 할 수 없는 행위지요.

생각은 지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쌓아서 상대를 매도하거나 이용하고 신과 사원을 모시기도 합니다.

두려움 그 자체는 엄청난 에너지입니다. 사랑은 두려움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 둘은 완전히 별개의 것입니다. 여기에는 생각과 시간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내일이라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두려움을 낳습니다. 결과적으로 시간과 생각이 두려움의 주요 요소인 셈입니다.

시간은 생각이며 시간과 생각은 모두 움직입니다.

신과 성전과 기도 따위는 모두 인간이 만들어냈습니다.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해야 하며 냉소적이거나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보다 머리를 활발히 움직여서 세계의 안팍을 탐구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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