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 미셀 푸코, 노암 촘스키
정의, 진리, 규범, 본성, 이념 등 사람들은 저마다의 판단으로 정답을 내놓으려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면서도 각자 자신이 하는 말은 모범답안이라고 우기곤 한다. 전쟁은 언제나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생기듯, 내 생각도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하면서 타인의 의견에 귀를 귀울인다면 가장 이상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 또한 내 생각에 불과하다.
<좋은 문구 발췌>
촘스키; 제한된 정보로부터 고도로 복잡하고 조직된 지식을 이끌어내게 하는 도식 체계야말로 인간성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입니다.
엘더르스; 촘스키씨는 제한된 규칙에서 출발해 무한한 적용 가능성을 말하고 반면에 푸코씨는 서양의 역사적 심리적 결정론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틀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틀은 우리가 새로운 발상에 이르는 방식에 적용됩니다.
정치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그 안에서 작동하는 경제 관계 우리 행동의 규칙적 형태와 그 행동에 대한 가부를 결정하는 권력 체계 이 모든 것이 정치와 관련됩니다. 우리 생활의 본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정치적 기능 바로 그것입니다.
푸코; 우리 사회를 결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계급으로 나뉘지도 않고 상하로 위계가 고정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볼 때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촘스키; 인간 본성은 자유 존엄 창조성과 그 밖에 인간의 근본 특성들을 끄집어내는 데 바탕이 되는 개념이고 사회 구조는 이러한 가치들이 실현되어 의미 있는 인간 생활을 영위하게 만드는 공간을 가리키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촘스키; 권력은 정의나 정확성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푸코; 정의라는 개념은 특정 정치 경제 권력의 지배 수단으로서 혹은 그러한 권력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여러 다른 유형의 사회에서 발명 유통된 개념입니다.
촘스키; 이데올로기적 통제의 목적은 그런 문제들이 대중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고 대중에게 스스로가 처한 상황의 갈피를 잡을 능력이 없다거나 지식인 같은 중개자의 해석이 없으면 오늘날의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세뇌하는 것입니다.
사회 정치 문제를 분석하려는 사람은 객관적 사실을 직시하고 논의의 이성적 흐름을 기꺼이 따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춘 데카르트적 상식만 있으면 됩니다.
촘스키; 전쟁을 반대한 사람은 그 전쟁에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옳지 못한 전쟁이기 때문에 반대한 것입니다.
촘스키; 선전 체계는 그 이념을 강요하기 보다 암시할 때 더 효과적입니다.
촘스키; 제가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푸코는 계급투쟁에 참가하는 사람은 이기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지 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말했어요. 이 점에 대해 저는 아주 다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사회적 투쟁이라는 것은 어떤 뚜렷한 주장이 있어야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촘스키는 인간성에 바탕을 둔 더 나은 정의로운 사회를 내다본 반면 푸코는 서구 사회의 현재 제도는 부르주아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판단한다. 정의와 인간 본질의 실현 같은 개념은 부르주아 문명이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시대가 바뀌면 얼마든지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