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숨결 - 변택주
NATO (No Action Talking Only)
우리는 흔히 "다 아는 말이지만..."하고 끝을 흐리곤 한다. 그리고 실천은 하지 않지만 알고 있다고 말한다. 알긴 아는데 시간이 없어서, 사람인지라, 귀찮아서, 여건이 안 맞아서 등등 궁색한 변명들로 포장을 하려한다. 하지만 양심은 알고 있다. 실천없는 지식은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좋은 문구 발췌>
깨달음을 기다리는 것은 바른 수행이 아님을 알아라.
종교 여행은 시작은 있고 끝은 없다.
그저 늘 새롭게 출발할 뿐이다. 그 새로운 출발 속에서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난다.
절
그것은 나를 더할 나위없는 바닥까지 낮추어 너를 존중하는 가장 순수하고 고결한 행위다 절은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다 신성함을 온몸으로 나타내는 절절한 표현이다.
'주의깊음'이 바로 불교 가르침 정수이다.
밝은 눈으로 좋은 면을 보는 삶이 슬기롭다. 기회는 늘 밝음과 함께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그것을 우리는 주관이라고 부른다. 객관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누구와도 타협을 마다하는 독특한 내 빛깔을 내야한다.
무엇을 객관으로 보고 판단하는 능력은 그 객관 바탕 위에 뚜렷한 주관, '나'가 바로 서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한다.
석가를 만나면 석가를 죽이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이고 내가 닮으려고 했던 그 누구도 다 죽이고 '나'를 살려내야 한다.
익숙한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재미가 일어난다. 그 까닭은 창의성과 재미는 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세상맛을 제대로 보려면 태풍 중심에 서야지 언저리에 서면 안된다. 진면목!
섣불리 건드려 돌 부스러기만 남길지라도 내버려두기보다는 나다움을 찾아 내 길을 열어야 한다.
고독을 모르면 때가 묻는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말이 적어야 한다. 말이 많으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속이 비게 된다.
조고각하, 자기가 서 있는 발부리를 돌아보라는 말씀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앎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훌륭한 글은 빛을 발한다.
공덕을 의식하고 한 행위는 나눔이 아니라 거래다.
공덕을 쌓았다고 여기는 순간 이미 공덕이 될 수 없다.
이런저런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하는 행위만이 올바른 자비다.
고통을 느끼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안정은 죽음을 뜻한다.
불안정한 삶이 가장 역동성을 띤 삶이다. 불확실하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기회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뜻한다.
타산과 인덕이 반비례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고 바로 인덕과 품성을 기르기 위해 따지지 않는 비타산에 가치를 둔 것이다.
오늘 내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 - 나폴레옹
용서는 사람이 가진 여러 미덕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미덕이다.
어제 일은 전생 일 오늘은 새 날 그래서 날마다 좋은 날이다.
종교인은 진리에 맞는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한다. 부디 발보리심해서 행보리심 할 일이다.
마음이란 결코 말로써 관념으로써 맑혀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 선행을 했을 때 마음은 맑아진다. 선행이란 다름 아닌 나누는 행위를 이른다. 내가 많이 가진 것을 그저 퍼주는게 아니라 내가 잠시 맡아 있던 것들을 그에게 되돌려주는 행위일 뿐이다.
깨달음에 이르려면 두 가지 일을 스스로 실행해야 한다. 하나는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어린이 마음은 물꼬 트기를 기다리는 모래밭이요 한번 물꼬를 터 놓으면 품성은 평생 그 틀을 타고 흐른다고 말한 것은 순자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가 뭔지 아십니까. 불교도 기독교도 또는 유대교나 회교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입니다
이 절 저 절 가운데 가장 큰 절은 역시 친절이다.
나누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그 주인을 따르듯이.
앎이 바르면 행이 바르게 나온다. 하지만 스스로 안다고 외치면서도 바른 행이 나오지 않는 까닭은 참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과거나 미래에 살지 않고 오로지 현재를 최대한 살고자 하기 때문에 지난 세월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개는 돌멩이를 던지면 돌멩이를 향해 짖으면서 쫓아간다. 하지만 사자는 다르다. 사자는 돌멩이를 던진 사람에게 달려든다. 무엇을 쫓을 것인가.
사바세계, 참고 견디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아픔이란 새로운 어떤 변화에 저항한 결과이다. 무언간 낡음을 밀어내고 새로움이 오려는 움틈이다.
바른 길로 가면서도 확신이 없으면 다시 헤매게 된다.
잘못된 꼴을 보지 못하고 불편을 참지 못하는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잘 죽는 일은 바로 잘 사는 일에 직결되어 있다.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진정한 앎이란 내가 몸소 직접 체험한 것 이것만이 참으로 내 것이 될 수 있고 나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