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상담을 해 준 적이 있다. 그 학생은 자신이 가고 싶은 진로에 대해 말했고 나는 긍정적으로 답해 주었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기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 꿈을 북돋아 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학생은 너무 감사하다며 나를 최고의 멘토라고 치켜 세워 주었다. 모두가 현실적인 상황만 보고 자신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공감과 조언 몇 마디로 순식간에 최고의 멘토가 되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상담을 요청할만한 곳도 참 많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뭔가 속시원한 대답을 해 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기도 한다. 지혜로운 조언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 쳐 줄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말에 더 깊이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답정너라는 신조어도 괜히 생겨난 말은 아닌 듯 하다.
감정은 이성보다 강렬하다. 그러다보니 사람은 누군가의 가르침보다는 공감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상담사가 될 수 있고 거기다 듣고 싶어하는 말까지 잘 말해주면 훌륭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분명 공감은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고 인간관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덕목이다. 일시적이더라도 용기를 얻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공감만 원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새로운 시각이 열릴 수가 없다. 발전과 성찰의 기회도 당연히 희미해져간다. 내 말에 공감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깊이 파면 내 편을 들어줘서 고맙다, 나와 같은 의견이라서 다행이다, 나는 다른 의견은 듣기 싫다 또는 그럴 자신이 없다 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그 고민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된다.
자신의 일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말에 공감해주고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문제의 몸통은 건드리지 않고 내 감정을 보호받는 일에만 급급하다면 그것은 상담 요청이라는 그 일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대부분의 고민은 갈팡질팡에서 시작된다. 결정을 하고 담백하게 그 길로 간다면 고민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다른 생각도 경청하고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나를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 태도가 그 주변만 겉돌고 있는 나를 새로운 공간으로 데려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언제나 이성을 짓밟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면 모든 것이 광기로 흐르기 쉽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