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로부터 “너는 왜 노조편을 드느냐.”, 노조로부터는 ”당신은 사측이니까 회사 위주로 말을 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이 편도 저 편도 아니라서 입지가 애매해진 적도 많았지만 모두에게 합리적인 방법은 언제나 최선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편 가르기를 해대는 모습을 보면 참 씁쓸해진다. 이런 현상은 온라인 상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누가 잘했니 못했니, 표현의 자유랍시고 있는 말 없는 말을 몽땅 쏟아내고, 당사자도 아니면서 사건을 추측하고 아는척하며 지적질을 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리고는 유치하게도 내 의견에 동조하면 내 편, 그렇지 않으면 니 편으로 나누고 의미없는 논쟁을 펼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적이다. 더 감정적이고 덜 감정적인 것만 있을 뿐 감정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감정에 치우치다보면 본질이 흐려져서 일이 엉뚱하게 흐르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여기에는 많이 배우고 덜 배우고의 차이도 없어보인다. 상대방의 잘잘못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보니 정신적, 물질적 낭비만 가중된다. 둘 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건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대로 한 쪽만 옹호하고 다른 쪽은 비난일색이다. 상황을 냉철하고 공정한 눈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노동자가 잘못을 해도 노동자는 항상 노동자 편이고 회사가 잘못을 해도 회사는 언제나 회사 편이다. 보수는 항상 진보를 비방하고 진보는 항상 보수를 비난한다. 꺼리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욕을 해댄다. 이 투철한 편가르기 의식 때문에 우리는 큰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허구한 날 개울가에서 우리끼리 피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감정적인 사람치고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 중대사 앞에서 개인의 취향을 덧대는 것은 지극히 감정적인 일이다. 감정이란 치우칠수록 손해만 가져온다. 감정싸움에 승자란 없기 때문이다. 요즘 나라가 많이 어지럽고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 누구 편도 없다. 이제 분노를 멈추고, 경청하고, 존중하면서 편가르기 중독에서 벗어나야한다. 이것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이며 미래를 위한 길이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는 화합하되 무리짓지 않고 소인은 무리짓되 화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