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살고 있는 멘티로부터 간만에 메일을 받아 답장을 해주었다. 플랜맨처럼 열심히 사는 멘티가 행복도 듬뿍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너의 글을 볼때면 언제나 생동감이 느껴진다. 내 지난 시절을 여감없이 재현하는 듯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너처럼 예전에는 뭔가 거창한 걸 하고 싶었단다. 나 정도 역량이면 못할게 없다 생각했거든. 물론 지금도 그 자신감은 변함없지만 한 해를 더 먹으니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지더구나. 너도 느끼고있겠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내 의지, 내 기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의욕은 넘치는데 기회가 안 따라주기도 하고 별 생각없을 때 운이 따라서 잘 되는 경우도 있다. 역시 사람은 타고난 기질과 때가 잘 맞아야 꽃 피울 수 있단 생각이 드는구나.
나는 명리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공부를 하다보니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지. 패기와 열정은 교만이자 아만이었고 노력하면 무조건 된다는 생각도 어리석음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죽을 각오로 달려든다면 많은 것을 바꿔놓을 수도 있겠지만 자연에서 온 인간은 도인이 되어 초월하지 않는 한 운명에 맞게 순리대로 사는 게 답이겠단 결론을 내렸다. <순리즉유 종욕유위>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거든. 나를 자세히 알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내 인생을 새롭게 쓰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부터의 삶이 더 기대되고 요즘이 훨씬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너는 예전부터 행복에 대해 자주 질문하곤 했는데 행복은 묻고 답할 수 있는 뭔가는 아닌것 같다. 행복의 정의 역시 나보다 더 많이 꿰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행복은 순간적인 것이기때문에 무언가를 손안에 움켜쥐고자 하는 사람은 그것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성공했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소리를 하는 것인듯하다. 내가 보기에 너는 빠른 시일 안에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한다. 그리고 생각이 너무 많더구나. 이 두 가지가 너를 따라다니는 한 진정한 행복은 마주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진짜 행복이란 나는 이렇게 풀이하고 싶다. 내가 어떤 신분과 직업을 가지고 어떤 부모 밑에 크든 어떤 나라에 살든 어떻게 생기고 어떤 행동을 해왔든 그러한 껍데기를 다 버리고나서 비로소 보이는 것, 내 존재자체에 대해 깨닫는 것, 온전히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내가 느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순수하게 수용하는 것,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너는 이미 행복한 것이다. 너 또한 바깥이 아닌 내면에 집중하는 태도를 길러보는 것이 좋겠구나.
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보여지는 것은 알고보면 정말 무의미하단다. 네가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업가가 된들, 존경받는 리더가 된들 행복을 모른다면 네 존재 가치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직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전 직장 사장이 계속 교회에 가자고 권유해서 한 번 같이 따라 간 적이 있었단다. 거기서 그 사장의 며느리를 만나서 잠시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며느리는 부자집에 시집왔지만 결혼하고 너무 불행하더란다. 돈과 겉치레할 것은 많지만 알맹이가 빠진 느낌 말이다. 그 사람은 더이상 달려나갈 곳이 없을 정도로 편하고 안정된 상태에 머물러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삶이 아니다. live를 거꾸로 하면 evil이듯 삶이 아닌 것은 악일 뿐이란다.
나는 10대 때 스무살이 찾아오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상상하려해도 어떤 모습일지 그려지지가 않았거든. 생각은 많았지만 목표도 없이 그냥 되는대로 살았다. 운명이 있다면 내가 갈 길은 정해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심각하고 복잡했기에 마음 편하게만 살고 싶단 생각 뿐이었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란다.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이 된들 마음만은 편해야 한다고 여기며 살고 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 순간 스스로 만족된 삶을 살고 있더구나. 너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결국엔 네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현재라는 시간을 그 미래에 자꾸 대입을 하다보면 그 미래와 마주할 때 역시 또 다른 미래에 대한 생각때문에 마음 편하게 살 수가 없게 되지. 불편한 마음으로 사는 세상은 그곳이 어디든 지옥이 된다. 세상에는 생각없이 그냥 저냥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난 그런 사람을 참 한심하게 여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을 뿐 내가 직접 그 삶을 살아보지 않는 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답은 자신만이 알 수 있기에.
사람은 타고난 그릇과 각오를 가지고 살아간단다. 나는 네가 큰 그릇과 좋은 각오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너는 그릇의 모양과 크기가 아닌 그 속에 어떤 것을 담을지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명리학 공부하면서 배운 게 많은데 그 중 하나는 견딤의 미학이란 것이다. 기원전 사람인 강태공은 아직까지 많은 사람 입에 거론되는데 그 사람은 낚시나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라 때를 만나지 못해서 수 십년간 내공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말년에는 모든 능력을 다 쏟아부을만한 큰 기회를 만났고 인생에 유종의 미를 잘 거두었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인내를 가지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단다. 그 견딤만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우리보다 잘났음에도 힘을 못 쓰고 있는 사람도 많고 우리보다 못난 사람도 더 높은 자리 차고 앉아 있는 경우도 많다. 세상은 자로 재듯 딱딱 맞춰 살아지지 않지. 사람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람이 만든 제도와 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 불완전 속에서도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단다. 나는 너 역시 세상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순리대로 살다보면 그런 조바심도 버려지고 더 큰 길을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 하는 일 열심히, 이왕이면 즐겁게, 밥 먹을 땐 밥에만 집중하고 집에서는 배우자와 자기 스스로에게 충실하는 것, 가슴엔 늘 자신에 대한 확신과 기대감을 품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것. 그리고 건강 챙기기.
나는 대상포진때문에 지난 3주간 엄청 빌빌거렸는데 그 속에서도 나름 느낀 바가 많았다. 사람은 조금만 아파도 온통 몸에만 신경 쓰이게 되고 다른 문제는 걱정의 축에도 낄 수가 없게 되지.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병도 교만함을 없애주니 감사하기도 하더구나.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그림자를 볼 것인가 해를 것인가는 결국 내 선택, 내 몫이다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너 역시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함을 찾는 습관을 들인다면 네가 찾던 행복은 어렵지않게 발견될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더 좋아보이는 것을 찾아 헤매지말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