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 행복을 이야기하는 상대는 과연 몇이나 될까. 나 역시 너와의 소통이 참 감사하단다.
타국에 사는 사람들은 문화의 이질감에 대해 많은 토로를 하지만 차차 순응하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에 집중을 하곤한다. 사람이 너무 거창한 미래지향적 목표만 세우다보면 현실에 대한 행복감을 느낄 수가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무엇에 집중하지 말고 어떻게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너 자신에게 더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구나. 나는 "상대적"이라는 말은 참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분별심은 사람을 끝없는 욕망에 가두어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로 통하고 나와 타인, 멀리로는 자연 우주까지 하나임을 자각해야만이 경쟁과 전쟁은 사라지고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 곧 남이 나를 보는 시선이 될테니까.
그릇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네 말처럼 계속되는 깨짐을 겪으며 그릇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크고 좋은 그릇에 똥물을 담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똥통에 불과한 그릇에 그렇게 열광하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크고 좋은 그릇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면 아닌 것이지. 물을 담는다면 컵이 될 것이고 보석을 담는다면 보석함이 될 것이다. 결국 그릇은 보여지는 껍데기이고 내용물은 너의 내면 상태가 되겠지. 그릇은 한정되어 있는데 끝도 없이 퍼붓기만 해도 소용없는 일이 된다. 무언가를 채우려면 다른 것도 버릴 줄 알아야 되지 않을까.
회사에 있는 내 방 화이트 보드에 수년간 지우지 않고 적어둔 글자가 있다. "INSIGHT" 나는 무슨 일을 하든 그 일 이후의 먼 상황을 미리 예측해본다. 단순 추측일 수도 있고 설레발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습관은 적어도 나를 당황하게 만들지는 않더구나.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지금 코앞의 일만 생각하며 무언가에 쫓겨살아가는 삶 속에서 행복까지 바란다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성공했다는 CEO들을 관찰해보니 대략 세 가지 말년으로 나눠지더구나. 1. 막상 이룬 것은 많지만 삶이 허무하다는 사람. 2. 끝을 모르고 죽을 때까지 달리는 사람 3. 멈출 때를 알고 봉사하며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 나는 내가 세 번째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변을 보면 돈 있는 사람들이 돈에 대한 욕심이 더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 욕심이란 절제가 되지 않고 끝도 없다. 나는 헤드헌터로부터 많은 콜을 받았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돈과 명예보다 일과 사생활의 균형이 있는 삶을 살고 싶으니까. 이것이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길이고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이다. 내가 발전만 추구한다면 계속 이직하며 몸값을 키울 것이고 내가 노는 것만 좋아한다면 회사도 다니지 않겠지.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는 없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 하지만 행복하지 않는 삶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생긴다. 행복하지 않으면 사람이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까. 누군가를 위해 희생만 하는 사람도 그 사람은 희생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고 돈만 쫓는 사람은 돈이 곧 행복이라 생각하니까 그 속에서 존재가치를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어떻게 자신을 바라보느냐는 의미가 없다.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 자체로 존재 가치를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희생을 하거나 돈을 쫓아가면서도 행복을 못느낀다면 그런 일련의 행동은 모두 허망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걸보면 내가 바로 가고 있는가 아닌가는 이 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느냐의 여부에 달린 것 같구나.
목표가 없는 사람은 키없는 배와 같다고 했다. 목표는 원동력이 되고 희망이자 비전이 된다. 하지만 목표 중심적인 삶을 살면 과정이 불행하게 된다. 지혜는 언제나 중도에 있지. 아무리 좋다고 하는 것도 극단으로 치우치면 나쁘게 돌아간다는 점을 잘 새겼으면 한다. 균형있는 삶을 사는 네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