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묵자흑

by Norah

어린 A양에게는 젊은이의 풋풋함과 순수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철이 들었단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늘 성공에 대한 성급함과 현실에 대한 불만이 묻어나온다. 남들은 차근차근 밟아서 얻은 혜택을 쉽게 얻으려는 마음과 빠른 안정 욕구가 많은 그녀를 볼 때마다 그 시절에 느낄 수 있는 싱싱함과 청춘이 퇴색되어 보여 많이 아쉬웠다. 그런데 문득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은 분명 주변 환경의 영향도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이가 많은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고, 그녀와 교류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언니, 오빠, 직장 동료들이다. 그녀는 그 나이든 사람들(?)의 주제에 너무 빨리 합류해버린 탓인지 그들 수준에 못미치는 자신의 상황을 늘 비관만 한 것이었다.


작년에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골드 미스 강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소문난 효녀였는데 일과 집 밖에 모르던 그녀가 우연히 가입한 커뮤니티에서 만난 화려한(?) 사모님들과 언니 동생하며 어울리다가 옷과 가방을 사는데 돈을 다 써버리고 어머니는 내몰라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주변에서는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바꼈다고 많이들 속닥거렸다고 한다.


살다보면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행동이 달라질 때가 있다. 비판일색인 사람과 함께 하면 잘못된 점만 찾게 되고, 집 근처에 오락실이 생기니 거기를 자주 드나든다. 쌍욕을 자주 하는 사람과 함께 하니 툭하면 욕을 하게 되고 특정 단어만 주구장창 말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으니 그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된다. 과격한 사장님을 욕하던 상사는 점점 더 과격해져만 가고, 누군가가 지각했음에도 혼나지 않으니 너도나도 지각을 해댄다. 인간 본성은 쉽게 안 바뀐다지만 사람은 의외로 환경에 적응을 잘 하고 빨리 물드는 존재임은 확실해보인다.


인생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은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만나는 사람을 달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인생은 이 삼간(시간, 공간, 인간)에 의해 결정되어지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또 다른 나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아무래도 시공보다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변화가 가장 흔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가 원효대사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내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그들이 나쁘다고 생각된다면 그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나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를 만날 것인가. 물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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