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간이 대화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어린 이 친구는 대학생이고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인 친구들도 많다. 어제는 이 친구가 연락이 와서 사람들은 다 가짜라며 하소연을 했다. 배신 당했냐고 물으니 그런 거랑 비슷하다며 친하게 지내던 한국 남자와 대화한 내용을 캡처해서 나에게 보내줬다. 그 남자는 이 친구가 낮에 보낸 카톡을 다음 날이 되어서야 답을 보냈고 거기다 내용까지 시큰둥했으니 이 친구가 실망스러워 하는 건 당연해 보였다. 멀리 있지만 베스트 프렌드라고 저장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데 이 남자는 자신의 시험 기간이 끝나자 갑자기 냉랭해졌다는 것이다. 늘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서 힘들다는 이 친구는 자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냐며 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나 역시 오래 전에 사람이 마냥 좋아서 잘 엎어진 적이 있었다. 사람 만나는 일에 돈과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다 내 마음 같은 줄 알고 행동했다가 실망스럽고 서운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 탓만 했다. 나는 이것 저것 재지 않고 이렇게 순수한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원인을 나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흔히들 인간관계를 모닥불에 비유하곤 한다. 가까이 가면 데이고 멀어지면 추워지니 거리 조절이 필요한데 그 조절이 어려워서 다들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다고 말을 한다. 거기다 코드 맞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 한들 내 마음과 그들의 마음 크기가 같을 수가 없기에 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는 일은 거의 없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처럼 인연에도 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관계가 평생 갈거라 생각을 하고 인연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비밀도 공유하고 속사정도 털어놓는다. 하지만 끝이 없는 시작은 없다. 증오가 없다면 사랑이라는 말도 존재하지 않듯이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미리 의심부터 하고 가식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 진심이 아닌 행동을 할 때 가장 힘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혹여라도 관계가 끝나게 되었을 때 상대방 욕을 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을 각오가 되었는지를 한 번씩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내가 먼저 변할 수도 있고 상대가 먼저 돌아설 수도 있다. 둘의 마음은 같지만 상황이 서로를 쪼개 놓을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사람을 쉽게 믿는다는 것은 좋게 말해서 아직 순수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마음이 상처를 받게 되었을 때 세상이 자신을 속였다는 마음 대신 그간 잘 놀았고 좋았다고 재빨리 손을 터는 것이 그나마 빨리 마음 편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나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은 나도 그 사람도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 자신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나쁜 기억보다 좋은 추억만 기억하려 애쓰고 한 번쯤 피식 웃음 짓는 여유도 부려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을 미워하니 내가 더 못견디겠어요. 그래서 나를 위해서라도 사람들의 좋은 점만 보려구요." 문득 며칠 전에 만난 지혜로운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