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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Mar 17. 2018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여덟번째 방법

또라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억할 뿐이다.


# 나에게 죽음을 알려준 그 사람.  


 

저에게 외삼촌이 있었습니다. 어렸을때, 저는 자주 부산에 놀러가곤 했어요. 방학을 기다리다, 방학이 시작되면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 갔죠. 외가 친척 사람들과 사이가 좋아서, 그 사람들이 보고 싶어, 6시간씩 기차를 타고, 방학때마다 놀러가곤 했어요. 그때 그 사람들 중심에는 외삼촌이 있었습니다. 삼촌은 언제나 저희를 데리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삼촌이 일 끝나고 오면, 한참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 여행을 가자고 부랴부랴 준비를 시켰습니다. 잠결에 납치(?)아닌 납치를 당해 눈을 떠보니, 새벽 바다의 평온한 수평선을 바라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나는군요.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이혼 결정으로 아버지의 부재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삼촌은 그런 저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듯 항상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성율아. 삼촌을 그냥 아버지라 불러도 된다. 삼촌은 진짜 그 마음으로 있다 알제?” 경상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삼촌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이 나네요. 저는 차 뒷 자석에서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그날 저녁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불화를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깊은 상처가 되었던거죠. 왜 연인끼리 헤어진날. 이별의 아픔을 피하려고 무작정 TV를 틀고, 오락 프로그램을 본다고, 그 슬픔이 사라지지 않잖아요. 아무리 웃어도 그 웃음은 슬픔을 선명하게 하죠. 오히려 TV가 끝나면, 공허함과 외로움이 더 몰려옵니다. 공허한 웃음속에서 상처는 결코 낫지 않습니다. 그냥 시간이 흘러 흉터가 될 뿐인거죠. 





그런데 그 상처를 처음으로 보담아 준 것은 다름 아닌 삼촌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습니다. 저는 삼촌이 좋았습니다. 유년기 시절. 여행을 다녔던 기억의 대부분에 삼촌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나이를 먹어가다보니, 삼촌과의 연락이 뜸해지게 되더군요. 철부지같이, 아빠가 좋다고 아빠랑 꼭 결혼할거라 약속하던 꼬마 숙녀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 아버지를 가장 어려워하는 딸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1년에 연락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시험준비라는 그럴싸한 이유는 저에게 하나의 멋진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 못하는 날이 계속 되었죠. 간간이 삼촌의 소식을 전해들은것은 엄마의 입을 통해서였습니다. ‘삼촌 회사가 어렵다더라.’ ‘삼촌이 술을 많이 마시나봐’, ‘삼촌 한번 보러가야지’ 당시, 저는 모든것을 외면했습니다. 40대 중반의 아저씨를 20대 중반의 청년이 찾아가기가 왜이리 무거웠을까요? 





“지금 시험보는데, 이게 먼저 아니야? 엄마 삼촌도 합격하면, 분명 이해해주실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매일을 바쁘다는 핑계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삼촌의 안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삼촌이 폐암 말기란다. 이제 병원에서도 얼마 안남았다고 그래. 엄마 삼촌보러 갈거야.” 시험일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시험이 며칠 안남은 그날. 저의 모든 생각은 시험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삼촌과의 재회를 한번 더 미루게 됩니다.' 시험만 끝나면 바로갈게요 삼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렇게 속으로 외치면서요.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공부를 집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공부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집중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던 그날 저녁이 기억이 선명하네요. 그리고 공부가 유독 안되던 그 날 저녁, 엄마에게 갑자기 연락이 오더군요. 

“삼촌 돌아가셨다.”

이상했습니다. 많이 슬프지 않더군요. 저는 되게 슬플 줄 알았어요. 차를 타고 갈때도 누나는 울었지만,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무표정이었어요. 감정없는 사람처럼 말이죠. 양심이 찔릴만큼 슬프지 않았습니다. 카뮈 소설 ‘ 방인'에 나오는 뫼르소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는데, 햇살이 따뜻해 보였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장례식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반은 시험 걱정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때 제 손에 문제집이 있었다면, 공부를 하며 갔을지도 몰라요.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삼촌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웃고 있던 삼촌이 사진 속에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은 정말 인기척없이 썰렁하더군요. 그렇게 사람 좋아하던 삼촌의 장례식에 늘 함께 하던 그들은 없었습니다. 사업에 실패를 한 삼촌의 인간관계는 아플 정도로 정직했습니다.  그때였던것 같아요. 제 가슴에 묵직함이 밀려오더군요. 가슴이 너무 아파 왔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다시는 삼촌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제가 힘들때, 삼촌은 항상 저의 곁에 있었습니다. 정작 삼촌이 힘들때 전 삼촌과 함께 해주지 못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제가 너무 심하게 울어서, 아들잃은 당신이 저를 위로해 줄 정도였습니다. 저는 바보처럼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다 의미가 없구나. 정말 끝이구나.”  




너무 바보 같지 않나요?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이마 한번 쓰다듬어주지 못했습니다. 나를 아빠라 부르라던 사랑하는 나의 당신을 한번 안아주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 멍청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유독 좋아하던, 늘 외로운 나의 삼촌. 그는 그렇게 허망하게 사람들에게 사기와 배신을 당하고, 병원 치료비가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 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차가워진 그를 바라보면서 저는 정말 원없이 울었습니다. 지금도 글을 쓰며 눈물이 나네요. 따뜻한 봄날에 꽃처럼 이쁜 당신이 너무 보고싶네요. 나의 가슴 속 아버지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그가 외로울때, 그가 혼자 싸울때, 저는 울타리속에서 혼자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 미안함을 갚을 길이 없더군요. 그렇게 내 삶의 영웅이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 또라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억할뿐이다.  



삼촌이 돌아가시면서, 저는 제 삶의 죽음을 강하게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가장 중요한 것을 알게 되는 자연의 가르침처럼 말이죠. 그때부터 저는 매일 죽음을 생각합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지 몰라도, 저는 삼촌이 돌아가신뒤부터 한 가지 작은 습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갈때, 이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정말 또라이같이 들릴지 몰라도, 내가 죽는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혹은 상대방이 죽는다는 생생한 상상을 하는 순간, 누군가를 대하는 저의 태도가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삼촌이 내게 가르쳐준, 시간의 소중함을 이해한 뒤부터, 제 삶의 방향성은 더 명확 해졌습니다. '모든 사람을 안아주고 살아야겠다.' 이 마음을 먹기 시작한게 그때부터였던것 같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명사는 누구에게도 감명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한 인간을 바꿀수도 있을 만큼의 영감을 줍니다. 그렇지않나요? 항상 동사가 명사를 이기잖아요. 저 역시 제 삶에 죽음은 감히 이해한다고 할수는 없지만,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영웅의 죽어가는 행위는 똑똑히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봐 보세요. 세상은 온통 죽어가는 것들의 투성입니다. 가엾게 죽어가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도 우리의 시간은 터무니없게 짧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말이죠. 우주 전체를 보면 찰나의 순간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다시 말해, 그냥 큰 돌덩이 위에 있는 원숭이 일뿐입니다. 결국 엄청 바쁘다는 핑계로 하는 대부분은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저에게 바쁜 공부가 외로운 삼촌보다 덜 중요했던것처럼 말이죠. 유한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바쁘다는 핑계의 울타리를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바쁘게 일하는 중에 ‘ 차 한잔 할래?’ 라고 나를 찾아올때,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멈추고, 나갈수 있는 일상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도 어떤 친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내일 있을 프로젝트 기획을 미뤄버리고, 그 친구와의 커피 한잔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축복입니다. 끝이 있다는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삶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이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과 동의어 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죽음을 꿋꿋하게 쳐다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됩니다. 이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면, 여러분은 죽음을 통해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미루었던 진짜 중요한 행동을 용기있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일 여러분이 죽는다고 가정해보세요. 여러분은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요?  




#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근원이 된다.   



죽음은 나쁜것만이 아닙니다. 삼촌의 죽음도 저는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되돌릴수는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죠. 이 당연한 말에 진리가 박혀있습니다. 시간이 유한하다면, 우리는 이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써야하지 않을까요? 죽음은 말이죠. 인류에게 있어서 엄청난 선물을 주는 존재입니다. 죽음은 부정의 의미가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삶의 반대가 죽음입니까? 삶의 순간순간에 알알이 박혀있는 죽음을 보지 않는 것은 우리의 협소한 시각입니다. 삶의 반대말이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의 가능성을 언제나 내포하는 삶이 정확한 어원입니다. 결국 삶과 죽음은 떼려야 뗄수가 없는 존재인 것이죠. 나도 여러분도 언제나 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마세요. 죽음은 여러분과 저를 이끌어주는 원동력이니깐요. 여러분,‘르네상스'라는 시대를 알고 계시죠? 암흑기 중세시대를 끝 마치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예술과 문화가 부흥하는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입니다. 르네상스는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이끌어 준 혁신의 시기입니다.

어떻게 수 백년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세계적인 혁신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문화의 중심에 마사초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본명은 구이디(Tommaso di Giovanni di Simone Guidi). 토스카나 지방의 카스텔 산조반니 출생으로 1426년 피사의 카르미네성당의 다익제단화() 제작에 종사한 천재였지만, 1429년 스물 여덟살을 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안타까운 예술인이였습니다.




그의 그림 한편을 소개해드립니다.  




이 그림 어떤가요? 마사초의 성삼위일체입니다.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모습이 보이죠. 이 그림이 유명한 것은 그림을 살짝만 뒤에서 보면 알수 있습니다. 예수의 뒷편으로 보이는 곳에 원근법의 기둥이 보이시나요?

그렇습니다. 이 그림은 최초의 원근법을 나타낸 작품입니다. 굉장하죠? 마사초는 말이죠. 원근법을 회화에 처음으로 적용한 혁신가였습니다.그런데 이 그림이 왜 르네상스의 상징으로 뽑힐까요? 원근법적인 기술을 적용해서 인정을 받는 것일까요? 단순히 기술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이 그림에는 다른 비밀이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을때, 이 그림 아래 편에는 마사초의 작은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해골이 보이죠? 그 위로 작은 고대어가 보일 겁니다. 거기에 있는 내용이 참 재미있는데요.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다고 합니다.  


“너희도 나와 같이 되리라.”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죠. 삶은 희망차고, 밝은 것이 넘치지만,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젊고 이쁜 사람도 결국에는 해골이 되어 나처럼 누워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 메시지일까요?

중세에는 말이죠. 면죄부라는 이름으로 천국을 가는 말도 안되는 티켓이 판매되던 시기입니다. 정말 성당에서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면죄부를 사기위해 사람들이 몰릴 정도였죠. 당연히 면죄부를 파는 성당의 힘이 어마어마 했겠죠. 그래서 모든 중심은 신에게 집중되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그림은 특징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림속에 사람의 표정,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죠.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그림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중심축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 거에요. 신의 얼굴도 그리는데, 그 얼굴이 인간처럼 미소를 보이기도 하고, 짜증을 내는 얼굴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결국 인간 본연의 중심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신에서 인간의 시대가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인지한 사실이 바로 생명의 유한성이었던 거죠. 삶이 있으면 죽음도 존재한다는 것을 개별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힘이 얼마나 대단했냐면요? 내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은 죽음을 엄청난 창의력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수백편의 작품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베노초 고촐리, 최후의 만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등의 작품과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도나텔로, 알베르티, 미켈란젤로, 얀 반 에이크 등이 전부 이 시대의 화가들입니다. 



결국 죽음은 어떠한 부정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삶의 내포된 또 다른 생명입니다. 죽음을 순수하게 인정하면 아이러니하게 여러분의 삶은 더 행복해지고, 윤택해집니다. 여러분이 죽음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이 될수도 있고, 유한한 삶의 탄식으로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가요? 르네상스의 예술가처럼 우리도 죽음을 긍정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결국 그 관점이 우리를 더 자유로워지게 하는 이유가 되줄것입니다.  




#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는 미션 : 유서작성 미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미션이 있습니다. 바로 유서미션입니다. 저는 이 미션을 할때마다,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이 미션을 해보면,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정말 경건 해진다는 말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만큼 유서미션의 위력은 강력합니다. 유서미션의 방식은 간단합니다. 본인의 유서를 직접 적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은 유서를 마치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인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천천히 읽어내려가면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을 굉장히 부정적으로만 인식합니다. 유서를 적으라고 하면, 화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산 사람을 죽이려고 하냐는 것이죠. 재수없다고 말이죠. 




그렇지만 미국에 가보면 이게 얼마나 큰 착각인지 알게됩니다. 미국에는 장례식 샵이 작은 마을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언제든 가서, 장례물품을 살 수 있습니다. 직접 가서 관을 고르기도 하죠. 놀라운 것은 샵에 젊은 사람이 끊기지 않다는 점이죠 . 학교에서 그들은 어릴때부터 유서 적는 과정을 정규 교육과정에 배웁니다. 죽음은 척결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친숙한 대상이 되죠. 이런 철학이 수십년간 쌓였기에, 그들의 장례 문화는 우리와 사뭇 다릅니다. 죽음을 수용하는 자세가 드러납니다. 갑자기 찾아온 가족의 죽음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무작정 눈물만 흘리는 장례식만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 약간의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우리는 죽음을 부정해버립니다. 가장이 사고사로 갑자기 죽었는데, 준비된 유서한장 없습니다. 남은것은 모두 가족의 몫입니다. 제가 기부문화연구소에서 일할때 다양한 사례를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살을 한 어떤 친구는 유서조차 적지 않고 죽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과연 어떤 죽음을 원하는 것입니까?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가족에게 남길 메시지 정도는 필요하지 않습니까? 유서 미션은 바로 그런점을 그려서 시작된 것입니다. 유서를 적고, 사람들 앞에서 한번만 읽어보십시요.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런 죽어가는 행위를 체험하는 시간은 내 삶에 있어서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서를 버리지 마시고, 가슴 속에 품고 다니시길 바랍니다. 그것만으로도 삶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자세는 많이 바뀔수 있습니다. 이건 제가 보장하는 미션입니다.





삶의 기복이 심한 당신이라면, 매일이 지치기만하는 당신이라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당신이라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http://bit.ly/바나나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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