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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Nov 05. 2019

한 템포의 힘

자유리 일기


거리에서 마이크가 울려퍼진다.

에코가득 담긴 중년의 목소리에 왠지모른 설렘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한쪽을 바라본채 모여있다. 

길가에는 호기심에 몰린 인파들이 풍기는 호기심이 서려있다.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장사꾼의 말 한마디에 뭔가 기회를 놓친듯 탄식이 묻어나온다. 

이게 무엇인가? 하고 봤더니, 떨어지는 10개의 큰 핀을 잡는 노상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래 맞다. 

여기는 거리 노점상이 이벤트로 물건을 걸고, 내기하듯 사람들에게 게임을 팔고 있었다.

나는 길을 걸어가다가 그 노점을 한참 바라본다.

20대부터 40대까지 커플들이 그 앞에 진을 치고모여, 마치 서로의 도전을 격려하고 있는듯 했다.



문득 문득 들려오는 에코섞인 그 마이크 소리가 사람의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적당한 볼륨과 심심치 않은 음악의 조합이 좋다.

친구를 기다리다 나는 가자미눈으로 그곳의 재밌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갈색옷을 입은 한 여성이 남자친구를 독려하는게 눈에 보인다.  

여성에게 독려받은 남성의 어깨가 유독 더 하늘을 찌를것만 같다.

호기롭게 다가가는 남자는 그 자리에 서서 10개는 커녕 11개까지도 가능하다는 듯 의기양양한 얼굴을 숨기지못한다.




이때다!




장사꾼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불현듯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자신이 먼저 게임을 켜고, 시범을 보이는 것이다.

50대는 족히 되어보이는 아저씨의 선행어린 행동에 모두는 청년이 아닌 장사꾼에게 다시 이목을 집중한다. 요란한 노래소리와 함께 핀기구에 10개의 핀이 하나씩 내려오기 시작한다.

장사꾼은 계속해서 말을 한다.




"잘 보세요. 이렇게 하는겁니다." 





장사꾼의 말은 그 남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우리에게 하는 말 같았다.

하나씩의 핀을 잡으면서 아저씨는 더 의기양양해진다. 목소리에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손에 계획된듯한 10개의 핀이 담겨져있을때, 그의 한마디에 청중들에게 없어도 될 동기가 차 오른다.




"저 같은 늙은사람도 하는데 10개는 뭐 거뜬하시죠."


누가 그랬나? 가장 무서운 남자는 여친앞에서 자존심에 상처입은 남자라고..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여자친구를 앞에 둔 청년의 눈이 뒤집혀진다.

그리고 이내 게임은 다시 시작된다. 

술기가 올라 얼굴이 시뻘거진 청년은 이미 져버린 게임의 시작버튼을 누른다.

청년은 5개의 핀볼을 손에 넣었고, 그의 손에는 어쩌면 한번도 쓰지 않을 듯한 장난감 장미꽃 한송이가 쥐어졌다.

그렇게 5천원의 돈과 맞바꾼 장미꽃을 여친에게 줄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아저씨는 청년에 등을 대고 이렇게 말했다. 








남자들 보통 한번 더 하면 적응되서 완전 잘 하던데..



타이밍이 예술이다. 청년이 처음이라 그랬다는 듯한 위로 담긴 말. 

그 말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한번 아저씨에게 5천원을 내미는 청년. 

청년은 그 다음 손에도 어김없이 또 다른 색깔의 장미꽃을 들고있었다.



군중심리는 무섭다. 

청년의 연이은 실패는 머릿속에서 금새 사라진다.

마음 들뜬 사람들 사이에 한가지 또 다른 마음 하나가 생긴다.





답답해. 나는 더 잘할거 같은데. 왜 이렇게 못해 ? 




장사꾼은 이 분위기를 이미 알고 있다. 현란스럽게 안마기 상품을 손에쥐고, 쥐락펴락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중년의 커플을 바라본다. 술 한잔 거하게 하신 취기 어린 남성을 사장님이 바라본듯 하지만 이내 관심없는 듯 장사꾼은 남자에게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오히려 옆에 있는 여성분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망치질 한번 해볼래요? 
6번 안에만 못을 넣으면 이거 드려요.
4번안에 넣으면 이거 전부 다 드립니다. 




여성들은 6번 안에만 망치질을 하면 작은 상품을 주었다. 4번이면 큰 상품을 준다. 

단돈 3천원에 해봄직한 그럴듯한 상품은 이미 뽐을 내며,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놓여있다.

그녀는 남자를 독촉하며 3천원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내 6번의 망치질을 한다. 못은 나무에 박혔다. 그리고 그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도 장미꽃 장난감을 손에 꼭 쥐어준다. 이제서야 장사꾼은 아저씨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이정도면.. 남자는 더 잘하지. 안그래요? 사장님 맞지요?




역시 한템포를 늦춘다. 

그는 남자가 가리려고 애쓰는 심연의 깊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듯 했다. 이내 술취한 아저씨 손에는 자연스래 망치가 들어있다. 

사람들은 그 상황을 재밌게 바라본다. 자신의 돈이 아니니깐. 결과도 알 수 없으니깐. 아저씨와 사장님의 딜을 바라보며, 스스로가 이미 그 게임에 참여하는듯 보였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사장님은 아저씨를 더 도발하기 시작한다.








술 좀 드셨으니, 제가 요만큼 망치질 더 해드리면 될까요? 



마치 인심을 쓰듯 세번의망치질을 해준다. 


'저거 저러다 한번에 못이 박히는거 아냐?'

 '아저씨가 너무 선심쓰시네' 


그의 인심섞인 망치질 한번, 한번이 지날때마다 손님들의 걱정이 늘어나는것 같다.

아저씨의 힘껏 던진 망치질 도전이 시작된다.




1..2...3..4..5...6!!




힘이 들어가니 더 되질 않는 미묘한 차이끝에 그는 망연자실하게 또 하나의 장미꽃을 받는다.

하지만 장사꾼의 한템포 느린 한마디에 다시 지갑에 손을 넣기 시작한다.







여성분보다 못하네.



노련한 장사꾼은 알고 있었다. 

이 남자는 지금 여자를 위해서 게임을 시작한듯 했지만, 사실은 관중앞에서 창피해진 자신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순식간에 4송이의 장난감 장미꽃이 사람들 손에서 피어났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내가 구경하는 시간은 단 3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장사꾼은 고객들을 대하면서 몰려오는 군중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템포였다. 그는 승부를 바꾸는 한 템포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돈을 거슬러주는 순간에도 그는 상품을 사람들이 보이는 쪽에서 만지작거렸다. 

장미꽃을 줄때는 야광조명을 껏다 켰다를 반복시켰다. 

그리고 계속해서 1등 상품을 만지며, 이 제품을 제발 가져가달라는 듯 흘리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대화할때는 여자를 놓치지 않는다. 여성에게 친절을 베풀때는 희한하게 남자에게는 1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는 이유는 분명했다.

'무작정 달려들어. 이거 안되는거네. 사기네.' 라고 생각할 관중들에게 





"나에게는 너무 쉬운것이다. 얘가 못하는 거다" 


죄인들에 선고를 내리는 재판장처럼, 

그 판에 한번 걸린 물고기는 달아날 재간이없다. 

성질 급한 물고기에겐 차고 넘치는 선택권 따위는 없을테니깐 말이다. 



#





지금껏 생각해보면, 작은 차이를 일으키는 것은 대단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신라호텔에 가서 이 곳이 왜 좋은 호텔인지 디테일을 작정하고 찾아본적이 있었다.

이불이 개어진 틈새와 방향의 세기마저 조정하는 구조의 편리성, 

호텔입구 동선에서부터 절대로 만날 수 없는 타인의 흔적들.

아리아께 식당에서는 적당한 거리감을 끝까지 유지하며 음식을 주는 종업원의 동선에 참 많이 놀랐다.


테이블 사이의 음식 위로 그들의 손은 절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되돌아와서 반대편으로 직접 걸어도 대화하는 이의 눈을 결코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과하게 웃지도 않았고, 무표정하지도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그림자처럼 천천히 다가오며, 한템포 떨어진 곳에서 적당한 미소를 보낸다.


그래. 그들은 서비스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런 작은 차이가 모이면 편안함이 된다.

급하지 않은 템포. 그 작은 차이가 최고급 서비스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사실 그 작은 템포를 쉽게 놓친다.

조급해지고 빨라져서, 마치 모든 것을 뱉어내는것으로 자신의 책무를 다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착각도 그만한 착각이 없다. 






고수와 중수를 나누는 기준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호흡과 템포, 그 작은 차이가 전부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것 또한 호흡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지만, 정작 호흡을 잘 관리하고 내것으로 끌고오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고수들은 들 숨과 날 숨을 나눌때, 날숨에 더 신경을 쓴다는 말.

들숨은 채움,에너지, 생과 연결되고, 날숨은 비움, 무위,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날숨이 점점 더 길어지면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매순간 우리는 들숨으로 살고 날 숨으로 죽어간다.

그 과정에서 고수들은 채우는 것이 아닌 빼는 것을 더 신경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채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빼는 것이 나를 살려줄때가 많다. 

템포조절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빼어내는 일이란 것이다.





당신의 템포는 어떤가?





하고 있는 일에 나는 어떤 템포를 맞추고 있는가?

그들과의 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뒤로 멈춰설 수 있는가?

현란한듯 부담스럽지 않고, 강한듯 유약하게 만드는 나의 한템포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호흡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주는 장난감 장미꽃은 어떤 모습일까?














2019. 11.5 


자유리 일기






#고수 #호흡 #템포늦추기 #장사 #장난감장미꽃은 #사실 #고수의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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