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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Nov 15. 2019

수능이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자유리 일기


2009년, 학원 원장실 가죽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어.

1년을 기다린 시험.

그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지.

초조했지만 난 초조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었어.

아이들의 결과를 지켜봐야 했거든.



기어코 한 녀석이 학원문을 열고 들어왔고, 침울해진 얼굴을 보면서 나는 모든 것을 알아버렸지.

나는 가만히 그 친구를 안아주었어. 

등을 두들기며,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서글퍼서 울고 있는 녀석에게서 

정말 괜찮다는 말 조차도 그에게는 힘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어.



그 녀석은 한참을 울었어. 

정말 한참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내가 그에게 말을 건냈지.


"시험이 어땠는데."



이내 작은 목소리에 대답이 들렸어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어.




시간이 지나고 봄이 왔어,

그리고 그 녀석은 1년의 재수를 결정했지. 

다시 내 곁을 찾아와서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어.


한번은 밥을 같이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그 녀석에게 문득 이렇게 물어본적이 있어.


"너는 왜 그 대학에 가고 싶은거야." 


그 친구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대답을 하지 않았어.

그리고 조금 뒤 이야기를 하더라.


"엄마가 정말 간절하게 원해서요."


그날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이 복잡해졌었지.




그리고 다음년도 수능에서 그 녀석은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어.

나름 명문의 대학에 합격을 했고, 나는 정말 친형처럼 기뻐해줬어.

그날 둘이 부등켜 안았을때는 작년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달랐어.

우린 너무 행복에 잠긴채, 그 시간을 만끽했어.

매일 동거동락하며 공부를 했던 그의 성공이 나에게는 정말로 큰 기쁨이었거든.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너무 자연스러운 이별을 했지.

그렇게 그 녀석과 연락이 뜸하게 되었어.



2002년 겨울. 

버스자락에 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떠올라.

수능 사상 최악의 언어영역을 치르고, 2교시부터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었지.

제대로 문제 한개도 풀지못한채 큰 충격에 빠져있던 나는 10분이 남았다고 외쳐대는 감독관의 눈을 바라보고 있을만큼 패닉상태에 빠졌었지. 


돌아오는 길. 

만원 버스에 한자리에 앉아 아이들이 조잘대는 이야기를 들었지.





대부분 침울한 상태인지라 너무나도 조용했던 버스에서

서로의 정답을 대조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두 아이의 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지.

안경을 쓰고 무척이나 닮아보이는 두 녀석은 자신에 찬 얼굴로 서로의 정답을 주장하고 있었지. 

난 그저 집으로 빨리가서 쉬고 싶었지만.

또 나를 기다리는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서 집으로 가고 싶지 않기도 했어.

복잡한 내 마음 하나도 알아주지 않은채, 무정한 버스는 나를 집앞까지 끌고 가주었어.


그땐 전 국민이 앉아서 EBS의 이만기 선생님을 바라보았어.

그 선생님의 문제 풀이를 보면서 어렴풋이 기억에 나는 시험의 흔적들을 찾아보곤 했지.

그때 선생님이 그랬어.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고. 이건 출제자의 실수라고.

바보같이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몰라.





나는 지금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그날의 시간들이 떠오른곤 해. 

어른들은 내게 아주 교묘하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어.

수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가 왜 열심히 공부만해야하는지.

나는 이런것들이 내 마음속에 차츰차츰 부담으로 쌓여간다는 것을 알리가 없었어. 


"수능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야..."
"생각해보면 나는 네 나이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열심히 공부.."

나는 지난 12년 동안 하루를 위해 살아온 사람처럼.. 

공부를 해야했고,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처럼 살아왔어야만 했지.

그래서 큰 실패를 경험해야만 했던 나의 첫번째 수능날은 마치 주홍글씨처럼 

내 인생에서 크게 기억에 남아버렸어.

그래서 지금도 실패의 순간이 다가오면 나는 그날의 버스안에서 내 앞에서 떠들던 안경쓴 두명의 친구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곤해.




#





사실 얼마전 우연히 재수를 성공했던 제자 녀석을 길거리에서 보았어.

나는 그녀석을 단번에 알아보았지.

얼굴은 흔한듯 보이지만, 독특한 풍채를 지닌 녀석인지라

나는 단번에 그 녀석을 알아보고 서 있었어.



얼굴에 수염자국 가득 담긴채 피곤에 쩔어있는 그의 얼굴은 

이제는 30이 가까워진 회사원 아저씨라는 것을 너무 쉽게 알아버렸어.

곧이어 그 녀석도 나를 알아보았지. 

우리는 잠시 겉치레 가득한 인사를 나눴어.

그리고는 아주 담담하게 그 녀석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더라.



"형. 저 대학을 가고 나서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을 했고,
원하는 은행원이 되었습니다.
근데 사는게 쉽지가 않네요.
막상 은행일이 저랑은 잘 안맞는 것 같아서, 저는 요즘 고민이 참 많아요."




똑같은 얼굴이었어.

그때 그날의 2009년의 19세 소녀의 얼굴.

그 얼굴이 겉에만 늙었을뿐, 그는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어.



나는 똑같이 그를 안아주었어.

오랜만에 만난 그 녀석을 안아주면서, 내가 분명 해야할 일을 알게 되었어.


2009년에 하지 못한 이야기.

지금은 그걸 해야만 할 것 같았어.


"호준아. 이제는 너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엄마의 바램이 아니라, 너의 원함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호준아 형은 이제 너가 더 행복해졌으면 싶다."







애들아.

매일 15시간이 넘는 시간을 그 좁은 교실과 자습실에서 공부하고,

정붙일때쯤 떠나야하는 수백명의 선생님을 당연한듯 갈아타며, 

끝나지 않고 반복된 시험들을 이겨낸 너희들에게 

어제의 하루는 너무나도 중요한 시간이었을거야. 


나도 그랬으니깐.

분명히 그때의 나에게 수능은 너무나도 중요한 하루이었으니깐.



그렇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수능이라는 과거는 하나의 기억조차도 안된다는 것을 

나이 서른이 넘고 늙어버린뒤에 깨닫게 되었어.

공부가 중요하고, 배움을 실천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의미가 있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내가 원하는 대학에 나오고도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더라고.





내가 어떤 자리에 서열처럼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어.

서울대를 나와도 그 대학을 간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인생은 힘든 것이고, 

지방대를 나와도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나는 너희들의 어제 하루가 목적을 알라고 이야기하는 누군가의 가르침이었다고 이해하길 바란다.

그래 어제의 하루는 실패한 아이들이 10배는 더 많아야 유지되는 행사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것이 실패라고만 생각하는 다수의 너희들에게 단연코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말해주고 싶어서 글을 남긴거야.



고생했어. 애들아. 

오늘 하루는 푹 쉴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는 너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랄게.




2019. 11. 15


자유리 일기 




#수능은 #인생에서 #시작점일뿐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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