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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Nov 17. 2019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자유리 일기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아 네네.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진짜 좋습니다.
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교육을 들으러 왔지만 정작 스스로는 변화하지 못하는 사람.

하지만 목숨걸고 어느 부류에는 꼭 있어야만 하는 사람. 

늘 언제나 밝게 웃으며 사진의 센터에 있는 사람.

환하게 사람들은 맞이하지만 정작 그들이 진짜 누구인지는 별로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

돌아와서는 가슴한켠에 허망함이 있는 사람. 

동시에 또 다른 교육장에서도 얼굴이 비춰지는 사람.

자신이 배우는 지금의 것만이 맞다고 믿으며 쫒아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이런 부류는 특징이 있다.


배움의 주제에 대한 일관성이 없다는 것.


그저 어디가 유명해지면 그곳에 가서 사진속에 얼굴을 박아야 직성이 풀린다는것.

무엇이 뜨면, 내가 모르면 그것을 견디지를 못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하게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위의 글은 특정 누군가를 저격한 글이 맞다.

그렇다. 











내가 저격한 이는 

"과거의 자유리"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진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어쩌면 인지적인 배움이 필요한게 아니라, 

심리적인 치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다.

결국 정답은 그들 내면에 있는데, 자꾸 밖으로만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

이미 많이 배운 사람들일수록 더 그런 경우를 많이 본다.

두려워서 배회하듯 그렇게 떠 다닌다.

부초같은 사람들을 나는 가끔 알아채곤 하지만, 애써 서둘러 판자를 덮어버린다. 






# 배움의 세 가지 관점



© craftedbygc, 출처 Unsplash





생각이 감정을 통제한다고 주장하는 교육자들이 있다. 

그들의 요지는 이렇다.

생각과 관점을 바꾸면 감정은 나의 생각에 따라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참여자의 생각 변화를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 

일리가 있다.



또 한 축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감정이 생각을 통제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이 행동을 관장하기에 감정을 바꾸면 생각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참여자들의 감정변화에 노력을 한다.

역시 또한 일리가 있다.



사실 양쪽의 관점을 두고 보았을때,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는 나는 잘 모른다. 

각자의 정답을 믿고,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연구를 할테니깐.

그러면 충분한 것이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그렇지만 나는 이런 믿음 또한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어느쪽이든 상관없다면,

그저 참여하는 사람들이 지금 내 눈 앞에 놓여진 어떤 일을 잘 하고 있는지를 보라는 믿음이다. 

교육을 하는 목적은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긍정에 끝에는 현재 참여자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몰입적인 행동이 필연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생각을 바꾸든 감정을 바꾸든지가 우선이 아니다

결국은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그게 우선이 맞다.

내가 그토록 습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비슷하다.

결국 삶의 밸런스를 갖는 시선이 전 교육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goian, 출처 Unsplash


어떤 배움을 결정할때 이것을 기억해보면 어떨까?

자꾸 애꿎은 웃음지으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단체와 집단으로 부터 있으면 마음이 편해 그런 곳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정말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할 수 있는 그런 몰입을 가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배움은 배움의 과정 뒤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수백시간, 수천만원을 쓰고나서야 알게 될 것이다.

의무와 책임감으로만 가득한 교육에 '절박한 진심'이 차지하는 공간이 없다.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쫒아간다는 것은 이미 자기 자신을 잃고 있다는 증거이다.

과연 그들이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까?



인격을 이성과 감성으로 나누지 않고 전체로 볼 수 있을때 우리는 그 사람이 자발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렇듯, 이성과 감성은 양분단의 싸움의 영역이 아닌 동일성의 시선이 요구되는 것이 자발적인 배움의 기본적인 전제요건이다. 결국 내가 얼마나 밸런스를 갖춘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 ratushny, 출처 Unsplash






밸런스가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구별 능력이 있다.



배울것과 배우지 않을 것, 
만날사람과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자신이 있어야 할 곳과 있지 말아야 할 곳.



그리고 당신은 이런 구분을 반드시 당신 삶의 몰입을 올리는 것에 마무리를 지을 것이다.

실천하고 행동하며 변화해야 할 단 한가지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현재 당신이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을 더 몰입하기 위해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배움은 당신의 일의 몰입을 정말 더 날카롭게 만들어주고 있는가?

맹신하는 모든 부분을 빼보자. 당신 삶에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왜 그래야 할까?



내가 수업할때 늘 강조하는 이 한가지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배움은 가르치는 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참여자의 자세와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2019. 11. 17

자유리 일기


#나에게 #뼈때리는 #이야기 #내게 한말이라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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