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자유리 Dec 06. 2019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는거야.

자유리 일기


#







조카가 얼마전 세계아동미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그림은 우리의 미래를 알려주는 시그널일지도 모른다.                          <제목 : 무중력 오리>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모였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오기에 우리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누나들과 대화를 하면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살아온게 참 기적 같다. 
이렇게 여기에 모여서 따듯한 밥한끼를 하는게, 왜 이렇게 감사하지."








© mkwcalvin, 출처 Unsplash






정말 그랬다.


나는 13살 이후로 온전한 가정을 느껴본적이 없었다.

방황하던 사춘기가 끝나고 20대가 되어서도 나에게 가족이라는 따듯한 울타리는 없었다.

엄마가 일하러 집을 나갔을때, 집은 언제나 썰렁한 공간이었다.


나는 엄마가 돌아오는 시간을 늘 기다렸다.

12시면 엄마는 돌아왔다. 그리고 한손가득 우리 세 남매에게 줄 무언가를 검은 봉지에 가득 담은채 가지고 들어오셨다. 나는 언제나 그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행복의 힘은 잦은 바람에도 부숴질만큼, 빈약한 존재이었다.

가정의 불운은 머지않아 우리집의 대문을 두들겼다.

잘나가던 사업이 연달아 연쇄 부도를 당하고, 중간에 자금관리를 잘 못한 엄마에게 수십억의 빚이 생겨버렸다.

빚이 많았던 우리집은  언제나 이사를 달고 살아야 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을 지키는 불행보다는 생존이라는 선택을 했다.

우린 그렇게 셀수 없이 많은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지하실 집 바닥에 비가와서 물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정신없이 바닥을 걸레로 닦고 계셨다. 

온 사방이 곰팡이가 쓸어 울어버린 벽지 사이에 썩은내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안쓰러운 그녀의 뒷 모습이 보였다.


어린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가난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햇빛 한점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그 집의 침대위에서 창백한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 lensinkmitchel, 출처 Unsplash







빚쟁이들은 언제나 독을품은 얼굴로 집을 찾아와 계시지도 않은 아버지의 근황을 물었다. 

그날 우리 집에 찾아온 "애기엄마"라 불리던 그 여성의 얼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나를 증오하듯이 바라보았다. 

마치 그 얼굴은 세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나는 그런 상황들이 두려웠다. 그리곤 한편으로는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정말 몰랐다.

이제는 나와 나이차이 얼마 나지않던 그때의 40대 여성도 

그날은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웠다는 사실을.


어리고 철없던 나는 지금의 상황이 모두 그녀의 탓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엄마에게 차갑게 대하기만 했다.








© seteales, 출처 Unsplash







지독스러울정도로 혹독한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매섭게도 내 삶의 모든 저주를 가족에게만 풀어댔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고리, 불완전한 가족의 연결끈, 생활보호 대상으로 들어온 임대 아파트의 메말라가는 철문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에 그 보다 좋은 재료는 없었다. 모든 것은 다 가족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교를 가지 않았고,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겉을 돌며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친구들만을 찾으러 다녔다.

세상에 원망과 저주를 품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소위 문제아라는 닉네임을 달고, 각자의 아픔을 우리식으로 풀어대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곳에서 깊고도 깊은 방황을 해야만 했다.


 


큰누나는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일찍도 결혼을 했다.

나는 그녀의 선택이 가족이 잃어버린 끈을 밖에서 찾으려고 했던 누나의 외로운 마음이라는 것을 나의 첫번째 조카가 태어나던 때에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 이후 겉돌기만 하던 큰누나는 떠돌이의 삶을 살아야만 했고,

끈없는 집안에 들어오는 것보다 자신이 가진 빚을 청산해주는 그 남자를 따라 새로운 삶을 사는것이 더 좋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도 누나의 선택이 너무나도 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녀의 엄마처럼 혼자 아이를 키우는 선택을 하였지만, 

나는 누나가 세상 그 누구보다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 또한 우리의 엄마처럼 목숨을 다해서 아이를 지켰고, 

그 아이는 세상 그 누구보다 엄마만을 사랑하는 재능을 가진 건강한 고등학생으로 자라주었기 때문이다.



작은 누나는 안정적인 남자를 선택하였다.

어릴때부터 유독스럽게 엄마를 지키려고 했던, 아이의 마음속에서

외도의 아픔이 그 힘든 순간이 여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녀는 생생하게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을 굳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남자를 선택했다.

예상대로 그녀의 삶은 담백하고 진솔하게 살아가게 되었다.

그녀는 퍽이나 우리를 닮은 천사들을 낳았고, 엄마의 걱정을 앗아가버릴만큼 건강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 ohamko, 출처 Unsplash






엄마는 정말 억척스럽게 살았다.

그녀의 삶은 주관식이 아니었다.

객관식으로 구성된 문제앞에서 그녀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선택번호 1번은 앞만 보고 살아라. 
그리고 나머지 2번은 이제 그 힘겨운 삶을 끝내라.


엄마의 인생은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녀는 눈앞에 아이들만 보고 인생을 버텼다. 

3개의 직업을 하면서 고질병을 달고다니면서 엄마는 아이를 살리기위해 무척이나 노력해야만 했다.

그렇게 엄마는 묵묵하게 1번만을 믿으며 여기까지 살아왔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누구 하나 이별을 고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별식을 거친 사람들처럼 묵묵하게 이별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에 와서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이별뒤의 삶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사이 우리에게는 일어난 많은 일들을 이야기하며, 나는 다시 그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살아온게 참 기적 같다. 
이렇게 여기에 모여서 따듯한 밥한끼를 하는게
왜 이렇게 감사하지.."









#너무너무 #사랑해 

 


2019. 12. 6. 

자유리 일기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는거야




크리에이터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어요. 함께 미래를 준비해가요,

http://soonganlab.com/콘텐츠-연금술사단/





매거진의 이전글 인공지능 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서 오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