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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Mar 22. 2018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열한번째 방법.

또라이는 트렌드를 버리고, 촉수를 가진다.



# 느리게 산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은 단순하게 행복하다는 느낌이 아닙니다. 두 단어는 분명 동의어가 아니잖아요. 또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성취하고 해 나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죠. 이건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니깐요. 성공이 꼭 우리의 모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왜 그런 사람들도 있잖아요. 수 십년간 자기가 살아온 습관과 틀에 맞게 세상을 보다가, 이제는 그 틀이 너무나 강해져서, 돈과 시간과 여유가 많이 생겨도, 더 이상 자유로움을 즐길 수 없는 사람들. 



그럼 '자유로움'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자유로움은 같은 거리를 가장 천천히 걸으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빠르게 갈지, 서로 간에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을때, 누군가는 뒤에서 그것을 흐뭇하게 관망하며 서 있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에 멈춰서 있거나, 아주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유로워보이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아니라 겉옷을 보고, 그들을 속단하는 사람들의 시선속에는 진한 '경멸'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들 눈속에 우리는 그저 '무의미'가 되버리죠.

하지만 세상의 아름다움은 그저 무의미함에 깊숙이 담겨져 있습니다. 무의미를 의미화 시키는 것이 예술이라는 반전을 우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좋아요. 그래도 저는 한줌 내리는 햇살 사이로 뻗어있는 나뭇가지의 앙상한 생명력을 바라보는 이 시간이 생산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날카로운 눈매보다 아름다우니깐요. 여러분 느리게 걸으며 살아 보세요. 느리게 걸으면, 이 세상은 그 사람들에게만 작은 선물을 줍니다. 그게 뭐냐구요?

이 선물을 무엇이라 정의내리기는 쉽지가 않아서 오늘은 대문호의 정의를 빌려봅니다. 그 선물은 바로 '촉수'입니다. 니코스 카찬차키스가 이야기 한 말 그대로 ‘촉수’입니다. 더듬이와 같은 촉수가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단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발견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단어를 설명 해보겠습니다.




 제가 바라본 자유로운 또라이들은 모두 촉수를 한 두개씩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촉수 그게 뭘까요? 촉수는 봄날의 꽃날을 다음에도 필 꽃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꽃이 피면 그 꽃은 죽기 시작합니다. 피자마자 꽃은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걸 촉수라고 합니다. 시인의 눈빛이라고나 할까요? 마음의 눈빛이라 할까요? 눈과 눈빛, 너무 다르지 않나요?




촉수를 가진다는 것은 세상을 명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명사로 바라본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학창시절 시험기간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우리는 고득점을 위해 모든것을 명사로 배우고 명사로 외웠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국어시험에 “구름”이 정답이면, '구름'만 적으면 되었습니다. 따뜻한 구름이라 적으면 오답이 됩니다. 감정이 들어간 형용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못됩니다. 구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구름이 왜 아름다운지, 동사는 사치입니다. 우린 수 십년간 그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고날 때부터 모두 가지고 있던 촉수를 스스로 잃어갔습니다.




촉수가 없는 우리는 명사로만 세상을 바라봅니다. '하늘'은 '하늘'일 뿐이죠. '햇빛'은 '햇빛'입니다. '자동차'는 '자동차'일 뿐이죠. 그게 다입니다. 그 이상의 것은 '무의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교육 받은대로 우리의 수많은 감정선을 단어안에 가둬놓고 살고 있습니다.

'엄마'를 '엄마'라는 명사에 가둬놓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생산적인 사람의 눈이 가진 한계입니다. 세상을 세상이라는 틀로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눈에 봄은 그냥 겨울이 끝난 봄일 뿐입니다.




# 촉수를 가진 자의 봄.



자유로운 사람의 눈에 봄은 그냥 봄이 아닙니다. 아지랑이 하나하나의 숨결이 보입니다. 따뜻한 햇살은 매일 매일 저에게 다른 영감을 줍니다. 봄날의 거리, 길거리에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이 즐비한 도로앞에 한 노인이 힘겹게 서 있습니다. 그 노인의 손에 쥐어진 방금 산것 같은 노란 지팡이의 코팅이 벗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게 그 노인의 늙은 몸과 너무 대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노인은 늙어서 힘이 없어 보입니다. 나약한 노인은 천천히 차가운 콘크리트 상자에 앉습니다. 



행여 다칠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한숨을 쉽니다. 그 자체가 버거워 보입니다. 허리는 구부러지다 못해, 곧 부러질 듯 불안함이 끝 없습니다. 그 앞에서 자동차가 노인을 무시하며 지나갑니다. 차들이 지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그 힘만으로도 노인의 몸이 곧 쓰러질 것 같습니다. 


노인 옆에 한그루 마른나무가 있습니다. 썩어가는 듯, 이미죽은 듯,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바닥에 가득 찬 검디 검은 나무입니다. 도심지 나무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 무관심이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처량합니다. 하지만 죽어보인 나무의 몇개 안 남은 나뭇가지에서도 방금 핀 꽃잎이 새록새록 묻어납니다. 죽어가는 나뭇가지위에 이제 막 싹튼 열매가 자리를 잡는데, 그 아래 새 지팡이를 쥔 죽어가는 노인이 있습니다. 

도심지 한가운데,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나무 한그루와 노인이 그렇게 서로를 연민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유인의 촉수는 이런걸 놓치지 않게 합니다.




세상에는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흩뿌러져 있습니다. 파란하늘 3월이 오면 우린 고흐의 값 비싼 그림을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가로수에 매마른 가지를 향해 고개를 들어보세요.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고흐의 붓터치를 받은 새 생명이 잉태하는 꽃같은 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봄을 맞이하여 대청소 하려고, 낡은 그림을 꺼내놓은 골동품가게 앞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습니다. 

먼지 가득한 그 그림 하나하나에 나의 촉수가 움직입니다. 세상 처음 맞이한 것 같은 예술품들을 공짜로 바라보는 내가 과분할 정도로 오랜 시간 그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옵니다. 


따스러운 햇살은 얼어버린 도시를 위로하듯이, 곳곳에서 생명의 잉태가 노래를 합니다. 그 노랫소리를 듣느라,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는데, 오랜시간을 써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자유인의 촉수는 내 인생의 질을 바꿔버립니다. 자유인의 촉수는 이렇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여러분이 이 촉수를 가지기 위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 한 유명인의 세계를 향한 거짓말



장내가 술렁이는 검은 벽면 앞에 늘 즐겨입는 검은 폴라티에 파란 청바지를 입고, 낡은 회색 뉴발란스 신발을 신은 사나이가 등장합니다. 안경을 만지며, 그는 연내의 사람들을 향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칩니다. "우리는 세상을 놀래킬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폰, 엠피쓰리, 인터넷..  폰, 엠피쓰리, 인터넷, (관중들 박수)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가지를 하나로 담은 아이폰을 세상에 출시합니다.” 장내의 모든 관중은 아마 이 영광적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게 된 날을 말이죠. 



여러분들은 그날을 기억하시나요? 저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날이었습니다. 핸드폰과 엠피쓰리, 그리고 인터넷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 당시에는 정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것이죠.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고, 대한민국의 핸드폰시장은 크게 요동치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2009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서로 이 아이폰을 먼저 사용하려고 노력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세상은 한 천재의 영감에 크게 반응합니다. 아이폰은 당대 최강의 트렌드의 중심에 서게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폰 프리젠테이션 당시, 잡스가 아이폰을 완성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거짓말이 될 수도 있었다는 거죠. 잡스는 스스로를 위대함에 더 다가가기 위해 먼저 세상에 폰을 공개하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기억해야 될 것은 잡스의 행동이 아니구요. 우리는 말이죠. 그렇게 트렌드가 중요하다고 자주 말하면서, 정작 트렌드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요. 여러분 이런 적 없었나요? 사람들이 한 둘, 특이한 옷을 입고 오기 시작하면, 거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지 않습니까? 그래도 내가 바로 움직여지지는 않죠. 호기심이 생기는 것 뿐이죠.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똑같은 옷을 입고와 거들기 시작합니다. “야 너 몰랐냐? 이게 진짜 트렌디한건데, 너만 빼고 다 알아” 이런말을 듣게 되면 어떤가요? 우리는 왠지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지 않습니까? 




올 겨울 롱패딩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너도 나도 입기 시작한 롱패딩의 열풍속에 어떤 본질이 숨겨져 있는지 말이죠. 한,두명이 입기 시작할때는 나도 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는 롱패딩이 정말 이뻐보이죠.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입기 시작하면 갑자기 거부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나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마주칠때의 기분이란, 참 착잡하지 않습니까? 집 앞에 나올때 걸려있는 롱패딩을 바라보는 시선이 딱해지는 거죠. 



이걸 입어? 말어? 어느 순간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롱패딩 앞에서 우리는 후회하게 되죠. 트렌드가 너무 심해지면 말이죠. 오히려 독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지 않습니까? 진짜 좋아하는 가수를 남이 모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생기잖아요. 우리 누이도 어렸을적, 김경호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2집에 김경호가 확 뜨니깐, 더이상 좋아하지 않더라구요. 우리는 그렇게 이유모를 희소함에 목을 메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잡스가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닙니다. 잡스는 자신이 먼저 말한 내용을 지키기 위해 애플 본사로 돌아와서 사람들을 엄청나게 압박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프리젠테이션에서 말한 멋진 아이폰을 거짓없이 세상에 드러내게 됩니다. 결국 저는 트렌드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트렌드는 말이죠. 한마디로 가짜입니다. 여러분이 맞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람들이 맞다고 믿기 시작하면 모든것이 트렌드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트렌드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따라가는 노력보다는 스스로 트렌드를 창출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잡스는 그 트렌드를 거짓말을 해서라도 먼저 이끌어낸 사람인것이죠.




# 트렌드를 버리고 촉수를 가지세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에 최고의 진리가 있나요? 만약 스티브 잡스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을까요? 모두가 엇 비슷해진 스마트폰을 들고, 지하철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흐뭇하게 바라볼까요? 기업의 패러다임은 잡스의 아이폰을 하나의 당연한 진리처럼 맹목적으로 후속작을 만들어내는데, 많은 자금과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만약 잡스가 살아 돌아온다면, 맹목적인 유행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애플 임원 회의를 급하게 열어, 

“아직도 왜 스마트폰인가? 아이폰10이 과연 어떤 부분에 혁신적이라 할 수 있는가?” 

이렇게 질문하며, 화를 내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최고의 진리는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우리가 그 진리를 계속 깨부숴야 하는것 만은 동의되는 바입니다.

 그런점에서 저는 트렌드에 대해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집니다. 매년 새롭게 출시되는 트렌드 관련 서적은 서점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단어와 정보를 사람들이 정말 쫒아가고 있는 지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제 주변에도 말해줘야 '트렌드'인지 아는분이 넘쳐납니다.) 저는 전혀 트렌드를 쫒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미래가 전혀 걱정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트렌드를 보는 눈은 없지만, 자유의 촉수가 있기 때문이죠. 이유없이 쫒는 트렌드를 공부하느라 저의 소중한 시간을 쓰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버린 지 오래입니다. 



대신 저는 천천히 현재를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자연의 메시지를 조금 더 듣기위해 천천히 걸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또라이들은 트렌드만을 따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촉수를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를 가도 여행가듯이 삶을 음미하며 살 수 있습니다. 같은 사물을 바라봐도 더 풍부하게 보는 것입니다. 트렌드를 쫒아도 됩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트렌드를 창조 할 능력도 없으면서 맹목적으로 트렌드만 쫒는 것은 정말 경계해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 드리고 싶네요. 



트렌드는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합니다. 트렌드를 따르기 위해 우리는 많은 돈과 시간을 써야합니다. 과거에 지나가버린 트렌드는 쓰레기가 됩니다. 쳐다도 안보게 됩니다. 하지만 촉수는 다릅니다. 촉수는 변하지 않습니다. 본질이기에 단단합니다. 돈이 들지도 않습니다.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한것이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우리의 촉수를 살릴 여유도 없습니다. 과거에 지나간 트렌드는 쓰레기이지만, 과거가 되어버린 촉수는 추억이 됩니다. 그 빛남은 평생 내 기억에 남게 됩니다. 순간이 쌓여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촉수를 가진 사람들에게 ‘엄마'는 ‘엄마'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의 늙어감과 선명한 주름을 바라봅니다. 절대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엄마의 죽어감을 피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시선안에 풍요로운 사랑이 담깁니다. 그렇기에 또라이의 시선속 모든 죽어가는 것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썩어가는 나무 한줌에도 감동이 옵니다. 조잘되는 어린 학생들의 길거리 장난질이 시끄럽지 않습니다. 이미 죽어버린 모든 것은 경외의 대상이 되며, 그 속에서 낯선 시선과 창의력이 솟아납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정말 많이 묻습니다. 



“이런 기획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세요?”

저는 샐쭉 웃으며 대답합니다. 


“일상에 널린 거 한줌 퍼다 가지고 와요.”




# 촉수를 가지는 법 :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라.




촉수를 가지는 미션이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 됩니다.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 더 좋습니다. 클래식이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도 좋습니다. 저는 클래식이 더 영감을 줍니다. 시간은 40분 남짓이 좋습니다. 거리는 최대한 짧아야 합니다. 지하철 1정거장 보다 짧으면 좋아요. 약 1km남짓의 거리가 좋습니다. 이 거리를 걷습니다. 주변을 바라보면서 때론 거꾸로 걸어봅니다. 하늘도 봅니다. 인사도 나눕니다. 바닥에 평소 절대로 쳐다보지 않는 것들에 더 집중해봅니다. 그들의 메시지를 듣는 마음으로 다가가 봅니다. 햇살의 변화에도 집중해봅니다. 사람들이 어떤 표정인지 가만히 마음을 담아 그들은 쳐다봅니다. 색감에도 집중해봅니다. 사람들에게 평소 사랑받지 못하는 것들을 더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세요. 



40분간 충분히 천천히 걷기를 했으면, 이제는 멈춰서서, 내가 걸어온 길에 무엇을 느꼈는지, 시적언어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낯설게 보인것은 무엇인지. 그런게 없어도, 느낀점은 없는지 글을 적어보면 너무 좋습니다. 그 속에서 많은 창의성과 창조가 나옵니다. 이때 스마트폰은 절대 꺼내지 않습니다. 나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끄고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잠시 현재의 일상에 떨어져야 합니다. 낯선 곳을 여행을 온 사람이라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미션은 나에게 촉수를 살려주는 한가지의 방법입니다. 당신이 미션을 통해 조금은 더 자유로운 촉수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삶의 기복이 심한 당신이라면, 매일이 지치기만하는 당신이라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당신이라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http://bit.ly/바나나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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