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자유리 Apr 11. 2018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열여섯째 방법

또라이는 끈기의 힘을 안다.







# 끝을 보시겠어요.  


“뭔가 하나를 하면 끝을 보는 성격입니다.”  


사주를 보거나 관상을 볼때, 항상 제게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주를 맹신하지도 않고, 종교가 있지도 않습니다만 언제부턴가 비슷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의지력이 있어서 끝을 보겠어요. 아주 좋습니다 그점은 말이죠.”  


끝을 본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보인다고 하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 말이 저에게 달갑지 만은 않은것이 사실입니다. 끈기는 저에게 타고난 것이 아니었으며,너무나도 힘겹게 배운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21살에 평범하게 군대를 갔습니다. 누구나 가는 군대이고, 소위 뒷배경이 좋거나 운이 좋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뺑뺑이라고 하죠? 우연히 저는 15사단 승리부대에서 전경으로 차출이 되었고, 또 뽑기를 해서 가장 운이 좋다는 전라도의 한 경찰서를 배정받게 되었습니다. 군인들 사이에서 경찰서에 가면 조금 편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동대에 가서 시위를 막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리고 도심지에서 근무할 수 있다고 해서 저는 진짜 운이 좋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경찰서의 생활은 저의 실낱같은 희망을 부쉬기에 충분하더군요. 군대에 가서 처음 만난 고참이 제게 한 말이 기억이 납니다. 




“나는 말야. 서울 사람들이 정말 싫어. 넌 서울 사람이잖아. 그러니깐 나는 너를 정말로 힘들게 할거야. 왜냐면 내가 서울사람들을 정말 싫어하거든.”




자대에 도착한지, 5분도 안되어 저는 저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그게 얼마나 저를 아프게 할지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군대 가혹행위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거든요. 우리는 전화벨을 듣고 일어나서 근무교대를 하는것을 규칙으로 삼았습니다. 근무시작전 20분전에 전화를 울려서 다음 근무자를 깨우는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한 곳은 초소였습니다. 경찰이 지나가는 차량을 세워 검문을 하고 문제가 없는 차를 보내는 일을 하는 곳이었죠. 하지만 고참은 제게 일부러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근무가 시작되기 1분 전 쯤 잠깐의 벨소리를 내었습니다. 








“띠릭”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벨 소리를 듣지 못하면, 고참이 저를 찾으러 내무반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됩니다. 군화를 벗고 온 몸 구석구석을 때리기 시작합니다. 자다가 얻어 맞아 일어나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몸은 바삐 움직여야 합니다. 근무시간이 늦었기 때문이죠. 진짜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제가 소리를 듣지 못한 다음날에는 내무반에 차가운 서리가 피어납니다. 최고 고참은 바로 밑에 고참에게 제 욕을 하며, 훈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럼 정말 전체 분위기는 나로 인해 지옥이 되버립니다. 저는 그게 견디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저를 욕하면 좋은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훈계하고, 괴롭힙니다. 그러면 윗 고참들이 순서대로 다시 저를 괴롭히고, 욕을 합니다. 꼬집기도 하고, 정신차리라고 밥을 굶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근무전에는 잠을 자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삐릭' 울리는 찰나의 시간이 언제 올지 몰라서 새벽근무이면 그냥 밤을 꼬박 세워버렸습니다. 그리고 근무에 나가는게 더 편하더군요. 잠을 못자니 상태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못 자는 괴로움보다 고참이 만들어내는 차가운 분위기가 죽기보다 더 싫었거든요. 







겨울이오면 고참은 저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눈덩이를 얼음처럼 만들어서 손에 쥐어줍니다. 이것을 손가락의 온기로 녹여보라는 것이죠. 정말 손이 얼어터지는데 그것을 꾹 잡고 있습니다. 그 괴로운 모습이 즐겁다는 듯이 옆에 앉아 웃는 고참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저는 기어코 얼음을 녹여야 했습니다. 포기는 곧 죽음과 같은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끝까지 해야만 했습니다. 끝까지 얼음을 녹이고 나면, 손이 너무 추워서 감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오는게 너무 싫고 두려웠습니다. 




정말 다양하게 괴롭혔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걸리지 않은 다양한 가혹행위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선긋기'였습니다. 고참은 항상 바닥에 선을 그렸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잘 못하면, 어김없이 바닥에 선을 긋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 저는 거의 몇 시간을 기마자세로 서있어야 합니다. 고참은 티비를 틀어 재밌는 예능을 보던가 아니면 테트리스 게임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힘들어하는 소리를 내면, 버럭 짜증을 내며 조곤조곤 말을 했습니다. 



“아..씨. 시끄럽다. 짜증나게”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땀 투성이가 되다못해 온몸에 감각이 사라집니다. 투명의자를 2시간 이상 하다가, 실수로 바지에 소변을 본적이 있습니다. 정말 온몸에 구멍이 열렸다 풀렸다 하니깐요. 그때 정말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비참함을 느낄 여유도 없었습니다. 고참이 불같이 화를 냈기 때문이죠.


 “XX 더러운 새끼. 뭐하는 거냐? 진짜 죽고 싶냐?” 


선이 그려지면 끝까지 해야만 했습니다. 중간에 포기는 없었습니다. 서울 사람이라 싫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정말 이해가 안되더군요.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온몸이 땀으로 젖은채로 바닥에 누워 소원을 빌었습니다. 


“제발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요. 저주 받은 내 삶이 오늘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고..” 


속으로 끝없이 혼자 중엉거렸습니다. 정말 매일이 괴로웠습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이번엔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깐요. 







누군가를 아무런 이유없이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게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저는 1년간 온몸으로 경험하였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고. 저는 그말을 참 싫어합니다. 그건 미움을 받아 본적이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진짜 이유없이 미움을 받아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맞습니다. 차갑고 냉철한 미움을 받아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아픈지 잘 압니다. 무관심해주면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하루만이라도 무관심해주는 날이 있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1년 1개월의 시간동안, 저에 대한 무관심이 있는 운좋은 날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참 운이 좋은 줄 알았던 전라도의 군생활은 인생에서 가장 최악이라는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때 동기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더 많은 괴롭힘을 당했을겁니다. 



그런데 저는 한번도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가보자." 이 마음 하나로 버티고 살았습니다. 아니요 더 정확하게 말해서 살아야 해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버텨서 전역을 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는 그 마음 하나가지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행히 건강하게 전역을 하게되었습니다.  



 

# 최악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준 인생 최고의 교훈.  



보통 군대에 간 남자들은 군대 전역일을 정말 간절하게 기다립니다. 그 이유는 자유로운 나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죠. 그래서 남은 날짜의 분단위, 초단위를 전부 계산하면서까지 전역일 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전역을 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놓습니다. 저 역시 전역하면 어떤 곳에 여행을 가고, 술을 마시고, 누구를 만나고 계획을 철저하게 세웠습니다. 그렇게 전역일이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소원을 하던 전역을 하고, 사회에 나와 저는 알게되었습니다. 사회는 나의 생각과는 정말 다른 곳이라는 것을요막상 전역을 하면, 생각보다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죠, 내가 계획한 일을 생각보다 많이 안 하게 됩니다. 분명 군대에서는 간절했는데, 사회에 나가면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이죠. 그건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엄마, 내가 전역하면 정말 잘 해드릴게요.”


이런 따뜻한 공약 아닌 공약을 만나는 사람마다 남발 했습니다. 하지만 전역을 하고 딱 1년만 지나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를정도로 달라지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저는 군대 생활이 지긋지긋 했습니다.  누구든 나를 여기서만 빼내만 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랬던 제가 사회에 나와 그렇게 힘들어하던 군대시절을 혼자 추억하며, 스스로 위로받는 나를 보게 된 것이죠.







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사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가끔 제가 학원 사업을 빨리 시작한 이유를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하며 물어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사업을 시작한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업을 시작한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인문학의 가치를 알린다거나, 교육의 특정한 목표가 있어서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돈 벌려고, 살아야해서 시작했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찝찝함이 가득한 표정이 있지만 그게 정말 사실입니다.

먹고 살려면 남들보다 2배는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죠. 거울 한번 제대로 안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 힘든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힘이 너무 들어 가끔 바닥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면 신기하게 군대 생각이 났습니다. 군대 고참얼굴이 그려집니다. 그러고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서울새끼들이 다 그렇지 뭐..” 


그 소리 한번 생각하고 나면, 신기하게 먼지털듯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영하 17도에 얼어버린 손으로 학원 전단지를 붙이면서 이런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야 그때 만진 눈덩이보다 낫네. 이게 진짜 눈은 아니잖아.하하” 


잠을 몇시간 못자고 설명회를 준비할때면, 또 군대 생각을 합니다. 


“군대에서 내가 잠도 안자고 버티던 놈이다. 뭘 못할까?”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생깁니다. 그때 저는 또 군대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고참이 그린 선 위에 서서 기마자세를 취하던 나를 기억하자. 너는 정말 끈기 있는 놈이다. 4시간 동안 기마를 선적도 있잖아. 그것보단 이게 낫다. 나는 포기하지 않을거야.” 


이 마음 한번 먹고 다시 내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군대생활이 오히려 제게 힘을 주더군요. 그렇게 말도 안되는 가혹행위가 나에게 성장의 동력으로 남아 주더군요. 지금도 그 일이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고참을 원망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때 나에게 안좋았던 기억들이 나를 더 끝까지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으니깐요. 끝까지 하는 나의 성격은 내 삶의 지옥속에서 그렇게 만들어져갔습니다.





# 잠깐, 느껴지는 충만함이 자유가 아닙니다.  



저는 언제나 자유를 주장합니다. 여러분의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고 말이죠. 자유를 위해서라면 남들과 조금 다른 또라이가 되어도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가끔 착각을 합니다. 잠깐 느껴지는 충만함이 올때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하죠. 잠깐 떠나는 여행, 잠깐 즐기는 휴식, 여유, 잠깐의 보상. 이런것이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움은 지켜야 할 대상입니다. 누림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여러분이 가져야 할 중요한 것은 끈기 입니다. 



군대에서 있을때 저는 군대만 나오면 자유로워 질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막상 사회에 나와 많은 시간이 지나니깐, 군대가 더 자유로워 보이더군요. 생각보다 사회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왜 입시생들이 자기가 대학만 들어가면 모든게 해결될것이라 믿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다 잘 알고 있죠. 대학을 간다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도 똑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그런것들이 우리에게 잠깐의 자유를 줄 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근원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의 본질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결국 무언가를 그리는 삶의 태도를 ‘현재’로 끌고 와야합니다. 지금 이 삶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그 삶을 도피해서는 안됩니다. 나중에 무언가 보상이 올거라는 생각을 가지고선, 진정한 자유는 쉽게 여러분을 허락해주지 않을 겁니다. 바꿔야 할 것은 ‘지금’ 그리고 이 ‘순간’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올 곧게 쳐다 보는 태도입니다. 이 속에서 여러분은 엄청난 끈기를 가져야 합니다. 지옥같은 군대에서 배운 습관하나도 지나고 나면, 내 인생의 방울방울 빛나는 보석이 되니깐요. 결국, 내 삶에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니깐요.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그래야 압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을 모두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끝까지 가봐야 배우는 게 많다는 것을 꼭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방법 : 걸어서 끝까지.  



한번 끝까지 걸어본적이 있나요? 군대에서 행군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발바닥에 발바닥만한 물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행군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그렇게 길고 지겨웠던 행군의 끝에 잠깐의 휴식이 주어지면 40키로의 군장을 어깨에 풀지도 않고, 바닥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본 밤하늘의 별에는 우리 엄마도 있었고, 누이도 있었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 그 별을 바라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밤하늘이 더 어두울수록 별이 더 빛나는 법입니다. 내 삶이 어두울때 우린 오히려 삶의 더 찬란하게 빛나는 많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래서 오히려 필요한 것은 시련에 대한 끈기입니다. 제가 제안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가끔 오랫동안 걷습니다. 삶이 무겁다고 느껴지고, 내 삶이 단조로움이 밀려올때, 불현듯 끝까지 걸어봅니다. 시간이 오래걸려도 걸음을 하다보면 끈기는 내게 잃어버린 자유로움을 알려줍니다. 


끝까지 걸어보면서 할 수 있는 미션이 많습니다. 천천히 걸어보기, 사람들과 사진찍기, 묵언으로 걸어보기 다양한 도전을 통해서 끈기 있는 나의 시간 속 숨겨진 보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개인 혼자보다 여러명이 모일때 빛을 발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부디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끈기의 과정을 거치며 일상속에 내가 방치해버린 빛나는 자유를 바라볼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삶의 기복이 심한 당신이라면, 매일이 지치기만하는 당신이라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당신이라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http://bit.ly/바나나프로젝트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열다섯번째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