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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May 03. 2018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21번째 방법.

또라이는 조르바와 같은 사람이다. 1탄


작가의 짧은 진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이자, 제 인생의 대표 소설 조르바.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제 인생의 햇살같은 존재인 조르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조르바는 3탄에 걸쳐서 기고 될 예정입니다. 오늘은 유독 글을 쓰면서 긴장이 되는 날이네요. 제가 생각하는 조르바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오해없이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두개의 축.


모든 인간의 내면 속에는 두 개의 중심축이 존재합니다. 하나의 축은 이성적, 평가, 계획적, 계산적, 염치, 양심, 윤리적, 수동적, 중심적, 타인의 시선, 보수적, 경쟁적, 하나의 가치, 단단함, 계급적인 성질을 상징합니다. 여기 또 다른 축이 있습니다. 이 축은 감성적, 수용, 충동적, 예술적, 염치없음, 이기적, 능동적, 분산적, 내 안의시선, 진보적, 조화적, 수백개의 가치, 유연함, 평등적인 성질을 나타내죠. 한 축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소설 속에서 ‘두목'으로 상징됩니다. 그리고 다른 축의 캐릭터가 바로 ‘조르바'입니다. 






모든 인간 안에는 항상 이 두개의 축이 뱀이 또아리를 틀듯이 내면에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축은 언제든지 ‘자아'라는 먹잇감을 쟁탈이나 하듯이 그 것을 잡아채려 시시틈틈 노려보고 있는 중입니다. 무엇이 중심이라는 것은 답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안에 놓여 있는 전혀 다른 두개의 축을 모두 인정해야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축의 밸런스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근대와 현대의 사회에서, 특히 그 사회를 일구어낸 기득권들의 기준에서는 더더욱이 한개의 축 만을 희망하게 되면서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우리가 두목이 되기를 원합니다. 조르바의 표출은 체제유지에 있어서 성가신 존재가 될 뿐이죠. 그들은 모든 인간들이 한가지의 가치를 중심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계산적이고 이성적으로 사회가 규정해놓은 가치와 규범들은 맹목적으로 쫒아 가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들에게 양심과 윤리는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줍니다. 두목들의 충성적인 수동성과 계급성은 이 사회의 뿌리깊게 자리잡은 균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영양분이 되어줍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타인이 지정 해놓은 가치의 규정대로 살아가길 바랍니까? 아니면 내 삶의 모든 가치는 내가 만들어서 가는 것입니까?

나는 내 순간에 몰입하며 살아갑니까? 아니면 나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지금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까?

나는 나의 광기를 표출하며 살아갑니까? 아니면 내 안의 광기를 억누르며 살아갑니까?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랑을 합니까? 아니면 조건을 따지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언제 어디서나 춤을 추려 합니까? 아니면 기쁠때만 춤을 추려 합니까?

나는 조건없이 느낌대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실익을 따지며 계산적으로 살아갑니까?

나는 조르바처럼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두목처럼 살고 싶습니까?






이 글을 통해 내 삶 안에 숨겨진 조르바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조르바와 두목의 첫 만남.






나는 조르바의 품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조르바 씨, 이야기는 끝났어요. 나와 같이 갑시다. 마침 크레타엔 내 갈탄광이 있어요. 당신은 인부들을 감독하면 될 겁니다. 밤이면 모래 위에서 다리를 뻗고 앉아 먹고 마십시다. 내겐 계집도 새끼도 강아지도 없어요. 그러다 심드렁해지면 당신은 산투르도 치고……."

"기분 내키면 치겠지요. 내 말 듣고 있소? 마음 내키면 말이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제임베키코, 하사피코, 펜토잘리도 출 수 있소.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소설속의 한 장면입니다. 조르바와 두목이 크레타 섬에 땅굴을 파는 사업을 위해 조예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조르바는 말이죠.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당신이 내 삶에 이래라 저래라 해도, 내가 춤추고 노래할때는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것이죠. 그걸 처음부터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하니, 두목이 오히려 당황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춤을추고 노래를 부를때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죠. 이건 단순히 직장 상사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령하는 거나 다름이 없죠. 더 재밌는 부분은 이것입니다. 사실 두목은 조르바를 고용한 적이 없습니다. 조르바가 두목이 재밌을 것 같아서 그를 선택한 것이죠. 결국 두목은 조르바의 고용인이지만 결국에는 유희를 위한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조르바는 그렇게 자신의 삶에 재미있는 장난거리를 발견하듯이 두목에게 다가가게 됩니다. 두목은 처음부터 조르바를 경계합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두목을 재미있게 응시하며 따라다니죠.






이 장면을 통해 우리를 바라보겠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원치않는 일을 해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경적으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렇지 않나요? 사업하는 분들은 좀 다르지 않냐구요? 제가 봤을때는 말이죠. 개인이든 법인이든 사업가라고 이야기 하지만 진짜 삶의 주인이 되는 사업가가 아닌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사실 이들은 사업이 아니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죠. 왜 그럴까요? 분명 대표이고, 사업가인데 말이죠. 




밑에 있는 직원들의 상황을 눈치봐야만 하는 사업가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늘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사업가들도 있죠. 내가 없을때는 사업체 자체가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계속 그곳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사업이라는 이름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결정권이 나에게 없는데, 대표자의 이름만 들어가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거든요. 그들은 사실상 회사원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던 일반 회사원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들은 지정된 시간에 업무를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음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을 하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시계를 보면서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정말 허무할 정도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게 됩니다. 그렇게 인지하지 못한채 우리는 두목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그 속의 두목의 본성은 이런 부분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난 오늘 내가 할 일을 다했어. 그런데 젠장맞게 내가 원하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개도 있지를 않더라. 생각도 하기 싫고 불쾌하다. 그래서 난 지금 스마트폰의 이 작은 세상안에서 내가 원하는 거 다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로 적어보겠어. 그러니 이 시간은 나에게 아무것도 터치하지 말아줘. 난 이 의미없어 보이는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상황을 원망하다 내 존재가 찢겨 죽을 것 같단 말이지.”




우리 현대인들은 말이죠. 근무시간에 받은 애환을 이런식으로 밖에 풀어가지를 못합니다. 


"무의미하게 기나긴 티비시청 속의 허망한 웃음, 큰 맘 먹고 돈 쓴 모두가 다녀온 유명 여행지의 똑같은 답습, 문화를 즐기기위해 찾아간 곳의 넘쳐나는 군중 속의 뒤섞임.."


 가슴 아픈이야기 이지만 우리는 말이죠. 부품이 되어가는 나를 저항하기위해, 또 다른 부품이 하는 행위속에서 나를 자위합니다. 더 재밌는 사실은 그 부품들끼리 서로를 원망한다는 거에요.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상사를 욕하지만, 사실 직장 상사는 상사대로 또 다른 고급 부품이 되어야 하는것이 현실입니다. 사업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하직원은 대표를 욕합니다. 그렇지만 정작 그 대표 역시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둘 다 사회를 지탱하는 가엾은 존재일 뿐이고 한낱 두목일 뿐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두목이 두목을 바라보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서로를 바라보죠. 그래서 서로를 결코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들이라면, 정말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직원이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우리는 ‘자유' 그 자체인 인간이지, 생산을 위한 부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업에 있어서 그들의 생산성을 생각하기 전에, 그들이 어떻게 자유로워져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부하직원들이 대표 앞에서 당당하게 나의 자유를 주장한다는게 쉽게 상상이 되나요? 그렇지 못하다면, 기억하셔야 합니다. 내 직원들이 모두 두목이 되어갈때, 가장 외로워지는 사람은 다름아닌 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노력해야합니다. 사업장소는 그 사람이 누구든, 지위와 경력을 막론하고, 산투르를 만질때, 누구나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나의 직원들이 진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때, 그 환경 속에서만 우리는 현재의 일에 대해 논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르바는 일을 하기전에, 고용주에게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인 것을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그 무엇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도 자유를 외쳐야만 합니다. 이것이 조르바가 우리에게 주는 첫번째 메시지입니다.







# 조르바의 새끼손가락



“ 안 해본 짓이 없다고 했지요?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지요.

그 놀음에 미쳤더랬어요.

흙덩이를 가지고 만들고 싶은 건

아무거나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 아시오?

(중략) 참, 그게 녹로 돌리는 데

자꾸 거치적거리더란 말입니다. 이게 기어들어

글쎄 내가 만들려던 걸 뭉개어 놓지 뭡니까.

그래서 어느 날 손도끼를 들어 잘라 버렸지요. ”



많은 분들이 자유에 대한 착각을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유는 특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집안에 누워서 편하게 티비를 보는 것이 자유인가요? 여행을 떠나서, 일정에 맞춘 스케쥴을 소화하는 것이 정말 우리가 바라는 자유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자유는 언제나 꽃이 피어납니다. 그것이 설사 내가 바라지 않은 과중한 업무에 더렵혀진 책장위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꽃 피울수 있습니다. 저는 일상에서도 자유로운 사람들을 쉽게 찾아 봅니다. 그들은 홍대 길거리에도 존재하고, 스타벅스 커피숍에도 즐비합니다. 때로는 지하철에서도 마주칩니다. 누구인지 상상이 되나요? 바로 현재 일에 몰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입과 자유에 대한 부분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유의 진정한 핵은 ‘몰입'입니다. 소설속에 나오는 두목은 아쉽게도 순간순간에 몰입하지 못합니다. 늘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도 두목과 별다를게 없다는 것이죠. 하루동안 내가 내 일에 몰입하는 시간을 계산해본적이 있나요? 




생각보다 몰입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알게 되면 놀라실 겁니다. 15분이 넘지 않는 분들도 허다합니다. 뭐만 조금하면 스마트폰에 손이 가게 되죠. 뭐 할때 다른것들이 생각나서 그 일을 멈추게 되기도 합니다. 잡담을 하면서 일을 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요? 결국 진짜 중요한 일을 하기 싫어서 우리는 몰입을 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점에서 조르바는 어떤 인물인가요?





조르바의 새끼 손가락은 몰입의 상징입니다. 조르바는 자신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는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크레타 섬에서 땅굴을 파다가 지지대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모든 광부들이 자신의 도끼를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때에도 조르바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몰입'되었기 때문이죠. 결국 광산이 무너집니다. 그제서야 광산 밖으로 나온 조르바가 불같이 화내기 시작합니다. 집중하지 못하는 광부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연달아서 이 것을 무너트린 대 자연을 향해서 저급한 욕설을 마구 퍼붓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의 몰입을 방해하는 그 누구라도, 조르바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모두 오늘을 살아야 한다고 쉽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쉽게 오늘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내일의 걱정이 생기는 그 순간, 과거의 기억이 나를 사로잡는 그 순간, 내면의 감정이 통제되지 못하는 그 순간,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는 그 순간, 우리는 언제든지 나의 몰입과 순간을 허물어 버립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유는 온전한 몰입의 덩어리를 의미합니다. 내가 무엇에 온전히 몰입할 때 우리는 지금의 시간을 초월할 수 있게 됩니다. 과거 미래 현재가 하나로 뭉쳐지면서, 다른 차원으로 나아갈 만한 큰 힘을 얻게 됩니다. 동물 중에도 몰입을 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얼룩말입니다. 사자가 얼룩말을 쫒아 올때, 얼룩말은 온전히 몰입하게 됩니다. 당연한 것이겠죠. 잡히면 그대로 죽습니다. 그때 오늘 저녁에 뭐먹지? 이런 생각을 하는 얼룩말이 있을까요? 그들은 발자국 하나하나만 생각합니다. 




허벅지 힘의 끌림과 바람의 한 움큼이 미치는 것들에 대해서만 집중합니다. 재밌는 사실은 얼룩말이 몰입에 중독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얼룩말은 일부러 사자에게 접근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잡힐지도 모르는 범위로 사자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다시 도망갑니다. 얼룩말에게는 말이죠. 자신이 몰입을 하는 그 과정이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몰입은 한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조르바처럼 몰입해야 합니다. 내 삶의 순간순간만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일이라 하더라도, 이 명제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몰입하는 그 순간 당신은 정말 자유로워진다는 사실. 그리고 이 몰입의 과정이 조르바가 왜 자유의 상징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두번째 메시지 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작가님의 책이 곧 출간됩니다. 5/10 교보문고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어요. 아래에 신청사이트 공유합니다.

https://onoffmix.com/event/136395/




삶의 기복이 심한 당신이라면, 매일이 지치기만하는 당신이라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당신이라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http://bit.ly/바나나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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