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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May 04. 2018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22번째 방법.

또라이는 조르바와 같은 사람이다.

작가의 짧은 진심

(2탄 시작입니다. 조르바의 모든 것을 표현하기에 필력도 통찰도 부족하지만, 이 글을 통해 이 세상에 단 한분의 조르바라도 더 탄생하기를 기원해봅니다.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사세요.)



# 광산에서의 조르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 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을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내가 오기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정통으로

내 상처를 건드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중략)”



여러분은 바보스러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상한 표정을 짓거나 주체없는 점프를 뛰거나, 동물 같은 야만적인 행동을 취한다는 것. 그런것들을 상상하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혹시 부정적인 생각이 들거나 몸이 저절로 움츠려들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좀 바보같아."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게 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네. 두목이 절대 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스꽝스러움’입니다. 그의 삶에 이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스꽝스러워지지 않기 위해 두목은 목숨을 겁니다. 그는 결코 쉽게 웃지 않습니다.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고귀함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이기에, 두목의 삶은 진지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의 삶도 두목과 비슷한 부분이 많이 느껴지지는 않나요? 




여러분 요즘 유행하는 쇼케이스 중에 제가 유독 흥미롭게 지켜보는 쇼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유병재의 스탠딩코미디 쇼입니다. 보신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쇼 안에서 유병재는 말이죠. 스스로를 망가트리는 것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는 혼자서서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어떤 장치도 없이 청중을 압도 할 만한 재미를 줍니다. 억지웃음이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게 웃음을 주는 것이죠. 사실 강연을 서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병재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너무나 손쉽게 해냅니다. 어떻게 그는 청중을 압도하는 쇼를 혼자서 해낼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우스꽝스러움’과 ‘광기’라는 두개의 단어의 힘이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광기는 절대 정신 이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광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표출할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쉽게 외면하죠. 심지어 클럽안에 가서 신나게 춤을 출때도, 우리는 가면을 쓰게 됩니다. 타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는 말이죠. 광기를 너무 폐쇄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린 올 곧고 신사적인, 정적인 것들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마치 서양의 중세시대와 같은 기분이 들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암흑기 중세시대에는 성욕이 금기시 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성욕은 아주 불손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래서 그들은 부부가 출산을 위해 성관계를 맺을때에도 성욕에 대한 감각 즉 성욕을 느끼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합니다.



성관계를 맺고 있는 두 남녀가 침대위에서 둘의 성욕을 애써 억제하려는 상황이 상상이나 되십니까?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요. 억제하는 삶 좋습니다. 절제도 매우 필요하죠. 윤리적인 삶 그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억제하고 무엇을 위해 윤리의 잣대를 대고 있습니까? 그건 고민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억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가 생각하는 광기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광기에 반대되는 것은 건강한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두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쳤다고 말 하는 것은 그가 건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길들여지지 않았음. 즉 사람들과 사회가 지정한 보편적인 신념을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또라이라고 손가락질 하기 바쁩니다. 그런데 말이죠. 아인슈타인, 체게바라, 라이트형제 같은 우리가 상상하는 엄청난 위인들은 말이죠. 제가 봤을때 모두 광기를 표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백남준의 넥타이를 자르는 행위를 상상해보세요? 위대한 예술가의 광기어린 행동에 세상이 휘청거릴수 있었던 것은 광기가 건강하지 않음이 아니라는 것. 예술,창의,도전,변화등 우리 내면의 폭발을 끌어줄 수 있는 폭탄의 심지와 같은 전인적인 연결성. 나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존재의 무지를 끊임없이 갈구해야 하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 바로 그 이상 광기라고 생각합니다. 




이해 되시나요? 우리는 말이죠. 우리 안에 광기를 억눌러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더욱 표출해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내 안의 광기를 억누르라고 합니다. 타인은 끊임없이 나를 손가락질 할듯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추방해야 할 것은 내안의 광기가 아니라 나를 노려보는 그 타인입니다. 그들의 추방을 통해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언제든 광기를 부려야 합니다. 이 곳은 광기를 부려도 되는 곳이다. 이곳은 아니다. 이런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언제든 우스꽝스러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우스꽝스럽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그것을 숨기기에 급급하죠. 그런데 여러분이 하는 일의 가치와 핵심적인 요소는 모두 그곳에 담겨져 있음을 기억해주세요. 내가 내 안의 광기를 표출할때 나는 진짜 나를 만나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두개의 축이 기억나시죠?



여러분 안에 한개의 축만을 사용하여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어떻게 확신하실수 있습니까? 또 다른 축도 건드려 봐야 합니다. 두개를 건드릴 수 있는 삶이 될때, 우린 더 타인 앞에서 당당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나다."



두목과 조르바가 헤어지기 전, 조르바는 말합니다.




 "내가 당신이 너무 좋아서 이 말은 꼭 하나 해주고 싶어요.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광기입니다. 광기가 있어야 합니다.”





조르바는 자신이 사랑했던 두목과 헤어지기직전, 가장 중요한 이 말을 합니다. 광기, 광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저는 조르바의 이말을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리고 조르바의 마지막 메시지를 제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리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우리안에 광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광기는 부정적인것이 절대 아니며, 내 안의 광기를 인정할때, 창의와 창조는 내면에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영감이라는 것은 그 내면 안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우리가 미래를 살아가는 마법의 열쇠를 풀어줄 것입니다. 광기는 자유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손 끝에서만 존재합니다. 다시 유병재 쇼를 기억해보겠습니다. 유병재의 쇼에는 유병재의 광기와 우스꽝스러움이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밧줄을 풀어버린 그의 춤사위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자유를 갈구하는 그의 처절한 몸짓과 우스꽝스러움이 우리에게 오히려 더 큰 웃음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보시길 바랍니다.





# 부블리나의 방




아름답든 추하든(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식에 불과했다)용모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모든 여자 뒤에는 위엄이 있고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조르바가 보고 말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얼굴이었다.

오르탕스 부인은 덧없는 순간의 투명한 가면에 지나지 않았고,

조르바는 이 가면을 찢고 영원한 입술에 키스하는 것이었다.




크레타섬에서의 조르바는 그곳에서 오르탕스 부인을 만나게 됩니다. 모두가 그녀를 무시하고, 모든 사람이 남편이라 믿는 늙다 늙어버린 그녀를 외면하고 있을때, 조르바는 혼자서 그녀를 사랑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죠. 부블리나의 방에 찾아간 두목과 조르바의 극명한 태도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관점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두목은 객관적인 시각을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그의 눈에 오르탕스(부블리나)는 이미 늙을만큼 시들어버린 가엾은 영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두목은 그녀가 하는 소녀같은 이야기에 대해서 우습게 반응합니다. 둘의 어린아이 같은 장난질을 관찰하다가 결국 그녀앞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죠. 



반면 조르바는 다릅니다. 조르바는 그녀의 마르고 마른 상황속에서도 샘솟는 생명력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여성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며, 사랑은 표출할 줄 아는 진정한 영혼의 몸짓이었습니다. 조르바에게 사랑은 절대적인 가치이며 나의 사랑의 대상이 곧 모든 위엄이 되는 것 입니다. 조르바에게 모든 여성은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그 자체입니다. 

늙음은 일종의 한낱 가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오르탕스 부인은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그녀의 말 한마디 채근 하나하나에 조르바는 단순히 귀로만 듣지 않습니다. 그녀의 숨결,행위,눈빛 하나하나를 온 몸으로 받아주는 것이죠.




두목과 조르바의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랑을 할때, 둘과 비슷한 연인을 만나야한다면, 두목과 조르바 중에 나는 누구를 연인으로 선택하고 싶습니까?





물론 취향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감정표현이 서툰 사람보다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하는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가지 않을까요? 우리는 말로 하는 사랑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 한편으로는 사랑이 넘치는 그리고 내 마음을 말로만 아닌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꽃 한 송이를 가슴에 묻어두고, 그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인 앞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주고, 오직 이 시간에 모든 것들이 멈춰있는 것처럼 나를 빨아들일 듯이 바라보고 있는 그런 연인의 눈빛, 야수처럼 내게 달려와 허리가 아플만큼 강하게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에너지. 우리는 모두 그것을 가슴 한 켠에 두고 있지는 않나요?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사랑을 두목처럼 합니다. 적당한 선, 적당한 거리, 적당한 장소, 적당한 타이밍, 적당한 대상을 기다립니다. 그들은 항상 사랑에 대해 이런식으로 이야기하죠. 


"사랑은 하고 싶은데.. 두려워. “

“아직은 타이밍이 아니야. “

“내가 그래도 될까? 해야 할게 이렇게 많은데.”



만약 조르바가 이런저런의 망설임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제가 조르바를 대신해서 그 이야기를 전달해보겠습니다.




“사랑이 하고 싶다고? 대상이 없다고? 글쎄. 내 생각에는 말이지. 당신은 대가리가 너무 무거워. 대가리를 들이밀라고, 알아들었어요? 제발 생각좀 그만하시오.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가리 쳐 내밀고, 그리고 그냥 쳐다보라고. 이 세상이 당신이 걱정하는 그 순간에 오직 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빌어먹을 정도로 짧은 생명력이 사라지는 것 뿐이고,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이 사랑을 이론으로 떠들고, 계산하고 있을때, 당신의 성기부터 얼굴까지 주름이 자글자글 늘어갈거란 사실뿐이요. 그러니 그냥 질러버려요. 그리고 쟁취된 사랑속에서 머리가 아니라 몸짓으로 당신의 사랑을 마구 표출하세요.” 





사랑이 두렵죠? 상처받기가 걱정되죠? 때로는 버림받을까봐 혹은 시간낭비가 될까봐 두렵죠? 그런데 여러분, 조르바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상처받을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 주저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사랑한번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닐까요? 당신에게 연인이 있다면, 그 사람을 조르바처럼 사랑해주세요. 그리고 당신에게 연인이 없다고 해도, 당신의 부블리나를 찾아 조르바처럼 눈을 부르키고 세상에 신호를 마구 보내보세요.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조르바가 우리에게 주는 네번째 메시지 입니다. 





삶의 기복이 심한 당신이라면, 매일이 지치기만하는 당신이라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당신이라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http://bit.ly/바나나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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