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소리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
# 배움을 착각했던 사나이.
"어떻게 인문학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누군가에게 이 질문을 듣고 나는 곧장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이 일을 하기전, 예전 사업을 하면서 단 한번도 이 질문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이제 무엇을 해야하지? 이런 질문이 들어올 틈이 존재하지 않았던것 같아요. 당연히 월말이 되면 직원들의 급여를 챙겨줘야만했고, 사업을 유지하기위한 다양한 조건을 챙기며, 오전에 열리는 회의가 끝나면, 연이은 고객들의 불만을 해결해야 했고, 함께 일하는 친구들의 애로사항을 듣다가보면 어느새 하루가 흘러가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니깐요. 늘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이 제 마음 한편에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던지는 가벼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어색한 내가 있었습니다.
집이 가난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가만 생각해보면, 제가 살아온 방식은 딱 한가지로 귀결되는 것 같았어요.
"눈치 잘 보면서 살기."
그래서 부자들이나 잘나간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심하게 몸이 굳어버렸어요, 쫄아버린다고나 할까요? 그들의 권위에 쫄았고,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에 복종하며 하나라도 더 흡수하려고 노력했으니깐요. (내 생각 따위는 중요할 틈이 없었죠.)
좀 더 냉정하게 이야기해볼까요?
그냥 제 눈에는 딱 2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했어요.
나에게 대단한 사람들과 (대부분이 저보다 돈이 훨씬 많은 사람들)
전혀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 (사실상 경제적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
속물 같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살아왔어요.
한번은 신도림에서 강의가 열린적이 있었어요. 그때 유명한 강사분이 오셔서 학원 운영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서 강연을 해주셨어요. 저는 너무나도 재미없는 강연을 듣는척하곤, 단번에 달려가서 이렇게 이야기했죠.
"너무 강연이 좋으세요.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사시는지 정말 부럽습니다."
"지금까지 들은 모든 내용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습니다. 친해지고 싶습니다."
아부와 아첨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라도 이 자리를 따뜻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좋게만 생각하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는지 몰라요.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며 서 있는 모습이 지금도 우스꽝스럽단 생각이 들 정도네요.
저는 열정적으로 배운것 같았지만, 사실 그 내면을 바라보면, 그 배움의 결과는 새로운 재창조나 건설적인 건립이 아니고, 맹목적인 추종과 아첨의 연속 뿐이었습니다.
# 변화되지 않는 삶
그런 과정이 얼마나 반복되었는지 몰라요. 제 삶은 별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저는 중독된것처럼 나보다 훨씬 더 잘난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나보다 더 큰 사람을 만나면, 그 앞에서 저는 똑같이 위축되기를 여러번 반복했죠.
물론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는 건 정말 중요한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저의 반응에 있었던 것이죠. 배움의 이유와 근원적인 질문이 없는 맹목적인 만남만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인생 경기를 앞두고 스스로에게 쫒겨 약물을 먹는 복싱선수와 같은 조급함과 같았습니다.
그냥 성공한 사람들과 이야기나누고 함께 있으면, 나도 왠지 성공한거 같은 마음있지 않아요?
그때 저는 딱 이런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지, 나는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나는 종국에 가서 얻고 싶은것은 무엇인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중요한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돈을 벌어야 한다. 그저 잘 살아야 한다. 남들에게 피해주면서 살면 안된다. 피상적인 생각만 가지고 사업을 했으니까요.
그걸 깨닫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세워야할것이 내가 알아야 할 정보가 아니라 나의 내면의 소리라는 것을. 신기할 정도로 반짝이는 보석. 그 오묘한 감탄속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수상한 아저씨도 이야기 할 것 같은 뻔하고 뻔한 사실속에 모든 정답이 숨겨있다는 사실을 저는 아주 뒤늦게 깨닫게 되었죠.
# 그러다 어느날 들린 내면의 목소리.
제 삶에서 이 때가 참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배움도 쓸모없다는 극단적인 생각부터,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문했고 파멸하기도 얼마나 반복했는지 몰라요.
저녁에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등지고 누워서 한숨을 쉽니다. 그 한숨이 어찌나 깊던지, 옆에 자던 아내가 참다참다가 한번은 저에게 화내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불행하면 그냥 그만두면 되잖아. 왜이렇게 한숨을 쉬는거야?"
겁이 많던 저는 오랫동안 유지한 일을 그만두는것도 무서웠습니다. 그렇다고 이 일이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맞는지 질문하지 않고 하루도 견딜수 없었어요. '기로'라고 하잖아요. 저는 이 단어가 지금도 싫어요. 이렇게 해도 아닌것 같고, 저렇게 해도 부족한것 같은 그런 애매한 상황 속에 절망하는 영혼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으실거에요.
그렇게 결정하지 못하는 고민의 기로속에서 시름시름 앓아가면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던 어느날. 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생각을 가볍게 정리하고 싶어 뚝섬 한강변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일기예보에도 없는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리더군요. 우산도 없이 갔던 한강변에서 저는 조금 이상한 경험을 하게됩니다.
그 비를 피하느라 사람들이 우왕좌왕 움직이는데, 인파속에서 저는 내면속에서 뜨거운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냥 비를 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음이 내키는대로 그냥 비를 주륵주륵 맞고 서있었죠. 당시 뚝섬 주변에 사람들이 꽤 있었던걸로 기억이 되는데요.
신기하게 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신경쓰이지 않았습니다. 비를 막 맞으면서 소리내어 마구 울부짖었던 기억이 나요. 너무 괴로워서.. 결정이 너무 힘들고 버거워서 저는 사람들의 시선따위는 신경쓸 여를도 없이 마구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때였던것 같아요. 마음속에서 진짜 깊은 그곳에서 들리는 선명한 울림을 저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유..."
너무 막연하게 들린것 같은 희미한 소리이지만, 흰바탕의 옷에 뿌려진 먹물처럼 너무 선명하게
지울 수 없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그 날을 평생 잊지 못할거에요. 내 인생에 자유를 깨달은 그날.
자유가 전부였습니다.
그토록 고민하고, 그토록 죽을 듯이 나를 힘들게 했던 날들은
이 하나를 제게 알려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날 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쌓아놓은 업무를 모두 정리하고,
자유를 연구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 흔들리지 않는 이유.
저는 지금도 많이 배우러 갑니다. 누구든지 먼저 만나려고 노력하고, 어디든지 들이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한가지 작은 변화가 있습니다.
이제 저는 그 누구 앞에서도 허리를 굽신 거리지 않습니다.
마음에도 없으면서 입에 발린 소리를 저는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제 앞에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있어도, 그가 엄청 부럽거나 내가 작아지지 않습니다.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이기에, 이제 저는 더 이상 쫄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게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이제 저는 배워야 할 정보를 취득하는 것과 내면의 목소리를 잘 구분합니다.
아무리 좋은 정보라고해도 내면의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기꺼이 "아니야"라고 외칠 수 있는 여유가 생긴것이죠.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저는 누구앞에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두눈을 부르뜨고 이야기하는 제 마음속에 호두 같이 단단한 내면의 핵이 자리를 잡은것인지도 모르겠군요.
# 나를 죽이지 않으면 나를 살릴수 없다.
얼마전 모임에서 성공에 대해 대화를 나눈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원합니다. 성공을 간절히 원하면서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공은 나를 살릴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죽여야만 기회가 생기는 법이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로 행동을 합니다. 자신을 살리기위해 성공을 하는 것이라 믿기에 그들은 언제나 안정적인 선택을 취하고, 변곡점이 지나가는 그 지점을 견디지를 못합니다. 조금만 자신이 죽을 것 같으면, 그만이라고 외치면서 멈춰서버리죠. 그런데 저는 경험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성공은 나를 죽이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방향점은 결국 외부의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알려준다는 것을 말이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는 반드시 응답을 할것입니다. 이때 그 내면의 소리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가 하는 소리에 집중하면 당신은 당신 앞에 그 누가 차가운 명령을 내려도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죽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내면의 소리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일에 만족이 되지 않는다면, 그때 내 내면을 잘 관찰해야합니다.
뭔가를 집중하는데, 뭔가가 찜찜하고 이건 아닌라는 느낌이 든다면, 그땐 십중팔구 내면의 소리를 관찰해야 할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직관인지 우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소리를 따라가다 이르는 그곳에 무엇이 존재하던 간에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지금 현재 존재하는 당신의 모습과 내면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타인 앞에서도 당신이 쫄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끊임없는 선택을 할 것이고, 그 선택의 모든 기준을 스스로 가진 자유로운 사람이기에, 당신 앞에 있는 대단한 사람을 향해 두눈을 부릅키고 똑바로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에게 말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이제는 조금 더 귀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삶의 기복이 심한 당신이라면, 매일이 지치기만하는 당신이라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당신이라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