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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송 Oct 21. 2020

그 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9월 중순인 어느 날, 인터넷 포털 검색어에 ‘라면 형제’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늘 그렇듯 깃털처럼 가벼운 엄지 손가락으로 클릭했다.       


9월 16일 연합뉴스와 인천 소방서에 따르면 남자 형제인 A(10)· B(8)군은 지난 14일 오전 11시 10분께 빌라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 불을 냈다.
이들 형제는 4층 빌라 중 2층에 있는 집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119에 화재 신고를 했다.
 당시 형제는 신고 당시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못하고 "살려주세요"만을 외친 채 전화를 끊었다.
소방당국은 진화 작업을 벌여 10분 만에 불을 잡았지만 형제는 전신에 화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쳐 서울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A군은 전신에 40% 화상을 입었으며, B군은 5% 화상을 입었지만 장기를 다쳐 위중한 상태다.
평소 같으면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시간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학교 대신 가정에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보호자 없이 스스로 라면을 끓여 끼니를 해결하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기사 발췌-       



기사를 보 마음 한구석 아파오면서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더욱이 근무지인 그곳에서 말이다.

형제의 보호자는 전날부터 집을 비워 지인들을 만나고 있었으며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를 앓는 첫째 아들을 때리기까지 해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 및 방임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바 있다고 한다.

명백한 아동학대 가해자이자 부모라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사람이다.  형제들은 평소 보호자 없이 둘이 돌아다니며 편의점에서 라면, 고무장갑들을 사 갔으며 이들의 사정을 안 이웃 주민들이 보호자를 경찰에 신고하여 아동학대 혐의로 입건해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격리보호를 위한 피해아동 보호명령을 청구하였으나 가정법원에서는 격리보다는 심리상담이 바람직하다며 판결을 내렸다.  

주민들의 관심과 걱정으로 경찰에  신고하여 입건까지 하였건만 마지막 관문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인 법원의 이러한 판단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분노를 더 일으킨 셈이 되었다.          



이 기사를 접하기 일주일 전, ‘어떤 여자가 자녀들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하였다. 낡은 빌라였는데 문을 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둠으로 뒤덮인 집에 불을 켜자 거실과 주방 바닥에는 바퀴벌레들이 득실득실 기어 다녔고 거미들이 자신의 집인 것 마냥 기어 다니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도대체 이 집에서 누가 거주한다는 것인가. 의지와 상관없이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불렀다.     



“거기 누구 계십니까?”    

 


그러자 초등학생 6학년으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나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림이 눈 앞에 그려졌고 그 아이의 얼굴이 이미 다 말해주는 듯했다.

눈물이 쏟아지는 걸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집에 혼자 있니?”     

“아니요. 동생이랑 같이 있어요.”     

“엄마는 어디 가셨니?”     

“엄마는 핸드폰도 놔두고 어디 잠깐 나가셨어요.  괜찮아요. 자주 나가세요.”     

“아빠는 어디 가셨니?”     

“아빠는 며칠 전에 집을 나가셨는데 안 들어오고 계세요.”     

“저기.. 저녁은 먹었니?”     

“네. 먹었어요...”     



함께 신고 나간 선배님과 나는 가볍게 넘어가야 할 신고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웃들은 아이들이 걱정되어 신고를 몇 번 한 상태였고 보호자인 엄마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러한 아내를 포기했다는 듯 통화하는 경찰관에게 냉랭한 목소리로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아내의 존재에 대해 무심한 태도였다. 아이들에게는 더욱이 그랬으리라.

즉각적으로 경찰서 담당부서에 넘기고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통보하여 빠른 시일 내에 보호자와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은 바로 여 청수사 팀으로 연락하여 급한 일이 없으면 바로 현장에 와달라고 했다.

수사관 분들이 도착하였을 때, 이미 보호자라는 엄마는 집에 도착해 있었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경찰관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이 말을 이어갔다.     



“내 자식 내가 알아서 하는데 너희들이 뭔 상관이야?”

     


‘내 자식 내가 알아서 하는데 너희들이 뭔 상관이냐고?.’

이 말로 인해 예전에는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가해자에게 사회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법적인 조치를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녔던가.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었다. 아동학대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경찰, 아동보호 전문기관 등 전문기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남매들은 보호자와 분리시켜 쉼터에서 지내게 되었다. 며칠이 지난 후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전화를 걸었다. ‘라면 형제’ 기사를 보고 더욱이 전화를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쉼터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관련자와 통화를 해보니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안도할 틈도 없이 진심으로 당부드렸다.

그 아이들을 부모처럼 여겨달라고. 꼭 안전하게 학교도 다니고 따뜻한 밥 먹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언제든지 후원할 테니 도와달라고 말이다.

나의 진심이 통했으리라고 믿는다.



 아동학대 피해자인 라면형제’뿐만이 아니다. 이웃들이 신고를 하여도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경찰관, 전문기관, 교육청, 법원, 국회,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까지 국가가 나서서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아동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발견이 첫 번째 단계이며, 그다음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보호할 것이며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유관기관이 서로 협업하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자녀들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완벽한 부모는 없어도 부족한 부모는 없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우주 그 자체라는 오은영 박사님 말처럼  우리 또한 우주였던 부모의 사랑을 받고 성장하여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였듯이 그들에게 '지금'을 맞이할 기회 줘야 하지 않을까.

자녀를 향한 ‘사랑’, 어려운 이웃과 형제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 그리고 국가 최종 판결자인 법원에서 그들의 감수성으로 필요한 법적인 판결을 해주고 제도를 마련해주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일 것이다.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형제와 남매입가 옅은 미소가 번지기를 소망하며 하늘에 떠내려가는 구름만 무심하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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