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대화록

투잡 하는 택시 기사님

241219

by 서자헌

택시 한 지는 이년 되었죠.

그런데 저는 투잡으로 하는 거예요.

원래 하던 일 계속하고 있어요.


한의원에서 약 지으면 팩에 담아주잖아요.

건강원에서 포도즙 같은 것도 팩에 담아주고요.

저는 한의원이나 건강원에

그런 팩 포장하는 기계를 파는 거죠.

고장 나면 수리도 해주고요.


한 삼십 년 했어요, 이 일은.

원래는 직원도 다섯 명이었고요.

예전에는 가족 중 누가 기운 좀 없다 싶으면

약 한 첩 씩 지어 먹이고 그랬어요.

동네마다 한의원 건강원 하나씩은 있었죠.


그런데 점점 변한 거예요.

이제는 정관장 홍삼이나 비타민 같은 걸 먹잖아요.

브랜드들이 크면서 동네 장사는 어려워졌죠.

건강원들 하나둘 사라지고

자리 지키던 한의원 선생님들도 돌아가시고

그러면서 저도 고객이 계속 줄어들었고요.


큰 아들 내년이면 대학교 졸업하거든요.

작은 아들은 지방에서 공무원 하고 있고요.

남은 건 없지만 빚도 없고

애들 다 키웠으니 할 만큼 했죠.

그래도 놀면 뭐해요.

원래 하던 일 간간이 하면서

투잡으로 택시일 시작한 거죠.

기계 좀 봐달라고 연락 오면

준비했다가 다음날 바로 가면 되니까.


잘될 때는 뭐 전국으로 다녔어요.

건강원에서 이것저것 즙으로 만들어 돈을 버니까

농장에서도 직접 만들어 팔고 싶을 것 아니에요.

포도농장 사과농장 배농장 양파농장

심지어 토마토농장까지 다녔어요.

농장 하나에서 주문받아 찾아가면

옆 농장들에도 다 돌면서 팔고 오고


그랬어요.

화려한 시절이었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리를 양보받은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