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세월을 느끼게 합니까? 제겐 노래가 그렇습니다. 스물셋을 불렀던 아이유가 벌써 서른이라니 내 스물하나는 얼마나 고대적 일인 것인가. 그때 아이유 노래를 들으며 스물셋엔 세상이 달리 보일까? 궁금했었는데 뭐, 원 실제 스물셋엔 군대에서 이리저리 구르느라 세상이 여러 각도로 보이긴 했습니다만, 이제 서른 셋을 향해 가는 나이가 되었어도 나는 여전히 유튜브 보며 허벅지 벅벅 긁고 있는 철부지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스물셋도 아이유가 그 나이니까 쓸 수 있는 노래지 막상 더 커도 별거 없다 허허' 하는 생각을 하고, 그럼 누군가는 '이놈아 이 글도 네가 스물여덟이니 쓸 수 있는 거다 허허' 할 거고, 그렇게 따지기로 치면 여든 살 할아버지도 일흔 살 할아버지한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 어쩌고 하는 게 나이인데, 도대체 다 컸단 말은 족보를 몇 장이나 거슬러 올라야 속시원하게 할 수 있는 건지, 근데 당장 내가 격세를 감해버린 걸 어쩌란 말입니까. 내 친구 볼빨간 사춘기의 인터뷰를 봐버린 것을요.
볼사 안지영 양은 저랑 나이가 같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대한민국 사람 중 1.4%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입니다. 그녀와의 접점을 좀더 찾아보자면 저는 춘천에 음악 페스티벌을 가서 그녀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제가 다니던 대학에 그녀가 축제 가수로 온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녀가 우리 대학에 초청되었을 때 저는 군대에서 세상을 달리 보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유의미하고 모두가 신기해할 만한 접점은 그녀가 제 대학 1년 후배와 동향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 영주에서 그녀와 제 후배는 잠시 같은 음악학원에 다녔었다고 하며, 볼사가 아직 유명해지기 전 그녀가 페이스북에 올린 앨범 홍보 글에 후배가 응원 댓글을 남기면서 제 피드에도 볼사의 글이 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디 음악이라, 또 한 명이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셨구만' 하며 남일이니 으레 쉽게 생각하고 넘겼었는데 말 그대로 이렇게 잘 될 줄이야. 그때 내가 그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던가 말았던가. 눌렀더라면 자랑할 수 있는 접점이 하나 더 느는 건데...
아무튼 그 게시글을 보고 얼마 안 지나 볼사 노래는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꽤 유명해졌습니다. 성정이 마이너하여 음악도 인디 장르를 즐겨 듣던 저 역시 그 존재를 비교적 빨리 알아챈 편이었습니다. 우주를 줄게가 빵 뜨면서부터 볼사가 높은 인기를 구가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공중파에 모습을 속속 드러내고 각종 페스티벌의 섭외 1순위가 되었습니다. 최애가 있어본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내면에서는 나만 알고 싶은 마음과 다른 사람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늘 모순되는데, 볼사는 이미 유명해져서 전 국민이 다 알게 된 마당이었으니 그냥 응원해주기로 하였습니다. 볼사는 저의 20대 초중반을 수놓는 뮤지션이었습니다. 내 삶이 한 폭의 고운 비단 그림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녀와 그녀의 음악이 어떤 화폭에도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 주는 황홀한 오색실이었다는 말입니다. 입대를 앞두고 싱숭생숭했던 시절부터 힘든 군 생활 동안과 고시 공부를 마칠 때까지 볼사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 받았습니다. 숨막히던 이경 시절 착한 선임이 들어보련? 하고 건네줬던 mp3에 담긴 노래가 '좋다고 말해'였고, 봄을 밖에 놔두고 독서실에 기어들어야 했던 서글픈 수험생 시절을 달래주던 노래가 '별 보러 갈래'였습니다. 페스티벌에서 봤던 딱 그 나이다운 생기발랄과 깜찍함이, 그것이 넘쳐 흐르는 것을 주체하지 못해 자기 예명처럼 통통 튀고 청량했던 곡들이 제게 많은 웃음과 위안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위로 받을 만큼 받고 이제 나는 질곡의 시기로부터 잠시 탈출했을 무렵 볼빨간 사춘기는 멤버 한 명이 탈퇴하여 안지영 1인 체제가 되었습니다. 내 마음이 안정된 시기에는 늘 그랬었듯 배은망덕하게 더는 음악을 (따라서 볼사의 음악을) 듣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정준일에 대해 글을 쓰며 사람은 회복되는 존재가 아니라 변한 채로 굳어지는 존재 같다고 했었습니다. 어떤 일은 그야말로 송두리째 사람을 바꿔 놓는 것입니다. 그런 플롯 포인트를 겪고 나면 이전으로 돌아가지지도 않을 뿐더러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강박마저 드는 것입니다. 재치와 패기로 무장했던,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던 젊은 정준일의 음악이 가라앉기 시작했던 것도 딱 그 나이였습니다. 안지영이 새 앨범 Butterfly Effect의 인터뷰를 했던 나이. 내 나이. 나는 마음이 힘들어지니 다시 볼빨간 사춘기를 검색하였습니다. 인터뷰 영상 속 안지영은 내가 기억하던 노란 머리에 방글거리던 귀여운 소녀의 모습과 많이 달랐습니다. 검은 머리에 음성은 한 계단 낮아졌습니다. 내내 웃지만 다시는 옛날 같은 웃음은 웃지 못하리라는 게 느껴지는 웃음이었습니다. 어딘지 서글퍼 보였습니다. '지영아, 언제 이렇게 커버렸니' 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말은 '언제 우리 나이가 이렇게 됐니' 로 바뀌었습니다. 아니, '언제 우리가 이 나이가 됐니' 가 맞겠습니다. 어른들은 아직 20대다, 청춘이다, 고 하지만 결코 20대 초반과 지금을 한 그물로 묶지 못하는, 한 번은 저마다 실패와 좌절을 맛봤을, 그래서 이미 불타는 다리를 하나씩 건너와버린, 사람도 사랑도 잃은, 괜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어보는, 서러운 20대 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