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5~8살)

by 생각의 해우소

5살, 아파 누워계신 할머니 집에 병문안을 갔는데 할아버지가 바나나를 할머니 안 주고 너 혼자만 (처?)먹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너무 무서워서 할머니한테도 드셔보시라고 먹던 바나나를 엉거주춤 권하였다.


5살? 6살?, 아빠가 새 차를 뽑아서 나를 처음 태워줬는데 먼 길을 배달되어 온 차인지라 새 차임에도 겉이 꼬질꼬질해서, 아빠! 새차인데 왜 낡았어? 말했던 기억. 아빠는 탁송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새 차를 받아들고 싱글벙글하셨을 젊은 아빠의 얼굴이 보고 싶다.


6살, 유치원 들어가기 전, 형이 초등학교 소풍을 갔었는데, 엄마가 우리도 소풍갈까, 하고 형 주고 남은 김밥을 예쁘게 담아와 집 앞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날씨도 좋았고, 기분도 너무 좋았다.


6살 겨울, 내년에 다닐 유치원에 처음 등록하고자 엄마 아빠와 성일 어린이집에 갔던 날, 친척 결혼식에 바로 가봐야 하니 너만 들어가서 인사만 드리고 바로 나오라 하셨던 걸, 막상 선생님을 본 순간 그 신신당부는 홀랑 까먹고 뭐에 홀린듯 안내에 따라 당당하게 오리엔테이션 장소에 입장, 착석. 한참을 기다리다 못한 엄마가 들어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시고선 나를 데리고 나갔다. 아, 엄마가 분명 얘기했었는데 난 왜 기억 못하고 여기 앉아 있는가, 엄마 손에 이끌려 나가면서 민망함과 분함을 느꼈던 게 기억난다. 어린 나를 키우며 어떻게 자립성을 길러주어야 할지 고민하시고 결단하셨을 젊은 엄마 아빠, 그렇게 생애 중요한 시기마다 필요한 것, 좋은 것을 해주려고 늘 육아를 생각하시고 정성 기울이셨던 애정이 느껴져 이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조금 뭉클.


7살, 비범한^^ 일화 두 개. 내가 또래보다 수학 문제를 빠른 시간에 정확하게 풀어내서, 선생님이 남은 애들은 OO에게 가서 채점 받으라고 했던 기억, 자존감 뿜뿜. 그리고 그때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매일 쳐주시곤 했던 간식송과 정리송(갖고 놀던 장난감을 정리하라는 신호였다, 정리하세요 정리하세요 정리정리 하세요, 하는 가사)을 귀로 듣고 카피해서 아이들을 낚았던 기억이 있다. 아 뭐야 선생님이 친 줄 알았잖아, 하고 속았다는 듯한 표정의 아이들을 보며 흐뭇. 지금도 생각나는 게 그 때 간식송은 바장조였는데 내가 시 플랫을 그냥 시로 쳐서 이 부분만 음이 좀 이상한데? 속으로 생각했었다. 혹시 나 천재?


7살, 그래 그 7살은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가장 리즈시절...ㅋ 마지막 졸업 학예회 때 사회를 봤었다, 귀여운 정장 같은 걸 입고...!!(이거 나중에 춤출 때 단체복으로 갈아 입었어야 하는데 혼자만 계속 입고 있었다ㅋㅋㅋ 핵민폐),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어디가서 나서고 나댄 마지막 기억..인 듯하다...


8살, 학교 급식에 카레가 나와서 밥 칸엔 밥이 수북 국 칸엔 카레가 수북하였는데, 열심히 국 칸에서 밥 칸으로 한 땀 한 땀 카레를 옮겨 덮고 있는 친구를 보고 그거 그냥 밥을 말면 되는 거 아니야? 했던 기억. 물론 지금은 열심히 카레를 밥 위에 끼얹는 행위 역시 이해된다.


8살, 수업 시간에는 화장실 가는 거 아니라는 선생님의 말을 충성스럽게 지킨 나머지 고지식하게도, 너무 급해서 그러는데 화장실 다녀와도 될까요, 하는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해 바지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그 상태로 집까지 혼자 우물쭈물 걸어 가다가 지하철 청소 아주머니들이 유쾌한 목소리로 오줌 쌌어?? 물으시기에, 큰소리 네, 대답하고 그때부터 다다다다 뛰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속이 상하셔서 목소리가 커지셨던 것으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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