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담임은 입시 상담을 하며 자주 무력감에 빠진다. 원서 접수 기간에는 특히 그렇다. 학생들은 상담 때 나와 얘기한 대학들을 하루 만에 모두 엎어 가지고 온다. 전날 몇 시간씩 열변을 토한 게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된다. 아이들은 부침개 뒤집 듯 미래를 정한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학원 선생이 불어 넣은 헛바람에 당치도 않은 대학을 쓰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이제 6개의 원서 접수증을 받아들면 그중에 또 어떤 기상천외한 대학들이 튀어나와 나를 놀래킬지 설레기까지 한다.
교사는 당연하게도 합격 가능성을 중심으로 상담한다. 탈락이 자명한 데를 학생들에게 쓰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대부분 상담 결과를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 성적보다 높은 학교를 원하기 때문이다. 성적에 딱 맞는 대학은 1등급, 9등급을 막론하고 아이들 성에 차지 않는다. 아이들은 특수한 사례를 일반화하고 인원 미달 같은 요행을 바란다. 바라다가 믿기까지 한다. 믿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와도 못 말린다. 아이들은 불 보듯 뻔한 길을 기어코 간다. 교사는 불구덩이를 감지하며 제발 원서 한 장만 내 뜻대로 하자고 사정한다.
전국 대학 정원은 약 47만 명, 올해 고3 학생 수는 약 45만 명이니 이론 상 모든 학생이 대학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선호하는 수도권 대학의 정원은 10만 명뿐이서 전체 고3 학생의 20%만 갈 수 있다는 것 역시 이론이다. 학벌 사회는 대부분의 고3 학생들이 쓴맛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아이들이 원서를 쓰며 혹시와 만약이라는 달콤한 허상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아이들은 이미 자기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이 대학에 가기 힘들다는 것도, 곧 쓴맛을 보리라는 것도 안다. 헌데 미리 포기하고 제 손으로 쓴맛을 받아드는 것과 소수점의 확률이더라도 혹시 있을지 모를 단맛에 희망을 거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지 않은가. 어쩌면 아이들의 베팅은 이 사회에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교사보다 무력감을 더 크게 느끼는 건 학생들일 것이다. 그들의 변덕과 고집을 조금 이해하기로 했다. 입시 상담은 철저히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요즘은 입시 상담의 요체가 사실은 위로와 격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분석과 진단 이후에 최종 선택은 결국 학생 몫이다. 분명한 현실을 알려주고 최선을 다해 말려본 후에도 여전히 불구덩이에 들어가보겠다는 아이들이라면 무력과 짜증을 느끼기보다 지지와 응원을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3이더라도 입시 기계이기 전에 학생이고 사람인 것이다. 터무니 없게 높이 쓴 원서 한 장이 장차 인생에 자존감과 통제감을 보호하고 고양시킨다면,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지금 수시를 현실적으로 쓰고 말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 생각이 나의 나태와 방만을 합리화하는 상황만 경계해야겠다. 그러니 부디 원서 한 장만이라도 내 말대로 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