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 교사의 입시 경쟁력에 대해
담임의 입시 지도를 믿을 수 있을까
학교 선생과 학원 선생 중 누가 더 유능할까. 공교육에 몸 담으면서도 나는 전자라 자신하지 못한다. 학교의 구조는 교사(이기에 앞서 나약한 인간)의 자발적 성장을 촉진시키기 어렵다. 수업은 중위권이 기준이고, 성과에 따른 패널티나 인센티브가 있지도 않다. 부끄럽지만 교육에서도 시장의 힘이 더 세다고 생각한다.
요즘 입시를 하며 이 생각에 조금 변화가 생겼다. 30만 원 주고 첨삭받았다던 아이의 자소서가 엉망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 시장 때문이었다. 시장은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는 만큼 협잡도 벌어지는 곳이다. 그 점에서 학교는 차라리 순수했다. 아이들에게서 어떠한 이익도 취하지 못하는 만큼 교사가 아이들을 속일 일도 없었다. 입시 학원들 중에는 아이들의 욕심을 이익 창출에 이용하는 곳들이 있었다. 학생의 비현실적인 소망을 부추겨 분에 넘치는 높은 대학을 쓰라고 권유하였다. 학원으로서는 운 좋게 한 명만 붙어서 플랜카드를 내걸면 그만인 일이었다. 아이들 사이에 과상향 5개와 적정 1개를 조합하는 한탕주의가 유행처럼 번졌다. 고3 담임들은 아이들의 수시 카드를 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학생과 부모는 돈을 들인 만큼 결과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 수도야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상으로1년을 봐온 담임의 말보다 몇 십만 원을 써서 한 번 상담한 학원의 말을 더 신뢰한다. 지긋지긋한 담임이 네 성적으로는 못 간다고 말하는 대학을, 몇 십만 원을 들였더니 합격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학원이 얼마나 마음에 흡족하겠는가.
공교육은 시장에 속하지 않아 도태될 수 있지만 같은 이유로 정직할 수 있다. 시장에 속한 학원은 정직할 수 있지만 그런 만큼 아이를 돈벌이로 대할 수 있다. 구조가 그렇다. 무엇보다 시장의 혜택을 누릴 목적이라면 돈을 좀더 써야 한다. 상담 한 번에 1, 20만 원은 부모에게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학원 입장에서는 그럴듯한 말로 적당히 구슬리고 말 금액이기도 하다. 그런 학원들이 해주는 듣기 좋은 말보다 교사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도 없음에도 오롯이 1년 동안 가르쳤던 정과 학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담임의 말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경험한 바 학교는 편해지고자 하는 교사들이 많더라도 간절함에 찾아온 아이를 궁지에 내몰 만큼 못된 교사도 또 없다. 학생 인생에 명백하게 해를 끼치는 태업과 무책임함은 동료들의 질타와 눈총을 받을 거란 것 역시 학교의 구조이다. 공교육을 한다는 자부심이란 비록 투철한 사명감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는 소극적인 의식으로나마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은 그 최소한의 도리마저 무너뜨리곤 한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여전히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유능하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대신 어떤 지점에서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더 정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의 경쟁력을 깎아먹는 그 요소로 인해 역설적으로 공교육은 경쟁력을 가진다. 그것이 '공공'의 가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 있게 자본을 투자할 수 없는 절대 다수의 아이들에게는 애매하게 시장을 이용하는 것보다 공공의 복지를 충분히 누리는 게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시장은 더 철저하고 준비된 자가 돈을 써야 유리한 곳이다. 모집요강 한번 들춰보지 않고 학원에 의뢰하는 건 분석 없이 아무 주식에나 투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매일 칼퇴를 꿈꾸지만 아이들이 찾아오면 한숨 한 번 삼키고 어느 새 수시 카드를 보며 핏대를 세우는 유약한 담임을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