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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May 10. 2020

청각이 예민하다는 것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


나는 오감 중 소리에 특히 예민하다. 통역사로 늘 남의 말을 듣는 연습을 하다 보니 후천적으로 청각이 더 발달한 듯도 하다. 하지만, 청각이 예민하다는 건 통역할 때 빼놓고는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차 지나다니는 소리 등 소음뿐 아니라 사람들의 밝은 웃음소리에도 귀가 따가워져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질 뿐 아니라, 사무실이나, 카페, 길거리, 심지어 회사 화장실에서도 듣고 싶지 않은 대화나 알고 싶지 않은 정보에 종종 노출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카페나 식당에서 신나서 떠드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혹시, 제가 어젯밤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다 듣고 있는데 괜찮으신가요?’라고. 카페나 식당 등에서 즐겁게 대화하는 그들을 탓할 마음은 전혀 없다. 원래 그러라고 있는 장소이고,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든 그건 그들의 자유이니까. 단지 문제는 내가 원치 않게 그들의 대화를 도청하게 됨으로써 내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학원 때 수업 시간에 늘 노트북을 사용하는 동기가 있었다. 그 동기는 나랑도 좋은 친구였지만, 그놈의 노트북 때문에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었다. 문제는 노트북 키보드 소리 때문이었다. 그 키보드 소리가 나에겐, 아마도 나에게만(여하튼 아무도 컴플레인하지 않았으니까) 유난히 컸다. 수업 시간마다 그 ‘타다닥 타다닥’ 소리 때문에 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고, 급기야 노트북 동기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난 결국 친구에게 고민 상담을 하기에 이르렀다.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짐짓 진지했다. 

“수업 시간에 ‘타다닥, 타다닥’ 키보드 소리밖에 안 들려. 수업에 전혀 집중을 할 수가 없어.”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는 건 어때?”

“뭐라고, 네 키보드 소리 때문에 내가 미치겠다고? 되게 황당해하지 않을까?”

“음……그럼 키보드 덮개를 선물로 사주는 건 어때?”

“뜬금없이? 그건 네 키보드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걸 간접적으로 말하는 거잖아. 상처 받을 거야.”

“하, 어려운 문제다. 그냥 자리를 좀 멀리 앉아 봐.”

“늘 옆에 앉았는데, 갑자기 자리를 멀리 옮기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럼 내가 본인을 싫어하는 줄 알 꺼야. 그건 아니야.”

“그러네. 답이 없다.”


그렇다. 간단해 보이는 문제지만, ‘당신의 키보드 소리 때문에 내가 미치겠어요’라는 메시지를 관계의 틀어짐 없이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그 동기랑 관계를 끊어야 하나, 한 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또 한 번은 번역 과제를 하는데, 바로 뒤에서 다른 동기가 빵을 먹으면서 눈치 없이 떠든 적이 있었다. 그 동기의 웃음 섞인 대화 소리는 마치 내 신경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것 같았다. 참다 참다 결국 이러다간 신경이 끊어지고 말 것 같은  순간에 나는 뒤를 돌아 그 동기를 최선을 다해 노려보았다. '제발 조용히 하라고!'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마음은 다르게 전달되었다. 

"왜, 빵 줄까?"

그 동기는 정말 해맑게 나에게 빵을 내밀었었다. 


내 예민한 청각 때문에 나는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옆 테이블 아저씨의 커피 취향이 스타벅스가 아니라 폴바셋이라는 것도 알아 버렸다. 그래도 말이다. 청각이 둔한 것 보다 예민한 것이 백만배는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직업적으로도 더 나은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불평 그만하고 시끄러우면 귀마개를 하자,라고 오늘도 스스로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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