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추억 만들기
내년 초,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간다.
사실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엄마와의 여행이 언제나 행복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들 사이에는 ‘대만대첩’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있다.
몇 년 전 엄마와 대만 여행을 갔다가 정말 사소한 일—과자를 사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로 호텔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싸운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 딸아이(당시 중학생)도 함께였는데, 아이가 무척이나 창피해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엄마와는 다음 날 아침 어정쩡한 화해를 하긴 했지만, 지금도 나는 그날의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엄마는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방식에 남다른 확신을 가진 사람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난 내가 이뻐 죽겠어”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 한편으로는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 섬뜩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을 남에게, 특히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려 하고 때로는 강요하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에게 반기라도 들면 “날 바꾸려 하지 마. 네가 나에게 맞춰”라는 말로 대화를 단절시켜 버린다.
이런 독재자 같은 엄마와 4박 5일이나 일본 여행을 가야 하다니. 솔직히 눈앞이 깜깜하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출국까지 아직 보름이나 남았음에도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다. 패딩과 방수 신발, 기모 바지 등 여행용품을 하나둘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염색과 파마 일정까지 여행 날짜에 맞춰 조율해 두었다. 여행 외의 모든 다른 일정들은 여행 이후로 미뤄졌다.
지금 엄마에게 이 여행은 가장 설레는 이벤트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할까.
여행지는 홋카이도.
사실 엄마는 홋카이도 여행을 세 번이나 시도했었다. 하지만 지진과 기상이변, 무릎 통증 같은 이유로 번번이 여행을 목전에 두고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홋카이도는 점점 엄마의 집착이 되었고, ‘죽기 전에 반드시 가야 할 곳’이 되어버렸다.
홋카이도 여행이 계속 무산되자 여동생은 전생에 엄마와 홋카이도 사이에 무슨 악연이라도 있었던 게 아니냐며 다른 여행지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그분이 가겠다고 하면, 가야 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세운 목표는 단 하나다.
‘대만대첩’에 이어 ‘홋카이도 대첩’을 만들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를 이해하려 하거나 설득하려 들지 말고, 그냥 ‘저분은 저렇다’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겪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특별히 아픈 곳 하나 없이 쌩쌩하게 여행을 준비하고 여전히 세상을 향해 큰소리 뻥뻥 칠 수 있는 엄마가 고맙기도 하다.
이번 여행에는 굳이 많은 의미를 두지 말자고 마음먹는다.
이해나 설득보다는, 하나의 추억이 더 생겼다는 사실에 감사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