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참아주고 있는' 사람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때에 예배가 끝난 후 교회 로비에서 교역자들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 교회에서 교역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 풀타임 전도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나. 나는 이제 막 결혼을 했고, 전도사님과 사모님은 결혼 1년 차이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과 신혼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치약'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흔히들 치약을 짜는 모습에서부터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치약을 짜는 일에 대해 각 부부가 어떠한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치약을 짜는 일에 있어서 누구의 방식을 따르고 있느냐, 누가 참아주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치약을 짜는 데에서 트러블이 생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는 치약을 짜는데 별다른 생각 없이 손이 가는 대로 짜는 편인데, 오빠는 어떻지? 우리는 둘 다 무난한 성격이니까 치약을 짜는 것에서 특별히 서로의 방식이 없으리라 생각한 나는 그대로 대답했다. "저흰 둘 다 딱히 치약을 짜는 방식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 날 집에 돌아가 오빠에게 오늘 이런 대화를 나눴더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흔히 다른 부부들이 가장 사소하게 서로 치약을 짜는 방식이 맞지 않아서 트러블이 있다더라, 나한테 전도사님네는 어때요-하셨는데 우린 딱히 서로 이렇다 할 방식이 없는 것 같더라, 혹시 오빠는 평소에 치약을 어떻게 짜고 있냐, 오빠도 딱히 별생각 없이 그냥 누르지 않느냐.
놀랍게도 오빠의 입에서는 "나는 치약을 아래부터 짜. 그런데 자기는 중간에서 짜더라고."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우리가 치약을 짜는 방식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는 인지하고 있었다. 오빠의 말은 이랬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치약을 아래서부터 짜서 쓰도록 배웠고, 이제까지 20년이 넘도록 그것을 실천해왔다고 한다. 집에서 생활할 때뿐만 아니라 기숙사에서 지낼 때도 늘 그랬다고. 그런데 나와 결혼을 하고 난 후 내가 자꾸만 중간 부분을 짜두자 그것이 오빠에게는 거슬렸다. 그래서 친절하게 밑에서부터 치약을 쭉 훑고 올라오는 치약짜개를 사다가 껴두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치약에 치약 짜개가 껴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겼던 나였다. 그런데 오빠의 말을 듣고 별안간 깨닫게 됐다. '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 사람이 많은 부분 나를 참아주고 있었겠구나.'
우리는 여느 부부가 그렇듯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사소한 생활 습관에 있어 다른 부분이 많다. 나의 경우에는 외출을 할 때 모든 집의 불을 끄고 전기선을 뽑는 것, 보일러를 점검하는 일이 습관이 되어 있다.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나의 원가족은 여섯 명이 저마다의 루틴으로 사는 통에 계절마다 관리비가 폭탄이었다. 누군가는 밤에 자고 누군가는 아침에 자고, 누군가가 밥을 먹고 있으면 뒤이어 들어오는 사람이 다시 국을 끓여 상을 차리는 일이 흔하다 보니 엄마는 전기세며 가스비며 아낄만한 것은 무조건 아끼도록 온 가족에게 교육시켰다. 집에 돌아왔을 때 불이 켜져 있거나 보일러가 켜져 있는 경우에는 잔소리 폭탄이 불가피했으므로, 나는 외출 전에 이곳저곳을 확인하여 부지런히 새어나가는 관리비를 차단하는데 일조했다.
그렇다 보니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에게는 모든 방의 불을 끄고, 쓰지 않는 전자제품의 코드를 뽑고, 보일러를 끄는 등의 일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빠에게는 이 일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오빠보다 내가 먼저 집을 나서는 날이면 귀가하는 도중 창 밖에서 불이 켜져 있는 우리 집을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루 종일 환했을 집 생각에 큰돈이 날아간 듯이 마음이 아렸다. 그래서 오빠에게 외출할 땐 꼭 불을 끄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아침에 씻고 난 후 화장실 불을 끄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며 '불 꺼! 불 꺼!'를 외쳐댔다. 나의 잔소리가 오빠의 심기에 다다르고 나서야 나는 치약을 짜는 것에 관하여 생각하게 됐다.
나는 내가 굉장히 많이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만 참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잔소리는 하고 싶은 소리의 1/10도 되지 않는다며, 이 정도 이야기는 잔소리도 아니라며 '나의 생활 방식'과 '나의 습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오빠에게 마구 퍼부어댔다. 그런데 내가 잔소리 공격을 이어갈 동안, 오빠는 오빠만의 방식대로 조용히 자신의 생활 방식과 나의 생활 방식을 조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20년이 넘게 쌓여온 오빠의 생활 습관을 개조하려고 했던 나와는 달리, 오빠는 서로가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평화롭게 해결 방안을 찾아 모두가 편리한 루틴을 만들어냈다. 어쩐지 오빠에게 미안하고, 미안했다. 잔소리를 해서 미안했던 건지, 강제로 그 사람을 바꾸려고 했던 마음이 미안했던 건지, 나만 혼자 참고 있다고 생각해서 미안했던 건지,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참고 있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오빠도 나를 참아주고 있다는 것을 살갗으로 느꼈다.
결혼한 지 1년 하고 2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를 참아주는 사람'인 오빠에 대해 떠올리려고 애쓴다. 오빠는 오빠가 가진 생활 방식대로, 나는 내가 가진 생활 방식대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스스로 되뇐다. 오빠는 치약을 정돈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생활 용품들을 알아서, 적절히, 빠르게 주문한다. 얼음이 먹고 싶은데 없을 때는 짜증이 난다며 얼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꾸준히 물을 넣어 얼려준다. 샤워하다 변기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닦고 배수구의 머리카락들을 정리한다. 오빠의 습관들 덕에 나는 치약과 얼음, 화장실에 딱히 손을 대지 않는다.
반면 나는 전기세와 가스비를 절약한다. 때가 됐다 싶으면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음식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적절한 시간 동안 집을 환기시키는 것도 비염이 있는 나의 작은 습관이다. 현대인의 필수품인 제습기 덕에 빨래하는 시간이 자유로워졌지만, 그래도 햇볕에 말리는 것 좋아서 낮 시간을 이용해 빨래를 하는 것도 내가 추구하는 생활 방식의 하나다.(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오빠에게는 아니다.) 덕분에 오빠는 매일 내의로 입는 흰 티셔츠가 동나지 않는다.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을 미니 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도 주로 내가 하는 일이다. 내 습관 덕분에 오빠는 관리비나 우리 집의 대기 환경, 바닥의 머리카락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서로의 생활 습관이 합쳐지니, 넓게 보았을 때 집에서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어쨌든 쉬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다. 사실 잔소리하는 습관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여전히 훅훅 튀어나오긴 하지만, 조용히 치약에 치약짜개를 껴놓은 오빠를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자제하려고 노력 중이다. 저 사람은 저 사람 나름대로 나를 참아주며, 자신의 루틴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나도 저를 참아주며 나의 루틴으로 살아가면 된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말이다. 우리는 서로를 참아주는 사람이니, 세상 어디에 나를 이만큼 참아줄 사람이 또 있을까 헤아려 보기도 한다. 가족이 되고 생활하는 공간과 살아오던 방식을 공유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래도 우리가 잘해나가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어깨가 으쓱하기도 하다.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참아줄 것이다. 그렇게 더 가족이 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