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확인하는 우리만의, 나만의 독특한 방법
결혼을 하고 새롭게 알게 된 오빠의 모습 중 하나는 잠꼬대가 심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날에 오빠가 나보다 먼저 잠이 들곤 하는데, 이는 결혼 후에도 여전한 나의 올빼미 기질 덕이다. 늦은 밤 책상에 앉아서 할 일을 하거나, 거실 바닥에 누워 책을 보거나, 침대에 누워 미적미적 핸드폰을 하다 보면 코를 고는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평화로운 그 소리에 익숙해질 즈음 갑작스럽게 데시벨이 높아진 잠꼬대에 깜짝 놀라곤 한다. 오빠는 꿈속에서 바쁘게 일을 처리하기도 하고, 흥이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한다. 꿈에서도 일을 할 때는 안타깝고, 노래를 할 때는 웃겨서 숨이 넘어가고, 쩝쩝대며 무언가를 먹을 때는 너무 신기해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세상 버라이어티 한 그 잠꼬대가 너무 신기하고 웃겨서 대화도 시도해봤으나 대화까지는 안 되더라. 살짝 아쉬웠다.
잠꼬대를 들으며 깔깔 웃어대거나 말을 거는 등, 내가 어떤 반응을 취하면 오빠는 절반쯤 뜬 눈으로 나를 보곤 한다. 내 과한 반응이 살짝은 오빠의 잠을 깨운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오빠의 반응은 한결같다.
“응~ 그랬어 우리 아가~ 이리 와 이리 와~”
“나는 여보 너무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지은이쓰~”
“여보가 최고야~”
잠결에 나를 껴안으며 이와 비슷한 낯 간지러운 말들을 쏟아낸 후 존경스러운 남편께서는 다시 코를 드르렁 골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품에 안기게 된 나는 슬며시 팔을 걷고 나와 조용히 소리를 죽이며 웃는다. 처음에는 잠꼬대를 하는 것도 웃기고, 그 이후에 반쯤 잠이 깬 채로 저런 말들을 내뱉는 게 너무 웃겨서 정말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었다.
우리 남편님께서는 2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목사님 포스가 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자한 얼굴과 중후한 말투를 소유하고 계시다. 가끔은 정말 하나님이 이 사람을 목사-사역자가 아닌 목사다-로 쓰시려고 빚으셨다는 생각이 물밀 듯 밀려오기도 한다. 물론 집 밖에서의 모습이지만 말이다. 그런 사람이 잠잘 때 툭 건드리면 저런 사랑꾼 같은 말을 무의식 중에 하고 있다니. 가끔 애교를 부릴 때도 듣는 말이긴 하지만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것과 잠에 빠진 상태에서 하는 것은 다르지. 무언가 다른 의도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부부 사이에 애교라는 것은 대부분 목적성을 띄고 있다. 물론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에 그렇다. 요리를 오빠가 했기 때문에 정황상 내가 설거지를 해야 하지만(정말 하기 싫어서) 설거지까지 오빠를 시키려는 목적이나, 전부터 봐 둔 모자를 의논하지 않고 갑자기 사버렸을 때 독단적인 소비를 무마하려는 목적이나, 오빠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을 때 그것을 누그러트리고자 하는 목적이나, 서로 간에 오해가 쌓였을 때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지 않고 대화를 나누기 위한 목적이나. 대체로 뻔뻔한 나의 성격과 애교가 만났을 때는 필시 무언가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리고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그것은 오빠도 마찬가지다. 오빠의 애교는 대체로 나의 폭풍 같은 잔소리 후에 만나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사실 많은 애정표현들 중에서 가장 기분이 좋은 때가 사랑꾼 잠꼬대를 들었을 때다. 잠을 자는 와중에도 머리를 굴리고 계산을 해서 잠꼬대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이 사랑꾼 잠꼬대를 들었을 때, 나는 “아,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한다. 같은 집에 살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에게 기분 좋은 말들을 쏟아 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를 사랑해서 저런 말들이 나오는구나. 이 사람이 깨어있을 때 나에게 하는 행동과 말들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 이겠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내 눈 앞에서 코를 드르렁 골며 자고 있는 이 존재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나를 한순간에 사랑받고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저런 귀여운 말들을 랩처럼 내뱉어놓고도 오빠는 잠에서 깨면 본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모른다. 결혼 초에는 이 사랑꾼 잠꼬대를 신기한 듯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지금은 익숙해졌다. 매일 밤 나는 자연스럽게 품에 안겨주었다가 사랑꾼 잠꼬대를 듣고, 또다시 자연스럽게 팔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할 일을 마저 한다. 계속 듣다 보니 이 사랑꾼 잠꼬대도 자연스러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오늘도 오빠가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귀가 시간이 꽤 늦더니, 많이 피곤했는지 침대에 쓰러져서 바로 곯아떨어졌다. 나는 오후 내 읽던 책이 또 생각나서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침대에 누웠다. 곧게 누워서 베개 위로 기지개를 켜고 오빠가 누워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대 사이즈가 퀸 밖에 되지 않는 관계로 오빠의 팔에 내 머리를 살짝 얹었더니 눈을 감은 채로 내 이마에 연신 뽀뽀를 한다. 오늘의 사랑꾼 잠꼬대는 말이 아닌 뽀뽀다. 오늘 밤에는 이 뽀뽀가 사랑받고 있는 나를 확인시켜 준다. 그 행복감에 취해서 지금 나는 이불을 박차고 다시 일어나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사랑받고 있다는 자각은 거대하고 치밀하고 계획적인 이벤트를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 일상의 순간에서 이 사람의 거짓 없는 마음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그 마음과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때 나 스스로 사랑받고 있다고 자각하곤 한다. 오늘도 나는 잠결에 지체 없이 이마에 뽀뽀를 해대는 오빠의 모습에서, 결혼한 지 일 년 하고도 한 달이 넘은 지금도 처음과 변함없이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과연 그도 나에게서 똑같은 마음을 발견하고 있을까 하는 것에 관하여 잠깐 생각한다. 내가 오빠의 ‘사랑꾼 잠꼬대’로 사랑받는 기분을 느낀다면, 반대로 오빠를 사랑받는 존재로 자각하게 하는 것은 나의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