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지? 잘 지내라."

외할머니를 보러 가야겠다

by haley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유치원 교사였던 엄마는 출근을 하기 위해 나를 외갓집에 데려다 놓았다. 삼양동 사거리 어느 골목에 있었던 나의 외갓집은 드르륵 옆으로 열리는 유리문에 커다랗고 빨간 글씨로 '쌀'이라고 써져있는 동네 쌀집이었다. 옆 동네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한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물론 나는 기억이 없다. 다만 자라나는 내내 모든 가족들에게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직접 손으로 기른 나를 다른 모든 동생들보다 유독 편애한다고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동생들은 외갓집에 가는 것을 무서워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외할머니를 좋아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할머니는 우리가 갈 때마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많은 반찬에 밥을 차려줬다. 언젠가 외할머니가 담근 파김치가 밥상에 올랐는데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그걸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 이후 때때마다 할머니는 파김치를 담가 엄마에게 건넸다. 이유는 '지은이가 좋아하니까'였다. 식사 시간마다 파김치는 내 앞에 놓였고 나는 맛있게 먹었다. 다 먹으면 그다음 해에 또 오고, 다 먹으면 그다음 해에 또 왔다. 신나게 먹던 파김치가 어느 순간부터 오지 않았는데 미련하게도 나는 이제야 그 시기를 가늠해보고 있다.

외할머니의 메뉴 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식혜였다. 명절 때마다 귀찮긴 해도 외갓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는 할머니의 식혜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직접 담근 식혜는 인기가 많았다. 몇 시간이라도 늦게 가면 이미 다른 친척들이 다 마셔버리고 한 통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럴 때면 한 컵을 따라 아빠에게 주고 다른 한 컵을 따라 동생들과 나눠 마시곤 했다. 머리가 크고 나서는 온 가족이 외갓집에 다녀오는 동안 다양한 핑계를 대고 혼자 집에 있었던 명절도 있었다. 그때도 돌아오는 가족들 손에는 내 몫의 식혜가 들려 있었다. 식혜가 뜸해지던 순간은 정확히 기억난다. 엄마에게 말했었다. "외할머니가 만든 식혜 먹고 싶어." 엄마는 이제 할머니가 허리도 아프고 힘들어서 식혜를 만들기 어렵다고 했다.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내가 가서 빨리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라고 하며 웃었다. 엄마도 "그래 가서 좀 배워와."라고 하며 같이 웃었다. 그렇게 그 말과 웃음은 흩어졌다.



결혼식 전, 오빠와 함께 외갓집에 갔다. 꼿꼿했던 할머니의 허리가 많이 굽었는데, 그 굽은 허리로 할머니는 여전히 밥상이 휘어지도록 밥과 반찬, 국과 갈비찜을 내왔다. 학교 다닌다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교회에 간다고, 이것저것 한다고 오랜만에 간 외갓집은 이전만큼 깨끗하고 밝지 않았다. 쌀집 앞을 뛰어다니던 네 살짜리가 다 커서 시집을 가는 시간이 나에게만 온 게 아니라 외갓집에도 함께 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큰 손녀가 결혼을 한다니까, 할머니가 장롱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더니 결혼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아주 오래된 화장품 세트였다.

초등학생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한창 쌩쌩하던 할머니가 이 물건 저 물건 사 오던 모임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산 거라며 엄마에게 건넸던 화장품 세트가 내 결혼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그 화장품 세트를 받아왔던 날 지나가며 했던 말과 표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형편에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 생활을 하고, 집안일도 하고, 헌신적인 교회 생활까지 하며 스스로를 가꾸지 않는 자신의 딸이 할머니는 많이 안쓰럽고 속상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때때로 우리가 먹을 과일 따위의 간식과 함께 엄마의 화장품과 옷 같은 것들을 사다 주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던 엄마의 씁쓸한 표정을 나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그렇게 엄마가 바라보던 것과 같은, 초록색 케이스 안에 '투웨이 케잌'과 90년대에 핫했으리라 짐작되는 루주가 모여있는 화장품 세트를 받아온 나는 줄곧 화장품 서랍 가장 안쪽에 그것을 보관했다.


올여름, 우리 부부는 <신박한 정리>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봤다. 한 편씩 보고 나면 꼭 청소 욕구, 정리 욕구가 생겨서 집 안 어느 부분을 뒤집어 치웠다. 사실 정리 욕구가 가득한 건 오빠 혼자였다. 나는 참 귀찮았는데, 오빠는 부지런히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는데 몰두했다.

그런 오빠의 레이더 망에 할머니가 준 화장품 세트가 걸려들었다! 서랍 깊숙한 곳에 들어가 지난 2년 반 동안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그 녀석을 꺼내 들고 오빠가 말했다. "이것도 정리해야 할 것 같지 않아?" 순간 나는 반발했다. "그거 할머니가 준거잖아! 그걸 어떻게 버려!" 그런 나에게 오빠가 말했다. "너 이걸로 화장할 거야?" 말문이 막혔다. 거기 있는 루주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쌍문동 덕선이가 생각나는 색깔이었다. 평생 쓸 일이 없는 건 확실했다. 오빠는 신애라 집사님을 본받아 사진 찍어 기억하고 버리자고 했다. 별 수 없이 나도 그러마, 했다.

버리기 전 기념으로 찍어둔 사진. 가장 왼쪽이 셰도, 그다음 줄이 루주인데 정말 덕선이가 생각나는 색깔들이다.



야근을 해야 한다는 오빠를 교회에 남겨두고, 30분쯤 되는 집까지 걸어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요즘 사는 얘기, 동생들 얘기, 교회 얘기, 앞으로의 계획, 친구들 만난 얘기, 남편 얘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2시간이 넘게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넷플릭스를 보며 밥을 먹었다. 다 먹고 치우려는 찰나 외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통화였다. "잘 지내지?" 하는 할머니한테 잘 지낸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전화하고 싶었어 할머니?" 내가 물어보자 할머니는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결혼 생활은 괜찮지? 남편이 아주 잘할 거 같아. 결혼 생활은 좋겠어. 잘 지내라." 목소리의 높낮이도 없이, 힘없이, 허공에 말하듯이 그냥 잘 지내지, 잘 지내라 말하는 할머니에게 나는 조만간 보러 가겠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할머니 목소리에 이렇게 힘이 없었을까.


최근 함께 사역하는 또래 전도사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신앙의 어른이셨고, 자신을 많이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던 전도사님의 모습이, 할머니의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떠올랐다. 그냥 괜히 할머니가 '갑자기' 안부를 물어오니까 나도 모르게 겁이 났다. 힘들어하는 전도사님을 위로하면서 나는 그것을 그에게 일어난 어떤 슬픈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할머니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마음이 불편해졌다. 엄마한테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그냥 '갑자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인데 불안을 느끼는 것은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한 손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남편이랑 사이는 좋은지 할머니는 단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다.


다산북스에서 기획하는 소설집을 좋아하는 편이다. 페미니즘 소설집도 좋아서 두 권 다 구매했다. 올해 <나의 할머니에게>라는 소설집이 나온 것을 보고 목록에 적어 두었다가, 지난 월요일에 사서 읽기 시작했다. "한 생애를 살아낸 모든 할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고 찬가"라는 이 소설집을 읽는 중에도, 읽으면서 먹먹한 중에도 나는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막연한 불특정 할머니를 떠올렸을 뿐이다. 나의 얼굴도 되었다가, 엄마의 얼굴도 되었다가, 친구의 얼굴도 되었다가 하는 그런 할머니. 그냥 우리 모두의 일이겠거니 하며 첫 소설을 읽었다. 복지회관 셔틀버스를 타고 수영을 배우러 갔다 오는, 아파트 앞을 느릿느릿 걷는 주인공 할머니가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미래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내가 언젠가 당도할 먼 시간이 아니었다. 쌀독 사이에서 일하던 시간, 딸을 걱정하던 시간, 손녀 손자한테 줄 갈비찜을 만들던 시간, 감감무소식인 손녀가 불현듯 생각나 전화해서 "잘 지내지? 잘 지내라." 말하는 시간. 미래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의 현존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는 오빠에게 외갓집에 가자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할머니가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고. 어디가 아프다고 한 것도 아니고,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사실 통화하는 내내 평소처럼 텔레비전 보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서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였는데, 그래도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해야겠다. 가서 할머니 파김치가 냉장고에 있는지도 좀 뒤져보고, 식혜 만드는 법도 넌지시 좀 물어보고, 할머니가 로션은 제대로 바르고 있는지도 확인하고, 허리가 얼마나 더 굽었는지도 보고, 쌀집 앞을 뛰어다니던 네 살짜리 손녀가 세상에서 제일 바르고 착한 신랑이랑 잘 살고 있는 것도 좀 보여드리고 와야겠다고, 꼭 말해야겠다. 어쩐지 글을 쓰는 내내, 외할머니를 생각하는 내내 마음의 일렁임이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