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아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에 대하여

by haley


KBS2 채널에 <대화의 희열2>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명사와 사석에서 대화를 나눈다는 콘셉트로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초청된 명사와 진행자들이 테이블 하나에 둘러앉아 음료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나는 시즌2가 되어서야 이 프로그램을 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한 회차씩 보곤 한다.


지난 3월 16일 방영분에 범죄심리학자인 경기대 이수정 교수가 나왔다. 대화 속에 여러 가지 토픽이 있었고 그 안에 '워킹맘'으로 살아온 이수정 교수의 삶이 있었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 유학을 한 이수정 교수는 박사 논문을 앞두고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큰 아이가 말이 느렸던 것이다. 유치원에서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병원에 데려가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모국어나 영어나, 어느 하나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발달 장애에 관한 책을 뒤지던 이수정 교수는 "내가 일 한다고 아이들을 다 버려 놓고 장애를 만드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일하는 모든 엄마들이 공감하겠지만 일을 포기하면 경력 단절 여성이 되고 어찌어찌 일을 하면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삶이다. 한국에서는 엄마 노릇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수정 교수의 말을 듣고 흘려 넘길 수가 없다.



결혼을 하면서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결혼 전보다 엄마와 자주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집에 살 때는 딱히 안부를 묻지 않아도 아픈지, 피곤한지, 무슨 일이 있는지 얼굴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주체가 된 후로는 전화를 하거나 만나지 않으면 두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서로 알 수 없다. 그래서 부쩍 엄마와 통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전화를 한다는 것과 함께 나타난 더욱 놀라운 변화는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나눈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늘 일을 하고 있었다.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보험회사에 다니던 엄마는 자신의 학비를 직접 모아 다른 친구들보다는 조금 늦게 숭의 여전 유아교육과에 들어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 위로 대학교 때 실종되어 찾지 못한 오빠가 한 명 있었는데 공부를 매우 잘했다고 한다. 그래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실종되기 전까지 첫째 아들의 학업 뒷바라지를 했고, 엄마는 자연스럽게 상고로 진학해서 스무 살이 되자마자 회사에 들어갔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가부장제의 한가운데서 삶을 사신 분들이고, 우리 엄마는 그보다 조금 희석됐지만 나에 비해서는 만만치 않은 가부장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공부를 하고 싶었음에도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모두에게는 엄마의 취업이 당연했던 것 같다.


그래도 엄마는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자신이 모은 돈으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에 진학했다. 이 부분에서 '역시 나는 엄마 딸인가' 싶기도 하다. 엄마도 나만큼 대차다. 내가 엄마만큼 대찬 건가? 어쨌든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고,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그 이후 여러 가지 이유들이 겹치고 겹쳐 우리 집은 늘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니 엄마는 늘 일을 했다. 내 앨범을 펼쳤을 때 종종 보이는 사진은 외갓집에서 찍힌 사진이다.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엄마가 출근을 하면 나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고 한다. 첫째인 나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엄마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 후의 나에게 엄마가 일을 쉬었던 기억은 없다. 첫째인 나와 8살 차이가 나는 셋째를 가졌을 때, 엄마는 만삭의 몸으로 2월에 있는 유치원 졸업식을 마쳤고 그 후에 바로 아이를 낳았다. 막내 동생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태어났는데, 그때도 엄마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아이 넷을 낳아 키우면서도 몸이 회복되면 바로 일터로 나갔던, 아니 던져졌던 사람이었다.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에, 엄마와 나는 서로 대화가 단절됐다. 엄마는 유치원 일, 집안일, 육아를 전부 해내면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었고 우리에게 짜증을 많이 냈다.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소녀 큰 딸은 그런 엄마에게 '이중적이다'라는 말로 가시를 세웠다. 밖에서는 인자한 권사님, 선생님이면서 집에서는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이 당시의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상처를 받으면서 대화가 줄어들었고, 서로에게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은 사이가 된 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십여 년을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로 지냈는데, 내가 결혼을 했다는 그 이유로 한 순간에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더 없는 상담자가 되어 버렸다. 결혼 한지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실이 참 신기하다.


장황하게 엄마와 내가 '감정을 나누기 시작했다.'는 것을 설명한 이유는 결국 다른 말이 하고 싶어서다. 서로 감정을 나누다가 내가 알게 된 '엄마의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2018년 5월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후에 시어머니와 큰 갈등이 한 번 있었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화가 많이 나셨는데, 나는 나대로 억울했다. 이 일을 자세히 쓰지 않는 것은, 이로 인하여 깨달은 바를 다른 글로 적기 위함이다. 그러니 그 이야기는 아껴두겠다.


아무튼 화가 많이 나신 어머니는 나와 전화를 하면서 내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하시기도 했다. 사실 이제 막 결혼을 한지 두 달이 된 '초보 며느리'로서는 시어머니와 이런 사이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상처였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상처를 받은 당시에는 오빠에게도 말할 수 없었는데, 나와 어머니의 사이에서 오빠도 오빠대로 상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관계가 다 풀렸고, 웃으며 통화를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때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에 대해서 미안해하고 계신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때, 답답한 마음에 떠올렸던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나는 오빠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집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속에서부터 나오는 울음을 참지 않고 수화기에 대고 그대로 터트렸다. 엄마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말들 속에서 내 기억에 남는 말은 딱 하나였다. "네가 어릴 때, 엄마가 일을 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너한테 짜증을 너무 많이 냈어. 그래서 네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쉽게 상처 받나 봐. 엄마가 미안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의 통화가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당시 나는 '왜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한 지금도 나의 힘듬을 자신의 탓이라고 이야기하는 가'에 관하여 화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엄마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나는 엄마의 자책에 위로받고 싶지 않았고 그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조곤조곤 나의 힘듦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엄마의 말에 위로받고 있었고 나의 답답한 마음은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한참을 울다가 감정이 정리된 후에 기도를 부탁한 후 전화를 끊었다.


어렸을 때는 매일 새벽 예배를 가고,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엄마의 모습과 집에 오면 짜증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이 모순적이라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세심하고 인격적인 엄마가 나에게는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때의 엄마가 모순적인 사람이 아닌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안다. 엄마가 생존하기 위해, 피붙이 네 명을 바르게, 곧게 키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그래서 나에게는 엄마의 자책이, '일하는 엄마'로서 내 자식에게 상처를 줬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엄마의 자책이 무겁게 다가온다.



나는 아직 신혼이고, 구체적인 출산 계획이 없다. 아예 자녀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낳는다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하고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가에 의문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워킹맘', '일하는 엄마', '엄마의 자책'과 같은 말들이 우리 엄마와 연결된다. 엄마와 관련된 글을 읽고, 티브이 프로그램을 볼 때의 나는 '맏딸'의 정체성을 갖는다. 엄마의 삶을 생각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당시의 상처에 기인한 나의 생각과 경험을 수정한다.


최근에 <페미니스트도 결혼 하나요?(부너미 지음/민들레)>라는 책을 읽고 있다. 결혼과 육아를 경험한,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엄마들이 모여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활동들을 하며 얻은 결과물이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가부장제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곁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기혼여성들"이다. 그들의 글 안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비슷해 보여도 삶은 제각기 다르다. 고민도, 바라는 것도 다 다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사는 모습이 다양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여자들의 삶을 획일적으로 규정한다. 거기에 익숙해지면 여자들도 규정된 삶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애쓰게 된다. 그와 다른 삶을 살게 되면, 자신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이라 여기며 수없이 반성하고 자책한다. (p.103)


한국 사회에서 여자들에게 규정하는, 요구하는 삶에는 '좋은 어머니'가 있다. 도대체 어떤 어머니가 좋은 어머니인지는 모르겠지만 '워킹맘', 소위 '일하는 엄마들'의 경우 자신이 좋은 어머니가 아니라는 자책을 가지고 있다. 일하는 엄마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규정된 삶을 벗어난 사람이며, 그들 스스로 자신에게 프레임을 씌워 자책을 한다. 이수정 교수의 자책처럼, 우리 엄마의 자책처럼.


물론 차이는 있다.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는 워킹맘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나가는 워킹맘은 언뜻 다른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아실현을 위해서 일하는 엄마라고 해서, 그의 일을 단지 자신을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아실현을 하는 엄마가 이기적인가? 자기만을 위해 일터로 나가고 고된 노동을 감수하는가? 그런 엄마가 물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엄마들에게는 '자아실현'의 추구와 '자녀 양육'이 둘 중 어떤 것을 택하는 문제나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적어도 내가 봐왔던 엄마들은 그랬다.


이수정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엄마를 떠올리면서, 가부장제의 최전선에 있다고 말하는 엄마들의 글을 읽으면서, 한 명의 '딸'로서 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엄마,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들은 나를 위해서, 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밤낮없이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자책하고 있다. 나는 그런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엄마,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어렸을 때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엄마의 마음을,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왜 엄마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살아왔으면서 여전히 미안해야 하고, 여전히 사과해야 하고, 여전히 죄인이어야 하냐고. '엄마'와 '어린 나' 사이에 있었던 그 '경험들'이 모두 지금의 내 모습에 자양분이 되지 않았겠냐고. 그러니 엄마는 이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엄마의 모습을 보며 지금의 나는 내 삶에 대한 정답을 찾아나간다고. 언젠가 내가 '일하는 엄마'가 되었을 때, 엄마의 삶이 나에게 준 가르침으로 내가 달려가고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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