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가득한 이야기의 출처를 찾아서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드라마 보기, 책 읽기, 웹툰 보기, 가끔은 영화 보기. 한마디로 ‘이야기’가 있는 모든 것을 보고 읽는 것이 나의 취미다. 사실 취미를 넘어서서 중독이다. 틈만 나면 푹 빠져서 시간을 보낼 이야기를 찾고, 정말 폐인이 되어버리니 중독자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가끔은 할 일도 미뤄버리고 이야기 속에 푹 빠져있지만 나름대로는 건강한 중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므로, 내가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나는 사람에 관심이 많으니, 사람들의 삶이 꾹꾹 눌러 담겨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걸 거야.” 그런데 최근에 그 답이 아주 쉬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냥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빠’를 닮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딸’이다.
막연하게 어렸을 때를 회상하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은 아빠와 나, 연년생인 동생이 나란히 앉아서 코난 극장판을 보던 때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는 마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라디오를 듣다(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의 낙은 라디오가 아니었던가) 선생님께 걸려 눈알이 돌아가는, 그런 급박한 대치 상황이 계속됐다.
엄마는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우리의 학업을 방해한다는, 보통의 엄마들이 가진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서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은 엄마가 부재중일 때가 돼서야 우리들의 세상인양 정신없이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귀가 후 채널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엄마는 우리를 혼냈고, 가끔 격해지면 텔레비전의 코드를 자르기도 했다. 텔레비전의 코드가 잘려나갈 때면 마치 전쟁 중 모든 수로가 막힌 것처럼 절망적이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몰래 라디오를, 아니 텔레비전을 보던 것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분명히 엄마가 우리의 눈앞에서 잘랐던 텔레비전의 코드는 놀랍게도 아무 일 없이 복원되어 있곤 했다. 우리 모두는 굳이 누가 그 일을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원래 선생님들은 누가 빼앗긴 MP3를 서랍에서 몰래 가져갔는지 다 알지 않는가? 주인이다. 결국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몰래 가져온 MP3는 발각되고 혼나기 마련이다.
멀쩡해진 텔레비전을 신나게 보던 아빠와 나, 동생은 엄마의 귀가 소리에 맞춰 헛기침을 해댔다. 전시 상황이 시작되면 나와 동생은 작은 방으로 피신해 열심히 책을 읽었다.(엄마는 텔레비전이 없으면 우리가 책을 읽는다고 좋아했다.) 조곤조곤한 소리의 대포가 날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핑, 펑, 퓽 총알과 화살이 오고 가다가 조용해지면, 엄마는 마루에 나와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안방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승전가다! 동생과 나는 소리 없이 아군의 승리를 기뻐하며 쭈뼛쭈뼛 안방으로 가 아빠 옆에 앉았다. 그리고 신나게 텔레비전이 쏟아내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때 우리(엄마를 제외한 모두)는 이야기를 사수하기 위해 싸우는 전우애, 뭐 그 비슷한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대치상황은 10년이 넘도록 간간히 반복되었다. 엄마의 눈치를 보며, 셋이 나란히 앉아 전리품으로 얻은 군것질 거리를 앞에 두고 코난을 보던 때가 어쩐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엄마에게는 복장이 터지는 장면이었겠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아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와 함께 살았다. 집에 있는 날이면 컴퓨터로 영화를 봤고, 뭐라고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배경 음악은 좋은 중국의 무협 드라마를 봤다. 태조 왕건과 기황후 같은 사극 드라마는 물론이며 왕가네 식구들과 같은 저녁 드라마, 김과장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 같은 사이다 드라마도 즐겼다. 뿐만 아니었다. 한 때는 삼국지에 꽂혀서 늘 아빠의 손에는 누런 표지의 삼국지 책이 들려 있었다. 지금도 친정의 책꽂이에는 삼국지 전권이 꽂혀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빠와 그 아빠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함께 살았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새벽기도에 가면 주섬주섬 일어나서 텔레비전을 켰다. 자고 있는 아빠와 동생들이 깨지 않도록 음량을 5로 줄인 후 영화나 만화를 봤다. (영화 ‘장화홍련’을 새벽에 보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별로 안 무섭네, 하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는 교과서 사이에 동화책을 넣고 읽다가 혼나기도 했고, 방과 후에는 굳이 수고롭게 친구들과 뛰어놀지 않고 집에 돌아와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봤다. 중학교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소설책을 빌려 읽었고, 그때부터 나의 책 지름신이 시작됐다. 중,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가서도 소설책을 사서 모으는 나에게 엄마는 “생산적인 책을 좀 읽어라.”라고 말했지만, 이야기 중독자에게는 통하지 않을 말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아이돌 그룹의 팬픽(동방신기, 슈퍼주니어는 기본이요 친구들이 추천해준 신화, SS501도 읽었더랬다.)과 귀여니, 백묘, 백원과 같은 작가들의 인터넷 소설, 꽃보다 남자나 성균관 스캔들 같은 한국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프러포즈 대작전과 같은 일본 드라마들도 섭렵했다.
이 정도면 그 아빠의 그 딸이 아닌가. 아빠가 즐겁게 본 드라마와 내가 폐인처럼 본 드라마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동해부터 서해까지 10번 왕복할 지경이라 다 못 옮기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어쨌든 굳이 아빠와 나의 다른 점을 찾자면, 아빠는 중국 드라마를 봤으나 나는 일본 드라마를 봤다는 점, 아빠는 스마트폰 활용이 어려워 웹툰을 보지 않지만 나는 웹툰도 무지하게 본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어쩌면 ‘내가 왜 이야기를 좋아할까’라는 물음에 스스로 교만했던 것은, 그 답을 나에게서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좋아하는 것을 넘어 즐기는 아빠에게서 그 모습을 배웠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서사를 즐기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내 삶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부지런히 텔레비전을 없애고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걸던 엄마가 나에게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줬다면, 그런 엄마 몰래 함께 코난 극장판을 봐주던 아빠는 나에게 이야기를 즐기는 법, 더 나아가 삶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줬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란히 앉아 코난 극장판을 보는 그 행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지금껏 엄마와 아빠의 대치 상황을 설명했으나, 사실은 엄마라는 사람 자체도 이야기를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학창 시절은 정독 도서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곳에서 엄마는 여러 시인들의 시집을 읽고,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몇 번씩이나 읽곤 했다고 한다.
이에 덧붙여 아빠와 코난을 봤던 때만큼이나 즐거웠던 기억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해의 겨울에 자리 잡고 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후 내가 집에 돌아오면 가족 모두가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문소리를 듣고 일어난 엄마는 가방을 내려놓는 나에게 “그거 좀 틀어봐”라고 말했다. 나는 분부를 받들어 컴퓨터를 켜고 KBS2 홈페이지에 들어가 ‘꽃보다 남자’ 다시 보기를 틀곤 했다. 늦은 밤, 교복을 벗지도 않은 채 엄마와 함께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를 보며 설렜던 기억은 지금도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있다. 물론 동생들은 다 자고 있었으니 몰랐을 테지만, 나는 꽃보다 남자가 방영했던 기간 내 엄마와 함께 저화질의 드라마를 봤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순전히 ‘자녀를 교육하는 방침’이라는 명목 하에 스스로를 이야기로부터 격리시킨 것이었는데 가끔씩 찾아오는 금단 현상을 그렇게 해결하곤 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으므로 기꺼이 엄마의 비밀 요원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빠와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아닌 척했던 엄마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이야기 중독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로 채워지는 그들의 삶을 보며 내 삶을 이야기로 채워나갔다. 그래서 지금도 틈만 나면 다양한 매체로 다양한 이야기를 찾곤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내 삶을 다채롭게, 여유 있게, 성숙하게 만든다. 결국 내가 누리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 삶은 아빠와 엄마로부터 왔다.
상상해본다. 이야기 중독자인 나의 삶을 보고 누군가도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는 상상. 이야기가 내 삶을 성숙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도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상상. 그래서 다채로운 이야기가 나와 그의 삶 속에 들어와 우리가 더 알록달록 해지는 상상. 상상만으로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