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野, 그리고 꿈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사이, 잃어버린 아빠의 꿈에 대해

by haley

#꿈

나의 10대는 한쪽 벽이 커다란 장롱으로 채워져 있는 방 한 칸에서 여섯 식구가 모여 자는 장면으로 묘사할 수 있다. 방은 두 개였지만,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다 같이 모여 잤다. 더운 계절에는 한 방에 나란히 누워 에어컨을 15분만 켰다 끄면 시원하게 잠들 수 있었고 추운 계절에는 작은 방에, 마루에, 화장실에 들어오는 바람을 피하느라 한 방에 옹기종기 모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집 여섯 식구는 모두 아담한 체구를 지녔다. 당시 40대 부부와 10대 소녀 둘, 말을 할 줄 아는 아기와 말을 할 줄 모르는 아기로 이루어진 우리 가족은 각자의 머리 둘 곳, 다리 뻗을 곳을 부지런히 찾으며 매일 밤을 보냈다. 그리고 그 일사불란한 밤에, 언젠가부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빠는 밤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았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내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를 쳐내려 갔다. 반에서 무조건 5번 안에 드는 나의 키처럼 작고 작았던 우리의 방을, 하얀 모니터 불빛이 꽉 채웠다. 낮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보다도 밤에 아빠가 킨 컴퓨터의 불빛이 더 밝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아빠는 매일 밤 시를 쓰고 있었다. 행시라고 했다. 주어진 단어 혹은 문장을 분해해 각 행의 앞머리에 두고, 부지런히 시를 쓰고 있었다. 아빠는 행시를 쓰는 사람들이 모인 한 인터넷 카페에서 ‘우리두리’라는 닉네임으로 성실하게 게시 글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러 개의 직업이 아빠를 거쳐 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방 한 칸에 모여 자야 했다.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성장 호르몬이 나온다는데, 조그만 우리 4명을 뒤로 두고 어떻게 그 황금 같은 시간 내내 모니터 불빛으로 잠을 방해할 수 있는 걸까. 잠을 방해하는 건 둘째 치고, 어떻게 여섯 명이 한 방에서 자는 것이 가능할까. 한 방에서 자는 건 둘째 치고, 언제까지 나는 비가 오는 날에는 양말이 검게 물드는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 걸까. 운동화는 둘째 치고, 왜 나는 온통 내 물건들로 꽉 채울 공간이 없는 걸까. 잠자리에 누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던 그때 나의 꿈은 ‘내 방’이 생기는 것이었다.



#꿈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던 밤이 셀 수 없이 지나간 후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신세계였다. 그리고 그 사이 ‘내 방’에 대한 꿈은 서서히 사라졌다. 현실을 받아들였다. 수업을 듣고, 매 학기마다 알바를 했다. 쉴 새 없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부지런히 우겨 학생회실과 동아리 방에 ‘내 공간’을 만들었던 그때, 아빠가 등단했다.

늦은 시간 행시를 써서 올리던 인터넷 카페는 계절마다 문예지를 출간하는 하나의 문학회였다. 아마 아빠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새벽녘까지 모니터 불빛에 의지한 채 수많은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찾던 아빠는 결국 2013년 봄에 신인 행시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아빠의 이름으로 온 소포에는 표지에 아빠 사진이 박힌 문예지가 여러 권 들어있었다. 당선된 시는 총 5편이었고 아빠의 아호는 ‘靑野’였다. 푸른 들. 왜 아빠는 스스로를 ‘푸른 들’이라고 칭했을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빠의 푸르렀던 시절에 대해, 거칠었던 시간에 대해, 아빠의 꿈에 대해 생각했다.

신나는 대학생 생활을 즐기다가 4학년이 된 해에 나는 여느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더 알고 싶었고 더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여전히 방 두 칸을 공유하며 살고 있었다. 세상의 많은 직업 중 하나를 당장 선택하는 것이 나를 제외한 모두의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불편했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갈등이 커져갈 때, 나는 아빠의 시가 생각났다. 하나의 직업에 정착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던 아빠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사이에 있지 않았을까? 경제학과를 졸업한 것도, 부도가 난 할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갔던 것도, 트럭 위에 앉아 곱창 볶음을 팔던 것도, 가게를 얻어 이불을 팔던 것도,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택배를 돌리던 것도. 그 어떤 것에도 아빠가 ‘하고 싶은 것’은 없었다. 푸르른 시절 ‘아빠의 꿈’은 결국 눈앞에 닥친 삶에 밀렸다. ‘해야 하는 것’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던 아빠는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 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마도 그 시간이 유일하게 아빠를 위로해준 시간이었을 거다. 나는 나의 ‘淸野’, 푸른 시절과 거친 시간을 맞이하고 나서야, 아빠의 지나간 ‘淸野’, 푸른 시절과 거친 시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꿈

나는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택했다. 지금의 나는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방에는 책을 꽂을 자리가 부족하다. 그리고 두 개의 책장을 넘어서 바닥을 점령한 책들 사이에는 2013년 봄, 아빠가 등단한 문예지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어찌 보면 나의 선택은 아빠가 견뎌낸 푸른 시절과 거친 시간의 산물이다. 아빠가 ‘해야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원에 입학하며 나에게는 한 가지 꿈이 생겼다. 근 10년간 아빠가 쓴 시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책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일이었지만 20대 중후반이 된 지금은 그냥 인쇄를 맡겨 묶기만 해도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냥 시를 종이에 프린트하겠다는 건 아니다. ‘淸野’라는 제목으로 이제까지 아빠의 삶을, 그리고 그 삶을 구성했던 단어들을 하나로 묶어 선물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노력을 들여서 말이다. 그 꿈이 지금의 나에게는 아빠의 지나간 푸르고 거친 나날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다. 그리고 그 꿈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 꿈마저도 아빠의 ‘淸野’의 산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