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앙을 이유로 아빠에게 성실히 상처를 주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술을 마시는 아빠가 싫었다.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청년일 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엄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고, 어린 시절 성경학교에 몇 번 참석하며 교회 문턱을 밟아봤던 아빠는 엄마와 결혼한 이후 크리스천 가정을 이뤘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의 성향은 조금 달랐다. 신앙도 달랐다. 아빠는 나에게 이것을 '구약과 신약'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주일 예배는 기본이요, 매일 새벽 재단을 쌓으며 소위 '경건 생활'을 목숨처럼 여겼던 엄마는 의례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교육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 수련회는 필참이요, 주일 예배를 빠지고 어딘가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 사 남매는 말씀 묵상을 위해 성경을 필사했던 노트가 한두 권이 아니었다. 이래저래 엄마의 신앙생활은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고, 엄마는 그 신앙을 우리에게 물려주고자 애썼다. 그에 비해 아빠는 자유로웠다. 아빠는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확신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한때는 신학교에 가기 위해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빠의 일상생활은 늘 교회에 매여있는 엄마에 비해 자유로웠다. 좋게 말하면 자유였지만 반대로 보면 엄마만큼은 치열하지 않았다. 본인 피셜 결혼 후 진짜 신앙생활을 시작한 아빠로서는 이미 술이나 담배와 같은 문화가 삶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계명과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했던 구약 시대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모든 계명과 율법에서 자유로워진 신약 시대가 아빠에게는 두 분의 신앙에 맞물려 보였던 것 같다. 얘기를 듣던 나도 아빠의 표현에 공감했다.
내 시각에서 아빠는 가부장제의 피해자다. 아빠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장남'답게 자라왔고,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가장'이 되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가장으로 살아내려 애쓴 아빠는 늘 힘들었다. 엄마와 결혼한 이후 아빠는 술과 담배를 모조리 끊고 근 20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햇수로 20년이 가까워지던 언제부턴가 힘든 아빠를 다시 '술'이 위로하기 시작했다. 힘든 아빠를 술이 위로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이상할 것 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소위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천청벽력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술을 마시던 아빠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술에 취해 귀가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아빠가 만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우리 가족의 분위기는 험상궂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같은 생각을 했다. 술에 취한 아빠가 싫었고 술이 싫었고 아빠가 싫었다. 왜 아빠는 굳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집안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까? 아빠도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도대체 왜 술을 마시는 걸까?
그렇게 우리는 아빠를 제외하고 같은 마음을 공유했다. 모두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가족들의 태도와 표정을 본 내 생각에는 그랬다. 나는 당연히 술이란 멀리 해야 하는 것, 마시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신앙관을 그대로 체득하고 있었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이것은 더 굳어졌다.
신학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인간관계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 좁혀졌다.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방학 때는 국내 섬으로 선교를 나가는 생활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었고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는 차츰 멀어졌다. 그들은 술을 좋아했고 즐겼다. 술을 마시지 않는, 너무 기독교의 색채가 강한 나를 배려해 친구들은 나를 술자리에 부르지 않았다. 어느 땐가 연말에 술집에서 나를 제외한 친구들이 모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쩐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집에서도 온통 기독교 문화 안에서 살아가던, 마치 온실 속의 화초 같았던 나는 그 일을 적극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멀어질 사람이라서 멀어졌나 보다, 새로운 사람들이 내 곁을 채우나 보다 싶었다.
대학생이 된 후 술자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스무 살 때부터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해왔기에 때마다 회식 자리는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모든 곳에서도 내가 철저한 기독교 신자라는 것을 알렸고,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술은 정말 쓸데없는 것이라고, 술을 마시지 않고도 할 말 다 하고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렇게 이십 대 후반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신 경험이라고는, 교회를 다니는 대학 동기와 술이 궁금하다며 편의점에서 산 맥주 한 캔을 마셔본 것이 다였다. 규칙적으로 얼굴을 보는 사람들은 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어서, 굳이 내가 강압적으로 술을 마셔야 할 상황이 생기지도 않았다.
최근에 친구를 만났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친구였다. 요즘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다고,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너 혹시 술 안 마셔?'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차마 '응. 나는 안 마시는데?'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다고, 가자고 했다. 분위기 좋은 와인바에 갔다. 술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괜스레 '나는 와인의 맛은 잘 모르겠다.'와 같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 날, 분위기 좋은 와인바에서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는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눴다. 울컥하며 눈물을 흘린 순간도 있었다. 대화는 새벽까지 계속됐고 결국 막차도 끊겨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집에 오는 내내 술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내 모습과 친구와 나눈 대화에 관하여 생각했다. 방금 내가 나온 곳이, 이전에는 그저 '술집'이라는 단어 하나에 그쳤을 곳인데 이제는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눈 와인바'가 되었다. 와인바에 대해 생각했고, 와인에 대해 생각했고, 술에 대해 생각했고, 술을 마시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멀어진 관계에 대해 생각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술을 마시게 된 큰 동생과 동생이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며 걱정스레 전화를 하던 엄마를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빠에 관하여 생각했다.
아빠는 도대체 왜 술을 마시는 걸까, 라는 아주 오래 전의 질문에 대하여 스스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그 시절의 아빠 그리고 지금의 아빠는 와인잔을 손에 들고 있었던 나의 친구처럼, 털어놓고 싶은 무언가가 마음속에 가득 차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 차서 그저 누군가를 앞에 두고 술을 친구 삼아 그것들을 흘려보냈던 것은 아닐까. 술잔을 든 아빠의 손에는 신앙으로 해결되지 않는, 어쩌면 해결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이 있지는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아빠에게 신앙과 술이 무관한 것은 아니었을까. 만일 내가 스무 살 이후 술을 마셨더라면 아빠에 관하여 조금은 더 일찍 생각할 수 있었을까.
새벽녘, 귀가 후 씻고 침대에 누워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오늘 이런 이유로 와인을 마셨다고, 마셔보니 술 마시는 것이 별게 아니더라고, 이제까지 내가 과연 무엇을 위해 애써 술을 마시지 않으려 노력했는지 모르겠다고, 어차피 진탕 취할 정도로 마실 것도 아닌데 왜 이제까지 아빠랑 함께 마주 앉은 적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다른 집 아빠들은 성인이 된 자식들과 술 한 잔 하며 시간을 보내고 속 깊은 이야기도 할 텐데, 혹시 우리가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면 아빠가 만취될 때까지 술과 친구를 하지는 않지 않았겠냐고. 어쩌면 하나로 똘똘 뭉쳐 아빠를 정죄했던 우리들 때문에 아빠가 더 술을 마실 수밖에 없지 않았겠냐고.
사실 엄마는 성실한 사람이다. 엄마는 앞서 이야기한 신앙이 바람직한 신앙, 좋은 신앙이라 배웠고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좋은 신앙을 물려주려 성실히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나는 엄마를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다. 그리고 아빠는 어쩌면 우리 가족의 성실한 신앙에 상처 받은 사람이다. 마음이 무너지고 삶이 무너졌을 때,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가족들의 따듯한 관심이 아닌 냉랭한 시선과 날카로운 말들을 받아내야 했다. 어쩌면 우리는 '성실한 신앙'이라는 명목으로 아빠에게 참 성실히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와 신앙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아빠는 늘 과거에 하나님을 만났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젠가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마음속으로 아빠를 정죄했다. 아빠는 현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왜 현재 삶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과거 한 때의 삶을 나누는 거지? 그때만큼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어쩌면 그때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신앙의 전부인가? 그렇다면 지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온갖 생각을 하며 아빠에 관하여 판단하고 정죄했다. 그런데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마음이 먹먹하다. 실제로 지금의 아빠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갖고 있다고 해도 결국 그 잘못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정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가족으로서 따듯하게 사랑했더라면, 그깟 술이 아니라 아빠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때의 아빠가 조금은 달랐을까.
물론 나는 앞으로도 술을 즐기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내 삶과 삶을 이끄는 신념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자리 잡아왔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끊는 것이 어렵듯,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술을 백분 즐기는 일 또한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애써 술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청하는 술이, 때로 그의 마음속에 꽉꽉 들어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술을 빌어서 밖에 속을 털어놓을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도 안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첫째 딸로서, 뒤늦게나마 이 글을 빌어 아빠에게 말하고 싶다. "아빠, 내가 술 한 잔 대접할게!" 이제는 아빠가 어떤 술을 마시고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어떤 술집에서 누구와 술을 마시는지, 술을 마시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상세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고, 꼭 전하고 싶다. 교회의 전도사로서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정작 아빠의 이야기는 들으려 노력조차 하지 않았음을 용서해달라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꼭 듣고 싶다고. 부족한 딸이 글로나마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