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일상을 채워줬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쓰는 글

by haley

요즘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포털 회사에 오랜 시간 청춘을 바쳐 일한 여자들의 일과 삶, 사랑을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임수정, 이다희, 전혜진이 연기하는 각각의 캐릭터가 멋있었다가, 짠했다가, 고구마였다가, 사이다이기를 반복하다 금세 한 회차가 지나간다.

<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대표 포스터

지난 11회, 12회 차에서 배타미(임수정 분), 차현(이다희 분)이 일하는 포털 회사 ‘바로’에서 탑 화면 개편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항목의 개수를 줄여야 한다는 배타미의 주장에 따라 결론적으로 탑 화면에서 두 개의 항목이 사라진다. 그중 하나가 과거에 바로의 영광이라고 말할 만큼 바로를 알리는데 한 몫했지만, 이제는 없어진다고 해도 타 항목에 비하면 딱히 손실이라고도 볼 수 없는 '마이홈피'다. 바로의 '마이홈피'는 고작 10년 전에 과거의 내가 불나게 접속하고 있었던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떠올리게 했다. 일전에 싸이월드가 없어진다는 공지가 떴을 때, 미니홈피에 있는 사진과 글들을 백업할 시간을 준다고 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기에 드라마에 한층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현실의 우리처럼, 드라마 안에서도 주인공들이 미니홈피에 담긴 자신의 옛 사진들을 볼 때 여러 감정이 스쳐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괜히 싸이월드에 들어갔다. 아이디가 뭐였더라, 고민하다가 제일 많이 사용하는 메일 주소를 적어 넣었다. 몇 번을 더 시도하고 나서야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연예인의 생일과 이름을 따서 아이디를 만들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404217@hj.je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는 슈퍼주니어 은혁의 생일과 나의 생일을 합쳐 숫자를 만들고, 은혁의 본명과 나의 이니셜을 합쳐 메일 주소 인척 하는 아이디가 완성됐다. 와, 미니홈피는 아이디부터가 나의 학창 시절이 가득하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음악 방송이며 콘서트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던 덕후 여고생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하다. 솔직히 다들 어느 사이트든 아이디나 비밀번호에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이나 이니셜쯤은 포함되어 있지 않나?


아이디를 찾고 로그인하고 나니 이제는 미니홈피의 형태가 아닌 피드의 형태, 블로그와 비슷한 형태로 바뀐 나의 미니홈피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 부지런히 써왔던 다이어리도 가득 차 있고, 때때마다 업로드했던 사진들도 많다. 방 정리에 책 정리에 하다못해 노트북 바탕화면 아이콘 정리도 못하는 내가 미니홈피의 다이어리는 연도 별로 나눠서 살뜰히 정리해 놓았다. 해당 연도를 클릭하면 중학교 때는 누구와 놀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어떤 성적을 받았고, 2학년 때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3학년 때는 어떤 다짐들을 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10여 년 전부터 내가 꾸준히 무언가를 써왔다는 것과 쓰여있는 생각과 감정들에 담긴 성찰이 참 대견해서 한두 시간을 내리 구경했다.




미니홈피에 남아 있는 기록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매일 얼굴을 보던 친구들, 실제로 만나긴 하지만 댓글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 온라인 상으로 알게 되어 정보를 공유하던 사람들, 하다못해 나의 사진 폴더 하나를 꽉 채워준 아이돌들. 매 년 함께 했던 사람이 바뀌었고, 주로 미니홈피를 통해 공유하던 사람들이 바뀌었던 것도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씁쓸해진다. 중학교 때 나와 함께 민들레 영토에 가서 음료를 무제한으로 마시던 친구들은 지금 뭘 할까? 고등학교 때 서로 좋아하던 아이돌의 팬픽을 공유해서 읽던 현실 친구들과 서로 다른 지역에 살아도 팬 카페에서 열심히 오빠들 사진을 공유하던 랜선 친구들은? 야자실 책상 밑에 숨어서 깊은 대화를 나누던 같은 반 친구는? 대학교 때 엠티 사진을 올리고 서로 깔깔 대던 동기들은? 나를 울고 웃게 했던 드라마의 주인공들, 감성에 젖게 했던 노래의 가수들, 밤을 새우며 읽던 소설의 작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돌이켜 보면 그때그때 내 옆에 있었던 사람들로 인해 즐거웠다.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상 영원한 관계는 없기에 지금은 이렇게 가끔씩이나마 떠올리게 됐지만 그래도 그때의 나는 그들로 인해 참 즐거웠다. 내 일상을 꽉꽉 채워주던 그 사람들에게 문득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은 우리 서로 무슨 대화를 했는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그들 덕에 내 미니홈피가 여전히 가득 차 있고,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나를, 지금의 내가 귀여워하기도 하고,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한다. 이름도 얼굴도 남기지 않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도, 이름과 얼굴을 남겨놓은 사람들도 모두 미니홈피에 박제되어 있다. 이렇게 가끔씩 꺼내 볼 수 있게 정말 싸이월드 사라지지 않았으면 싶다. 그래야 내 일상을 채워주었던 그들에게, 고마움을 잊을 때쯤 다시 감사를 표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지금,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내 일상을 채워주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 10화벌레가 나타났을 때 잠자는 남편을 깨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