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나타났을 때 잠자는 남편을 깨우는 이유

가난, 바퀴벌레 그리고 트라우마

by haley

우리의 첫 주거지인 노들역 주변은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동네이다. 조용하고, 한강도 가깝고, 노량진과 흑석이 가까우니 맛집도 많고. 동네는 좋지만 거의 옛날 집이다 보니, 막상 살기 시작하자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중 한 가지는 우리의 생활공간이 각종 벌레들에게 쉽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첫 해 여름, 에어컨이 없었던 우리 집은 몹시 더웠고(몹시를 뛰어넘는 더위였다. 집 안 온도가 37도까지 올라갔었다) 습했다. 그 덕에 귀뚜라미가 종종 눈에 띄었다. 올해 여름, 비가 쏟아지고 나서는 개미가 쳐들어왔다. 금요일 오후 3시, 내가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멀쩡했던 우리 집이었다. 밤 11시, 귀가해보니 거실과 싱크대가 온통 개미군단에 점령당했다. 엄청 난 수의 개미는 우리 부부가 가장 바쁜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우리의 혼을 쏙 빼놓았고, 주말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우리의 공간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귀뚜라미, 개미, 모기, 무당벌레, 거미, 콩벌레, 나방. 이제까지 우리 집에 투숙하려다 최후를 맞이한 손님들의 명부다. 여러모로 극혐이지만 가장 극혐은 말할 것도 없이 바퀴벌레다. 우리 집에 출몰하는 바퀴벌레는 대체로 몸집이 작은 집 바퀴가 아닌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바퀴다. 동네 자체에 큰 바퀴만 서식하는 건지 어쩐지, 베란다 창을 활짝 열고 환기를 한 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슬금슬금 바퀴벌레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낮에 온 집안 문을 열어두고 환기를 시키는걸 참 좋아하는 나임에도 이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어쩔 수 없이 베란다 창 여는 일을 포기해버렸다. 이제 베란다 창을 아예 열지 않는데도 가끔 출몰하니 도대체 어디로 들어오는지 속수무책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근래에 부지런히 쓰레기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미루지 않았더니 블랙리스트에 오른 손님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블랙리스트 손님을 주로 발견하는 사람은 남편이 아닌 나다. 조용한 새벽 시간에 따듯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책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글도 쓰는 한량의 삶을 살고 있는 나이기에 평일에는 주로 내가 손님과 동일한 활동 시간을 가진다. 어떤 때는 거실에 엎드려서 책을 읽다 책 옆으로 쓱 다가오는 손님을 마주치고, 어떤 때는 서재에 있다가 목이 말라 나오면 낮은 테이블 밑에서 어슬렁 거리는 손님을 마주치고, 어떤 때는 싱크대 옆에서 어물쩍대는 손님을 마주치기도 한다. 손님을 마주쳤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큰 소리로 남편을 불러 깨우는 일이다. 거의 반 울먹이는 나의 목소리에 남편은 잠에서 덜 깬 얼굴로 거실에 나와 상황을 파악한다. 내가 아웃사이더 수준의 빠르기로 손님의 크기와 위치를 설명하면, 오빠는 느릿느릿 도구를 찾아 한 방에 처리한다. 그리고 변기에 넣고 내린다. 쏴아아-


지금까지 글을 읽은 누군가는 분명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지가 잡으면 되는 것을, 왜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런 내가 이해가 안 됐다. 사실 본래 나는 벌레를 잘 잡는 사람이다. '집 밖'에서는 벌레를 잘 잡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오빠 앞에서 연약한 척을 하는 건가 싶어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내 안에 남자가 여자를 지켜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이 존재하고 있는가에 관하여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성찰했는지 모른다. 만일 내 안에 그런 생각이 있다면 온갖 벌레가 나올 때마다 "오빠!"를 불러야 정상이지만 크기가 작은 친구들은 오빠의 도움 없이 셀프로 해결할 수 있다. 개미는 맨 손으로 내려치고, 거미는 휴지로 잡고, 무당벌레는 전자 모기채로 태워버리는 나를 보면 생각보다 벌레를 무서워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왜 유독 크기가 큰 손님에게는 무력감을 느끼는 걸까?


여러 날을 깊이 사색해본 결과,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찾았다.


1) '집 밖'에서 벌레를 잘 잡는 나는, 사실 대외적인 나이다.


사실 나는 벌레가 무섭다. 인정하면 벌레한테 지는 것 같아서 많이 속상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레가 싫다. 그런데 대외적인 나는 벌레를 잘 잡는다. 그 이면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먼저는 대체적으로 이제까지 주로 벌레를 맞닥 드리는 자리에서 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다. 언니나 누나, 무언가를 맡은 사람. 유독 책임감이 강한 나에게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무서움을 이길 힘을 줬다. 사실 무서우면 그냥 도망가버리면 되는데 굳이 나서서 잡는 것은 내가 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어떤 압박감 때문이었다. 때때로 나 말고 책임을 다할 누군가가 함께 있다면, 굳이 나서지 않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책임이 없으면 굳이 나서지 않는 이런 모습이야 말로 '책임'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이 아닌가.


동시에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표현을 빌어 '지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누군가에게 약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에 매우 예민하다. 이제까지 내가 추구해왔던 나는 외유내강에, 야무지고, 서글서글한, 누군가가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나의 이런 이상향은 실제로는 매우 연약한 나의 내면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벌레를 잡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 하나도, 사실 나에게는 이상적인 나를 남들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려움을 극복할만한 크기의 에너지가, 벌레를 잡는 일 하나에 사용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몸집이 큰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별 감흥 없이 턱턱 쳐서 잡지만, 사실 이전에는 작은 녀석들을 처리하는데도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변명일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 생각하니 결혼 후 남편과 우리 집은 내가 억지로 벌레를 잡지 않아도 되는, 어쩌면 벌레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이제까지 벌레가 나왔을 때 목 놓아 불러본 사람이 남편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의 변명에 이바지한다. 어쩌면 내가 대외적인 나를 걷어버린 채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남편은 아닐까. 자는 사람을 깨우는 건 참 미안하지만 우리의 공간 안에서만이라도 대외적인 나의 모습을 버려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기적인 생각이라 느껴지긴 하지만, 오빠는 다른 상황에서 나에게 이기적일 테니 벌레 출현 상황에서는 내가 조금 더 이기적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매번 자는 사람을 깨울 수 없으니 차차 에너지를 사용해 크기가 큰 녀석들도 처리해보리라. 으, 벌써부터 몸서리가 쳐진다.


2) 가난과 바퀴벌레, 트라우마


사실 나는 유독 바퀴벌레에 크게 반응한다. 일종의 트라우마이지 않을까 추측만 하고 있다. 사실 다른 녀석들은 그냥저냥 지나가는 벌레로 느껴지는데 반해,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는 등장과 동시에 무력함이 느껴진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우리 가족은 미아동 반지하 집에 살았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기간에 우리 집은 지상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아직 어른들이 부지런히 짐을 나르던 때에, 이삿짐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새로운 집에서 커다란 베란다 창으로 바깥을 내다보며 공부하던 그 날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참 좋았다. 지상으로 이사하며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더 이상 바퀴벌레와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바퀴벌레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10년 가까이 살았던 반지하 집과 내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자다가 문득 눈을 떴는데 배게 위를 지나가고 있기도 했고, 오랜만에 멜로디언을 꺼내 불며 놀고 있는데 그 안에 있던 바퀴벌레가 호스를 통해 나와 내 입에 들어오기도 했다. 바로 뱉어 버리고 입을 여러 번 닦고 헹궜다. 그때의 기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건은 기억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는 학교에서 책가방을 열었는데 그 안에 바퀴벌레가 있었다. 책만 꺼내고 조용히 가방 문을 닫았는데, 역시나 가방을 탈출한 녀석은 짝꿍에게 발견되었다. 분단이 바뀌었는데도 그 일이 두세 번 가량 반복되자 짝꿍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 왜 자꾸 우리만 따라다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그랬었다. '사실 내가 데려온 건데.'

가난에 대한 무기력함. 나는 그것을 바퀴벌레를 통해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저항하고 거부해도 바퀴벌레는 인정사정없이 내 삶에 침투해 들어왔다. 사실상 가난과 바퀴벌레는 나에게 하나의 존재였다.


그곳을 떠난 지 15년가량 지난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재생되고 있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생 때, 막내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셋째 동생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때다. 온 가족이 매주 금요일에는 철야 예배를 갔다. 예배가 끝난 후 돌아와 잠겨 있는 집 문을 열고 선봉자가 좁은 마루를 네 걸음 만에 지나 안방의 불을 켜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바퀴벌레 떼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의 우렁찬 "밟아!"를 구호로 삼아 우리는 양말을 신은 채로 부지런히 바닥에 돌아다니는 바퀴벌레들을 밟았다. 재밌는 건 바퀴벌레를 밟고 있는 우리 가족이, 내 기억의 그때 그 장면에서 누구보다 해맑게 웃고 있다는 것이다. 표정만으로는 신나고 경쾌한 음악이 깔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어쨌든 그 장면이 나의 인생의 중요한 이유는 우리 가족이 그리고 내가 무기력한 중에도 열심히 그것들을 밟고 밟아 지상으로 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때를 회상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신 거야.'라고 말했다. 표현 그대로 그 반지하에서 '건져내셨다고.' 아직 철이 없는 나는 그래도 열심히 밟았던 우리에게도 지분이 있지 않을까 우겨보지만, 주거지와 가정을 두고 계속 기도해온 엄마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사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그때의 엄마가 왜 "하나님이 건지셨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는지 꼭 물어봐야겠다.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에도, 여전히 방 두 칸에 여섯 명이 살아야 했으므로 집은 늘 복잡했다. 심지어 복도가 훤히 뚫린 아파트 1층인 데다, 현관문 바로 앞엔 나무들이 가득했으니 여전히 벌레들은 죽기 살기로 침입을 시도했고, 우리도 죽기 살기로 퇴치했다. 아파트는 참 좋은 것이, 관리를 해준다. 적절한 때가 되면 소독을 해주고, 약을 준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비록 1층이지만, 어느새 지상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완벽하게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씩 빼꼼 고개를 내미는 바퀴벌레를 마주칠 때면 의례히 전의 그 무력함이 떠오르기도 했다. 바퀴벌레를 집 안에서 본 후에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살에 무언가가 스칠 때(실제로 스치지 않았는데 스치는 느낌이 드는 때도 있었다)면 진저리를 쳤다.

물론 지상인 데다 무려 1.5층 2층, 둘 다로 불리는 집에 살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지상으로 올라와 1층에 완벽히 적응했듯이 2층에서도 완벽히 적응했다. 그렇다 여겼으나 나는 여전히 불이 꺼져 있는 집에 들어올 때면 핸드폰 플래시로 온 집안을 한 번 쓱 훑고, 바퀴벌레가 종종 들어오는 베란다 쪽을 괜히 경계한다. 가끔은 다리에 벌레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 까무러치게 놀라 확인해보면 아무것도 없다. 이 정도면 트라우마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다만 내 트라우마의 원인이 바퀴벌레인지 가난인지 헷갈릴 뿐이다.


남편에게 이것을 털어놨을 때,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비슷한 장면들을 꺼내 나에게 들려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의 유년 시절에는 짧지만 비슷한 장면들이 숨어있다. 내가 '대외적인 나'를 걷어버리고 트라우마에 가득한 무기력하고 지친 나를 드러낼 때, 남편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얼추 비슷한 아이를 소환해온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전혀 다른 생을 거쳤으며, 전혀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현재 서로의 기억 속에 있는 아이에게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론적으로 바퀴벌레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내 안의 아이는 벌레를 잡아달라고 목놓아 부를 수 있는 평생의 단짝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남편 안의 아이도 간간히 어떤 상황들을 마주쳤을 때 나를 목놓아 부르겠지. 그럴 때 나도 잠결에 벌레를 잡는 오빠처럼 씩씩하게 대신 그 상황을 마주하겠지. 내가 평생, 씩씩하게 마주해주겠다고 괜히 약속하고 싶은 밤이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기억을 가져올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불쾌함을 선사할 수도 있는 글이지만, 며칠 째 머릿속에 맴돌던 글이라 속 시원히 풀었다. 어쩔 수 없이 글은 해우소가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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