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임산부가 가진통과 진진통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는 큰 문제다. 출산의 신호인 진짜 진통이 오기 전에, 몸이 출산을 준비하며 연습을 한다. 그 과정에서 진통이지만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짜 진통이 온다. 나는 가진통이 심한 편이었다. 출산 예정일 2주 전부터 밤마다 아랫배에 가진통이 와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예정일이 임박했을 때는 규칙적으로 약한 진통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출산을 한 사람들이 모두 말하듯이, 진짜 진통이 오자마자 “아, 이게 진통이구나.”라고 의심의 여지없이 생각했다.
출산 예정일을 문제없이 거뜬하게 보낸 후 자정 무렵 진짜 진통이 시작되었다. 블로그에서 출산 후기를 찾아볼 때마다 병원에 일찍 가서 좋을 것 하나 없다기에, 이불을 붙잡고 열심히 참았다. 게다가 우리 집 남자도 어느 정도 재운 후에 깨워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간 이후에는 우리가 언제 쉬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몇 주간 옆에서 끙끙대는 나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채로 출근한 데다, 출근을 해서도 연말이라 정신없이 일만 한 그는 정신도 없고 체력도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나의 절친이 체력을 충전하도록 두고 혼자 끙끙대다가 약 5시간이 지났다. 마지노선으로 정한 시간이었다. 새벽 5시가 되자 그를 깨웠고,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병원에 전화를 하고 짐을 챙겨 출발했다.
진통이 느껴져서 병원에 간다고 해도 자궁문이 3cm 이상 열리지 않으면 입원할 수가 없다. 무기한으로 대기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도 자궁문이 최대한 열리도록 집에서 진통을 참아낸 것이었다. 계속되는 진통에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간이침대에 누워 내진을 받았다. 간호사는 자궁문이 3.5cm 열렸다며 바로 입원을 하자고 했다. 자궁문이 많이 열려 있어 바로 분만실로 들어갔다. 가족분만실에서 무통 주사를 맞고 남편과 함께 자궁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7시간이 지나 정오가 넘어서까지 자궁문은 6cm 밖에 열리지 않았고 아기가 내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응급 수술을 했다.
아기의 뒤통수가 자궁 입구에 끼어있었다고 했다. 아기는 자궁 입구에 뒤통수가 낀 채로 거의 3시간을 있었다. 피를 쏟으며 분만실에 누워 있었던 나에게도, 뒤통수가 끼어 낑낑댔을 아기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자연분만을 못했다고 해서 딱히 아쉽거나 슬픈 마음은 없었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수술실에 실려 들어가서 느낀 추위와 위압감이 썩 기분 좋지 않았을 뿐이다. 어쨌든 수술은 잘 끝났고 아기도 나도 무사히 각자의 과제를 완료했다.
출산 예정일을 한 주 앞두고, 남편은 코로나에 걸렸었다. 다행히 나는 걸리지 않았다. 출산하던 날은 남편이 이미 격리 해제 된 상태였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격리 해제 후 2주가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이 보호자로 있는 경우 두 사람 모두 아기와 접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4박 5일 내내 아기를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았다. 5일째 되는 날, 퇴원을 위해 처음 아기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바로 조리원으로 향했다. 조리원에 도착해 지급해 주는 옷을 입고서 수유실에 앉았다. 원장님께 오늘 아기를 처음 만났으며 아기는 한 번도 젖을 물지 못한 상황임을 설명했다. 짐을 풀 새도 없이 수유실에 앉아 원장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자세를 잡고 젖을 물렸다.
신생아가 어떻게 그런 힘을 낼 수 있는지 신기했다. 태어나서 5일 만에 처음으로 엄마의 젖을 물게 된 아기는 40분 간 온 힘을 다해 젖을 빨았다. 신생아는 힘이 없다. 모유를 먹일 때 10분 정도 먹다 잠이 들어도 큰 일을 했으니 칭찬해 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태어난 지 5일 된 아기가 필사적으로 40분이나 젖을 빠는 모습을 보는 동안 울컥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젖먹이를 떼어놓다 ‘라는 말이 왜 존재하는지 알 것 같았다. 5일 만에 상봉해 처음으로 젖을 물리던 그때의 감정을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아기는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오랜 시간 안간힘을 써가며 젖을 빨았을까? 배가 고팠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병원 신생아실에서는 안전하고 쾌적하게 시간 맞춰 아기의 배를 채워주었을 것이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나의 가슴은 젖이 돌기 시작하며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하듯, 아기는 정말 엄마를 알아본 것일까? 혹시 아기가 세상에 나온 이후, 어른에게는 고작 5일이었던 시간이 아기에게는 50일처럼 길었을까? 그래서 나와 아기가 만났을 때 서로의 시간에 차이가 있었을까? 처음으로 만난 세상이 많이 낯설어서 안정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엄마는 엄마의 입장에서 낭만적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다.
젖이 돌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아기에게서 나는 소위 ‘아기 냄새’가 모유의 냄새와 같다는 사실이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하며, 아기와 나에게서는 같은 냄새가 났다. 아기의 냄새가 내 냄새였고, 내 냄새가 아기의 냄새였다. 신기하고 기이한 기분이었다. 아기와 내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생명과 내가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특별한 사이라는 생각에 황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온갖 종류의 예쁜 기분들은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제대로 자지 못해 혈압은 솟구쳤고, 몸은 피곤했고, 수유콜은 고통스러웠다. 아기는 젖을 10분도 채 빨지 못한 채 잠들어버리기 일쑤였고, 깨워서 먹이라는 말에 열심히 아기의 손과 발을 주물렀으나 소용은 없었다. 젖이 꽉 차서 가슴이 딱딱해지고 모유가 뚝뚝 떨어져 옷을 다 적시는 탓에 새벽마다 강제로 일어나 유축을 하는 것도 곤욕스러웠다.
그럼에도 아기가 50일이 지난 지금, 집에 와서도 여전히 젖을 물리고 있다. ‘아기에게 처음 젖을 물렸던 40분의 시간’과 ‘아기와 나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 나라는 개인으로 하여금 모유수유를 낭만적으로 해석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모성 신화를 극도로 혐오하던 내가, 마음속 한편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행위를 숭고하게 느끼면서 힘들지만 어떻게든 그 시간을 연장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히며 낯부끄러운 비밀을 말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의 내가 그런 것을.
모성 신화라는 것을 사회와 세대가 만들어 여성들에게 씌웠다고 단순히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스스로 ‘엄마’라고 칭하는 여성 자신이, 아무런 강요 없이도 모성 신화를 만들어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지금의 내가 모성신화를 만들어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 정말 모성애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생명에 대한 책임감인지, 그저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따라 흘러가며 당도한 한 정류장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울 뿐이다.
어찌 되었든 50일이 지나 목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아기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부르르 떨며 엄마의 가슴에 돌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 모든 생각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저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귀여운 모습을 더 찬찬히 오래 감상하고 싶을 뿐이다. 당최 아기가 우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리며 신경질을 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두유를 마시고 악착같이 끼니를 챙기고 비타민을 먹으며 모유수유를 하는 나 자신에게 적응하는 일은 아기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숙제이다. 과연 나는 내 삶의 시간 안에 숙제를 끝낼 수 있을까? 어쩐지 끝이 없는 숙제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